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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ug 19. 2020

부석사는 가을이 더 아름답다.

(가을날의 부석사, 부석사에서)

부석사는 가을이 더 아름답다. 소백산 자락인 봉황산에 위치한 부석사는 어느 계절이 되어도 아름답지만, 가을녁 절집 뜰에서 바라보는 소백 줄기는 사람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더 아름답다. 아기자기한 줄기가 하늘을 떠받치듯이 펼쳐지고, 산골 따라 펼쳐지는 구름은 한가한 여름날의 보슬비를 연상케 하며, 지나는 구름마다 사연을 안고 있는 듯하고, 절절한 골을 만들어 부석사의 전설을 이고 있는 듯하다.


길고도 지루한 여름을 지나 부석사에 오르는 전경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을 선사하는데, 입구 못 미쳐에 이르자 우선은 좌우를 살피면서 절집으로 향하여야 한다.


부근에 사는 동네 할머니들이 붉게 익은 사과를 작은 바구니에 담아 찾는 발길을 잡고, 텃밭에서 재배한 각종 채소와 갖가지 과일은 길을 걷는 길손의 목마름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자그마한 바구니에 깎아 놓은 갖가지 과일을 손수 맛을 보며 올라가라 하면 할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에 얼른 주머니를 열 수밖에 없고, 텃밭에서 조금의 검불이 들어있는 채소를 뒤적이면, 얼른 덤을 언어 주는 할머니 손길이 너무나 투박해 주머니를 열어야만 한다.


발길을 돌려 조금 더 올라가면 양쪽으로 펼쳐지는 빨간 사과밭이 눈길을 사로잡아 눈을 두려면, 어느새 알아차렸는지 얼른 사과를 내미는 주인아주머니 손길에 발길 멈추고 만다. 시골스러운 평상에는 갖가지 곡식과 사과를 진열해 놓고 할머니와 며느리가 손님을 찾고 있는데, 멀찍이 아저씨는 사과를 따며 무관심한 듯하다.


주변의 아름다운 광경에 시선이 사로잡혀 발길을 옮기다 보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들이 황홀한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양쪽으로 펼쳐진 은행나무들이 기나긴 여름의 고단함을 벗어났음을 한숨이라도 쉬듯,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햇살을 받으며 하늘 거린다. 내리쬐는 햇살에 따라 노란 은행잎의 옅고 짙음이 차이가 나는데, 연한 노랑은 어딘지 모르게 가을의 진실을 주는듯하지만, 진한 노랑은 깊어가는 가을을 짐작하고 있는 듯해 더 아름답다. 은행나무 길을 걸으며 오르는 이 길은 가끔 아름다운 시구를 써 붙인 모습이 오고 가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자그마한 시인이 되는 오후가 되기도 한다.


한참을 걸어 들어선 절집에는 소중한 우리의 보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조금은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지만, 선묘 낭자의 전설의 생각하며 언제나 변함없는 부석(浮石)이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듯 파란 이끼를 이고 있는 모습이 신선하기도 하다. 무량수전을 뒤로하고 절집 아래로 펼쳐지는 갖가지 푸름은 도시의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내 주고, 통일신라시대 세워진 3층 석탑은 오늘도 무량수전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3층 석탑을 뒤로하고 앞산을 바라보면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데, 거대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소백의  산줄기는 숨을 멎게 하는 장엄함을 선사한다. 어린 아기기 꼼지락대듯이 서서히 움직이는 구름이 하늘 아래 저 멀리서 꼬물대고, 지금도 자라나듯이 거대한 산줄기가 뻗어 나고 있음은 세월의 장구함을 품고 있다. 무량수전의 의젓함에 젖어 한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고고히 이어온 세월의 흐름이 새겨진 절집에 숙연해지고,  간절히 절을 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분위기에 압도되기도 한다.


서서히 길을 잡아 내려오며 만나는 은행나무 잎은 지는 해의 방향에 따라 다른 맛을 안겨준다.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은행잎이 떨어질까 망설이며 움켜잡은 듯도 하고, 계절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유유히 떠나려 손을 흔드는 듯도 하다. 지는 해가 비추어 주는 은행잎은 노란빛이 영롱하게 빛나고, 연한 노랑이 다시 태어나 그렇게 은은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길을 내려온 주변 상점에는 각종 기념품들이 진열되어 있지만, 어느 곳에 가도 언제나 같은 물건들이 기념품으로 나열되어 있음에 조금은 식상해진다.


주차장을 벗어나 내려오는 길은 또 한 가지의 아름다움을 주는데, 양쪽에 펼쳐진 빨간 사과밭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갖가지 종류의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려 보기 좋은 것은 농부들의 땀이 흠뻑 배어났기 때문이리라. 과수원 가득히 들어찬 수없이 많은 사과나무는 부러질 정도로 사과를 실어 농부의 부지런함을 알려주고 있고, 주인댁은 여전히 손님을 부르며 가을의 진미를 선보이려 한다.


얼른 사과 한 상자를 사들고 차에 올라 길따라 내려오면, 길가의 아름다운 은행나무가 또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길가에 펼쳐진 노랑 은행잎과 더불어 주변의 논에 익은 벼들이 배경이 되기에 그 어울림은 가을의 신성함을 그대로 선사해 준다. 이렇게 이어진 아름다운 길은 한참 동안 이어져 가슴속까지 전해지고, 주변의 사과밭은 서산으로 지는 가을 햇살을 따라 빨간빛을 발하며 이 가을을 축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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