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알려준 학교의 의미
주인 없는 학교는 무의미했다
2017년 11월 15일 오후 두 시 반쯤이었다. 세시까지 가야 되는 수능 감독관 출장에 늦어 부랴부랴 서두르며 제법 속도를 내고 운전을 하던 도중이었다. 늦었다는 생각이 먼저였는지 도중 울컹하는 느낌이 지진인 줄도 모르는 채 그저 “방지턱을 조금 세게 넘었겠지?"라고 생각했다. 수능시험장에 도착해 사전 교육을 받는 도중 알았다. 포항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것을. 지진은 수능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는데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많은 우여곡절 끝에 일주일 미뤄져 시험이 치러졌다. 다행히 그날 치러진 수능은 별다른 사건 없이 마무리되었고 나는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앞으로는 나의 교직 생활에 이런 에피소드는 다신 없겠지?”라 생각하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 후로 채 삼 년이 지나지 않은 지금 내 교직 인생에 있어 최대의 고비가 될 것 같은 새로운 에피소드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지진이 아닌 코로나라고 하는 전염병이 찾아왔다. 이로 인해 개학이 연기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전무후무한 초유의 사태였다. 한 달여간 개학이 미뤄졌고 결국은 온라인으로 학생을 맞이하게 되었다. 온라인 수업의 정식 명칭은 원격수업이라 하였는데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너무 급작스러웠고 생소했다. 조용히 온라인에서만 이루어지던 원격수업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려 할 때쯤 오월의 중순이 돼서야 학생들을 실제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전국의 모든 학교는 고등학교 3학년을 시작으로 순차적 등교 개학을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의 경우 유월의 세 번째 날이 돼서야 처음으로 등교를 하게 되었다. 예정했던 개학일에서 자그마치 세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 ‘보고 싶었다. 얘들아! 오늘부터 진짜 1일’이라는 참신하면서도 간절함을 담은 현수막 문구 아래로 모든 학생들이 등교하니 그제야 학교는 본연의 빛을 낼 수 있었다.
학교란 역시 학생이 있어야 빛이 난다. 촛불은 산소가 있어 빛이 나듯이 학교라는 공간도 학생들이 있음에 빛이 나고 살아 숨 쉰다. 조용했던 학교가 시끌벅적해졌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학생들의 입에는 마스크가 쓰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의 웃음소리와 에너지가 학교라는 공간 안에 가득 차 있다.
“학교는 학생들이 주인이구나. 학생들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구나”라고 무뎌져 있던 학교 존재의 의미를 생각할 때쯤에 책상 앞에 켜져 있는 노트북에서 끌리는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경향신문의 이성희 기자가 쓴 ‘코로나가 환기시킨 공교육의 존재 의미, 학교가 준 건 지식 그 이상이었다’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는 학부모들이 학교의 부재를 절감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는데, 특히 학교라는 공간은 학습과 평가만이 아닌 성장과정이 있는 곳임을 코로나가 뼈저리게 깨닫게 해 준다는 글이었다. “기자님이 교사 출신인가?”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학교라는 공간을 잘 알고 있었고, 학생들을 잘 살펴보고 있었다. 교사인 내가 부끄러울 만큼 말이다.
기사의 글이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분명 근처에 있는 학원과는 다를 것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지식의 전달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학생들이 이 사회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이것이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수많은 위기가 닥쳐도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학교의 주인은 학생인 까닭인 것이다. 그래서 주인 없는 학교는 무의미했다.
우리는 가까이 늘 함께 있다가 보면 서로의 소중함을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 잠시 떨어져 있으면 금방 생각이 나기 마련인데 학창 시절에 갔었던 수련회에서도 그랬다. 하루 정도 신나게 놀다가 이틀째 저녁이면 괜히 집이 그리워지는데 그제야 함께 있다가 보니 잊히고 무뎌졌던 소중함을 느낀 것이다. 학교 안에서 학생들과 항상 같이 있어 잊히고 무뎌질 때쯤 코로나가 알려주었다. 학창 시절의 수련회와 같이 존재의 부재를 통해 소중함을 깨닫게 해 준 것이다.
코로나는 언젠가 지나갈 것이다. 코로나가 지나간 마스크가 없는 학교에는 여전히 학생들이 웃고 떠들고 함께 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