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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ug 17. 2020

구절초의 계절이 오면

(가을로 가는 여행, 세종시 영평사 구절초)

구절초(九節草),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구일초(九日草) 또는 선모초(仙母草)라고도 불린다. 구절초라는 이름이 붙여진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중양절인 음력 9월 9일 채취한 것이 약효가 좋다 하여 구절초라고 한다고도 하고, 단오절에는 다섯 마디가 되고 중양절인 9월 9일이 되면 아홉 마디가 된다고 해서 유래되었다고도 전해진다. 


하얀 꽃을 피우는 구절초, 구절초 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나의 여행길은 자연이 서해안으로 향하게 된다. 거기에는 사람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시원한 바다가 있고, 안면도의 푸르른 솔밭이 있어 더욱 좋기 때문이다. 이때쯤 안면도에 이르면 언제나 입맛을 돋워주는 대하와 전어가 성대한 즐거움을 준다. 싱싱한 대하와 전어가 펄떡거리고, 잔잔한 파도가 가슴을 씻어주는 백사장해수욕장에서 시원한 소나무를 벗 삼아 한적한 오후를 즐기는 맛이야말로 떨칠 수 없는 맛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대하를 구울 수 있는 불판을 마련하고, 그늘에 앉아 대하와 사랑을 나누는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달큼하면서도 담백한 맛, 껍질을 벗기면 나타나는 대하의 하얀 속살은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맛이다. 기름기가 좔좔 흘러넘치는 고소함을 자랑하는 전어구이도 여기에 질 수는 없다.

안면도에서 만난 석양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백사장해수욕장을 뒤로하고,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소나무가 있으니 언제나 편안하고도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그늘이 적당이 섞인 장소에 자리를 잡으면 어느새 가을은 우리 가슴으로 와 있다. 시원함을 뒤로하고 적당히 데워진 불판에 왕소금을 두툼하게 깔고 싱싱한 대하와 전어를 얹어 놓기만 하면 된다. 적당한 소금의 맛과 대하 안과 밖의 익음에 대한 조화가 환상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새우의 풍부한 단백질과 결합되어 나타나지 않던 홍당무나 감귤과 같은 붉은 색소가 나타나니, 고단백 스태미나 식품으로 양기를 왕성하게 해 주고, 껍데기에는 항암 효과가 뛰어난 키틴뿐만 아니라, 골다공증을 예방해 주는 칼슘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바닷가 송림 속의 대하(大蝦) 구이는 아내와 마주 앉는 천하제일의 가을철 보양식이다. 


소나무 숲에 앉아 대하 맛을 보았다면 근처의 간월도를 찾는 것도 탁월한 선택이다. 고즈넉한 절집이 바닷물에 갇혔다 길이 열리는 간월암이 있기 때문이다. 간월암,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홀연히 깨쳤다고 하여 간월암(看月庵)이라 하고 섬 이름을 간월도(看月島)라 하였다고 전해지는 아름다운 절집이다. 고단한 마음을 정리하고 싶으면 가끔 찾아가는 절집을 잔잔한 서해바다가 푸근하게 감싸 안으며 가슴으로 진득이 품어준다. 시원한 바람으로 마음이 가라앉으면 근처의 식당에서 만날 수 있는 어리굴젓을 맛보는 것이 대세이다. 대하로 잠깐의 허기짐을 면했다면 짭짤한 어리굴젓과 해물이 곁들여지는 어리굴젓 비빔밥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는 더없이 좋다. 고슬고슬한 밥에 적당이 삭힌 어리굴젓을 넣고 김가루와 각종 나물을 넣어 비벼먹는 점심은 대단한 서해안을 품고 있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운다. 

바닷물에 갇힌 간월암

대하와 어리굴젓으로 나른한 오후를 견디기 힘들면 굴의 고장 천북을 지나 안면도를 향하는 중간에서 '전망대 휴게소'라는 절묘한 소나무 숲을 찾으면 좋다. 앞면으로는 광활하지만 촌스런 내음이 가득한 갯벌이 펼쳐지고, 멀리서 수많은 섬들이 손짓하는 곳, 적당히 들어선 소나무 숲에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들마루, 수돗가, 화장실, 전망대까지 설치되어 있고, 바지락 잡는 체험학습장도 설치되어 있어 이보다 좋은 곳이 있을 수 없다. 

근처에는 길가에 조성해 놓은 작은 코스모스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 가을을 한 껏 노래하며 오가는 길손을 맞이한다. 아름다운 바다를 끼고돌아 바닷가에 있는 전망대를 올라가면 언제나 시원한 바람이 길손을 잡고, 끝없이 펼쳐지는 서해의 갯벌이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물이 들어오면 사방이 바닷물로 가득하니 아름다운 서해바다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 휴게소에서의 잠깐 쉼을 멀리하고 광천장에 들르는 것도 좋은 볼거리이다. 장날이면 더 좋고, 그렇지 않아도 언제나 북적이는 광천장엔, 갖가지 새우젓이 가득하고 구수한 충청도 말이 오고 가는 그럴듯한 장터이다. 젓갈과 각종 해산물 그리고 여기에도 대하가 많은데, 산지보다도 더 싼 값에 구할 수 있고, 더불어 이것저것 장을 본 후 시간이 되면 세종시에 있는 장군산 영평사의 구절초를 만나러 가야 한다. 

