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여름 비,실상사에서)
어머니, 여름 비가 내립니다.
연초록 잎에 숨어있던 조막만 한 감이
연한 가지 어깨 축 늘어뜨릴 때
푸른 잎 열고 고개 내밀어
고운 얼굴 단장하던
그 여름 비가 내립니다.
울 너머 채마밭 가을배추에
어느새 연초록 옷 갈아 입히고
기울어 가던 울타리에 오른
널따란 호박잎에
맑은 구슬 굴려대던 여름 비가
아침부터 추적거리며 내립니다.
울 넘어 텃밭에 자란 오이넝쿨
메마른 자갈밭 힘겨워하다
온몸으로 맞으며 푸짐한 열매 맺고
밤송이 제법 모양 갖춰
풍성한 가을 추억하게 하던 그 비가
하염없이 내리며 추적거립니다.
오래전 여름 비 오는 날
하연 수건 질끈 얹고 들깨 모 심으려
당신이 반기며 종종걸음 하던
그 여름 비가 아침부터 내립니다.
가끔은 추녀 끝에 오래전 그 빗소리 내며
당신과 함께 하던 그 여름 비가
당신을 추억하게 하는 그 여름 비가
어머님의 여름 비 추억하게 하는 그 여름 비가
가슴을 적시며 아침부터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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