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전화번호로 시작하는 하루 일과
그래도 받아야 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비어 있던 학교가 학생들로 채워지고 고요했던 교정이 시끌벅적해지니 덩덜아 나의 휴대폰도 부산해졌다. 요즘은 하루가 시작하면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받는 것부터 일과가 시작된다. 그 모르는 전화번호의 주인은 거의 다 대부분 인근 아파트 관리소장들이다. 전화를 한 이유는 흡연하는 학생들이 많으니 자신들의 아파트로 와서 흡연 예방 생활지도를 해 달라는 것이 주된 요지인데, 전화를 받고 나면 힘이 쭉 빠진다. 교사는 수업을 하는 사람이지 학생들이 담배를 못 피게 쫓아 가 담배를 꺼주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부장이라는 맡은 바 역할이 있고 생활지도도 교사의 역할 중 한 부분이라 못 들은 척 넘어가기도 그렇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흡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대책을 강구하라는 입장인데, 학생의 흡연 문제는 많은 고민과 걱정을 가져오게 한다. 학생들의 흡연을 예방하고 금연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아침 등교시간을 이용해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경험과 감을 이용해 학생들이 일탈하기 좋은 장소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는데 제발 없기만을 바라는 마음은 소망으로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여 여러 고민을 나누고자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그 고민을 뿌연 연기로 날려버리려 할 찰나 나는 멀리서 부리나케 외친다. “얘들아! 거기서 뭐해? 빨리 등교해야지!”라고 말이다. 이렇게 외치는 이유는 흡연 예방이 목적이지 흡연하는 학생을 발견하고 처벌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경우는 다행이다. 조금만 늦으면 예방의 기회도 사려져 못 본 것으로 하고 넘어갈 수도 없다. 으레 학교의 생활규정이라는 틀 안에서 처리를 해야 되고 그러면 또 다른 차원에서의 새로운 시작이 된다.
얼마 전 예방의 기회를 놓쳐 생활교육위원회라는 절차를 통해 교내 봉사를 하고 있는 학생들과 캠페인 활동을 했다. 흡연 예방과 금연에 관한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교문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권유하는 캠페인 활동이었다. 활동을 마치고 어땠냐고 물어보니 친구들이 봐서 부끄럽고 창피한데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있어 괜찮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옳지 않음을 느끼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천천히 변할 수는 있다고는 믿을 뿐.
몇 년 전 방영했던 『바람의 학교』라는 TV 프로그램을 기억한다. 소위 문제아로 불리는 학생들을 모아 ‘바람의 학교’ 안에서 배움이란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상당히 파격적인 교육의 모습을 보여주어 낯선 이질감도 많이 느꼈었다. 특히, 학생이 당당히 “흡연 금지는 학생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니까 흡연하게 해 주세요”라고 요구하던 장면이 나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이렇듯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학생들은 한 달 간의 ‘바람의 학교’에서의 생활을 통해 조금은 변화했다. 그러나 한 달이라는 시간은 학생들이 온전히 배움을 깨닫고 느끼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면서도 “한 달이 아닌 일 년동안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면 더욱 많이 변화했을까?”라 생각한다. 당연히 한 달 보다는 더욱 많이 변화했을 거라는 기대감과 함께.
시간이 지날수록 더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처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실천하면 흡연 문제라는 거대한 산도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흡연 문제 등으로 피치 못하게 생활교육위원회에 찾은 학생들에게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해준다. 여기에서 선생님들과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은 처벌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올바른 성장을 위한 것이라고, 그리고 꾸준히 같이 노력하자고. 이것이 학생들과 같이 노력하기 위해 모르는 번호여도 전화를 받아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