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말스런 여자 Jul 05. 2021

아가야!

세월은 날 그냥 보내주면 어디 덧날까? 지금 허리 아파서 개고생이다.

처리할 일이 6월 30일까지 마감인 걸 뒤늦게 알고 꼬박 몇 시간 돌부처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더니 내 몸이 아작이 났다. 리도 안 따라주지만  몸뚱이는 더 안 따라주니 이 일을 어이할꼬?


6월에서 7월로 건너가는 게 이리 힘들까? 일이 안 풀리만만한 게 부모 탓에 조상 탓이 제일 쉬운데, 이제는 나이 들어 그러기도 민망한지 세월 탓하고 있다. 꼼짝 못 하며 뒹굴거리니 심사가 괴로운데, 친구들과 카톡방에서 놀다 보니  빛바랜 사진이 소환된다.


친정 가 묵은 앨범 뒤적이다가 가져온 몇 장의 사진 중 한 장이다. 친정엄마도 몇 년 전 당신의 별자리로 돌아가신 후에 가져온 것도 같고, 이제는 나 말고는 아무도 관심 가질 일도 없는 사진이라 여기고 가져왔다.


그런데 웬 일. 은근 이 사진을 볼 때마다 힘을 받네. '아가야!' 하고 말을 걸며 주절거리다 보면, 20대 중반 꽃 같은 엄마의 품에 안겨,  따듯한 엄마의 시선을 받고 있는 아가는 참 두려울 것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어 보이는 다부진 표정이 맘에 들기 때문이다.


 언제나 난 찌질이 같은 내가 맘에 안 들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중얼거린다. '그래, 아가야, 이게 나란 말이지? 너 참  힘든 세상 잘도 살아남았다. 힘들었지?' 하고 말을 거는 것이다.


아가야!

지금도 미안해. 내가 참 세상에서 일등 가는 바보라서 너를 힘들게 했다. 그래도 고마워. 금까지 버티고 이렇게 살아줘서. 나도  알아. 내가 살아남은 건, 내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어쩜 미련퉁이였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는 걸. 누군가는 너 자신을 알라고도 했지만, 정작 내가 나를 몰랐기에 그냥 살아남은 거겠지. 그래서 바보 같은 나를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모순 속에 있다는 걸.


아가야!

너의 그 고사리 같은 손은 어느덧 새털처럼 많은 세월 속에 근육이 다 빠져나가고, 힘줄이 지렁이처럼 꿈틀대는 주름 투성이 손이란다. 하얀 실로 짠 너의 앙증맞은 모자 대신 이제는 그대로 두면, 차라리 은발이 눈이 부시게 당당할 텐데, 난 또 왜 그 꼴도 못 봐주고 살까?


아가야!

70 가까운 개수를 살았으니 여기저기 아플 수도 있는 건 당연지사이지만,  허리 아파 누워 있으니 잊힌 온갖 욕구들이 꿈틀거린다.   때에 마땅히 찾아먹지 못한 채 결핍된 육신은 서러웠던  그때의 마음  여태 삭이지  못한 듯, 아직도 알아달라 아우성치는 7월의 첫 주말이었구나.

작가의 이전글 지랄 총량의 법칙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