광전장엔 없는 것이 없다.

해 질 녘에 구절초를 만나러 가는 이유는 달빛에 만나는 꽃이 아름답기도 하고, 9월 말쯤 구절초 축제 기간엔 저녁나절의 산사음악회가 또 다른 맛을 주기 때문이다. 영평사에 이르는 길에도 군데군데 하얀 구절초가 심어져 찾는 이들의 발길을 가볍게 만들어 준다. 절집 근처엔 시골에서 기른 소박한 나물과 과일을 놓고 파는 상인들이 사람을 불러보지만, 산비탈에 하얀 구절초가 그득하니  눈길 머물 곳은 어디인지 짐작이 된다. 절 집을 중심으로 하얗게 핀 구절초는 한가함과 순결함이 일품인데, 거기에 아름다운 선율이 가득한 산사음악회를 만나게 되면 성스러움에 감동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시간이 넉넉하면 한낮에 찾아도 좋은데, 그 이유는 절집을 중심으로 하얀 구절초 꽃이 꽃바다를 이루며 일렁이는 모습은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기도 하고, 운이 좋아 점심때가 되면 절집에서 제공하는 국수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구절초 꽃은 천천히 둘러볼 수 있는 산책로를 만들어 놓아 들러보기가 좋다. 산을 따라 핀 구절초 꽃을 찾다 보면 어느새 허기가 몰려오니 국수를 먹으려 기다리는 줄에 발걸음이 멈추게 된다. 한 그릇의 잔치국수는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맛은 잊을 수 없는 대단한 맛이기에 가을이 되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평사에서 만난, 구절초

구절초가 피는 시절이 되면 서해안에서 만난 많은 추억들이 그리워 늘 하얀 구절초를 찾게 된다. 지난해 구절초가 꽃을 피울 무렵엔 시골집 뒤 언덕엔 몇 포기의 구절초가 하얗게 얼굴을 내밀어 깜짝 놀랐다. 누가 돌보지도 않았음에도 어느새 움을 틔우고 싹을 내밀어 때를 놓치지 않고 꽃을 피웠으니 말이다. 달빛이 눈부신 야밤에 하얀 꽃을 이고 있는 모습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사람의 눈길을 잡아 놓는 마력이 있는 꽃이다. 지난해 언덕 위에 홀로 피어 있는 모습이 쓸쓸하고도 대견스러워 올 해는 뜨락에 구절초를 심어 보기로 했다. 부랴부랴 구절초를 구입하여 아내와 집 둘레 구석구석에 심었다. 아침저녁으로 이슬을 맞고, 세찬 비를 이기며  꼼지락 거리더니 뿌리를 내려 널찍한 잎을 살려 놓았다.

서해안에서 만난 코스모스

이곳저곳에  50여 포기를 심고 기다리자 잎이 나온 모습은 식구 수가 너무 적어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60포기를 주문했다. 아내와 함께 정성스레 구석구석에 심은 구절초는 장맛비를 이기고 몸집을 크게 불려놓았다. 세찬 장맛비를 이겨낸 구절초는 바위틈에서, 잔디 틈에서 그리고 나무 밑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으니 이 더운 여름이 물러나고 가을이 자리하면 어떤 꽃을 보여 줄지 궁금하기도 하다. 어서 이 더운 여름이 지나고 바람이 선들선들해지면, 구절초가 하얀 꽃을 보여줄 테고, 덩달아 키다리 달맞이 꽃이 선을 보이는 날엔 한 아름의 국화꽃도, 키다리 코스모스도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풍성하고도 성스런 가을 즈음, 구절초가 한창 필 무렵이면 잠시 삶을 쉬면서 한 숨 돌리려 찾는 서해안 바닷가는 언제나 먹거리와 볼거리를 함께 주는 곳이다. 이때쯤 한해의 거룩한 삶을 축하하며 서해안으로 달려가 볼거리와 먹거리로 마음을 달랜 후, 하얀 달빛 아래 아름다운 구절초와 만나 한 박자 '쉼'은 언제나 잊을 수 없는 가을날의 추억거리이다. 이제 나의 뜰에도 하얀 구절초가 넘실대고 덩달아 국화와 코스코스 그리고 달맞이꽃을 피워 화려해지면, 가을날의 성스런 축제를 빨간 고추잠자리가 한 판 춤을 추며 상고 돌리기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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