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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함, 중용(中庸)의 미학

적당함의 어려움이 주는 지혜(스리랑카의 캔디 호수)

by 바람마냥

시골집 마당엔 많은 꽃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에서도 잔디밭 가를 둘러싸고 시골집을 환하게 비춰주던 꽃은 단연 큰 금계국이다. 여름이 서서히 익어가면서 시골집을 환하게 비추었던 큰 금계국이 까만 열매를 맺었다. 화려한 꽃의 시대가 가고, 종족 번식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1m도 넘을 듯한 키에 까만 열매를 달고 바람에 견디는 모습은 애틋하기까지 했었다. 초 여름부터 열정적으로 꽃을 피워 꽃의 시대를 마감한 후, 번식을 위한 시간을 주기 위해 며칠을 두고 씨가 떨어질 시간을 주었다.


씨앗이 맺기 얼마 전에 바람을 동반한 바람이 찾아와 꽃이 이리저리 쓰러져 전혀 질서가 없고, 아름다운 꽃의 위엄을 잃고 마는 형국이 되고 말았었다. 아내와 함께 끈으로 이리저리 매고 일으켜 세우며 아름다움을 지켜주려 커다란 몸집의 큰 금계국을 세워 놓았었다. 그런대로 몸을 유지하며 서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아침, 저녁으로 흙을 북돋워 주면서 지금까지 꽃을 지켜 왔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밤, 큰 금계국은 하얀 전등불이 밝혀진 시골집을 형언할 수 없는 모습으로 환하게 비추어주었고, 고즈넉한 시골집을 무던히도 예쁘게 단장해주던 아름다운 꽃이 너무나 고마워서이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선사한 큰 금계국이 꽃의 계절을 마치고, 씨앗을 달고 있기에 그 시간들이 고마워 씨앗이 떨어질 시간을 주어야 했다. 까맣게 영근 씨앗이 까맣게 떨어진 것을 확인한 후, 아내와 함께 줄기를 뽑아 정리하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커다란 키의 줄기를 하나씩 뽑으며 그동안의 아름다움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다기보다는 대단한 위업을 달성하고 난 후의 장수를 맞이하는 기분으로 작업을 했다.

IMG_7032[1].JPG 뜰 앞의 큰 금계국

한 포기씩 줄기를 뽑아내며 그 자리를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정리를 하고, 큰 금계국 줄기를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다. 한참의 노동 끝에 말끔히 정리가 되었고 줄기를 처리하는 것만 남았다. 언제부턴가 집 앞에 흐르는 도랑가에는 고마니 풀이 번지면서 봄이 되면 분홍색을 띤 꽃이 도랑을 환하게 비추어 주는 모습이 너무나 앙증스러웠다. 그래서 그곳에 큰 금계국이 옆에 자리를 잡으면 어떨까를 늘 생각하고 있었다.


큰 금계국에 아직도 남아 있는 씨가 잔디밭 가에 있는 도랑가에 떨어져 내년에는 꽃이 필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힘들게 줄기를 옮겨서 한 군데 놓지 않고 언덕에 이리저리 널따랗게 펼쳐 놓았다. 내년에는 아름다운 도랑을 기약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골고루 씨앗이 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동네에서 보기 싫다고 한마디 할 것을 각오하면서 그것에 대해 한 마다 하면 본 뜻을 설명해 줄 생각이었는데 아직도 말이 없어 다행이다 싶다.


큰 금계국의 줄기를 뽑아내면서 노동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느끼기도 하고, 적당함을 알았어야 했다는 후회를 여러 번 하게 되었다. 한 가지만 알고 다른 것은 모르는 나의 무지함으로 큰 금계국의 키가 너무나 크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줄기를 뽑으며 만난 큰 금계국의 뿌리는 1m도 넘는 줄기와 꽃을 지탱하기에는 뿌리가 너무나 허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도 얕게 뿌리를 내린 것이 커다란 줄기와 꽃을 지탱한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고문이었고 무리한 부탁이었다.


그러면 이렇게도 뿌리는 약하면서 줄기가 커 나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요즈음 지나는 길가에서 만나는 큰 금계국은 자그마한 키에 예쁘장한 꽃을 피워 바람에 살랑거린다. 그것은 키가 작아 몸을 지탱할 힘도 필요 없으며, 튼튼한 뿌리가 내리지 않아도 될 듯하다. 오히려 큰 키에 꽃을 피워 작은 비바람에 흔들거림보다는, 작은 키에 꽃을 피운 모습이 훨씬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시골집에 자리 잡으면서 새벽부터 잔디밭에 풀을 뽑는 일과 작은 밭을 가꾸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아내가 꽃을 좋아하기에 언제나 꽃이 우선이 된다. 이런 생각으로 일어나면서 시작은 꽃밭에 물을 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침에도 주고, 낮에 뜨거운 햇살이 지나고 나면 저녁에도 한바탕 물을 뿌리곤 한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는 극성을 이기지 못한 큰 금계국은 기어이 키를 불려야만 했다.


바위틈 곳곳에서 꽃이 피면 예쁠 것 같아 그곳에 자리 잡게 한 꽃은 얼마간의 흙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아 뿌리가 자리 잡을 틈이 없었고, 약한 뿌리에 아침, 저녁으로 물을 먹고 자란 큰 금계국은 키가 너무 자라 한 여름을 힘들게 보내게 된 것이다.


삶의 지혜도 마찬가지 일 것이리라. 적당한 것이 어느 정도 일지는 항상 어려운 것이지만, 그것은 경험과 지식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살아감의 방법 중에는 여러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적당함의 미학을 꿰뚫고 행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고 어렵다는 것은 늘 실감한다.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이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상태'라고 하는 중용(中庸)의 뜻이 그러하니, 얼마나 어려운 삶의 방법이겠는가? 운동이 좋다고 밤낮으로 하다가는 어딘가 고장이 나고, 술이 좋아 한없이 마시다가는 내일의 안녕을 기약할 수 없다.


언제나 좋을 때에 적당히 주체할 수 있을 만큼만 주어짐이 나의 삶에 거룩한 퇴비가 될 테지만, 그것을 알기에는 삶이 그리 길지 않으니 어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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