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기억, 안데스의 위엄)
그해, 가을은 실했습니다.
울타리엔 붉은 호박 가을빛 발하고
뒤뜰 감나무 붉은 홍시가
뒷산 넘은 바람 따라 일렁이며
그해 가을을 축복했습니다.
뒤뜰 밤나무 밑 풀숲엔
붉은 밤톨이 가는 발걸음 멎게 하고
채마밭엔 한껏 익은 붉은 고추는
버거운 시름 더는 가을 선물되는
그해 가을은 풍성했습니다.
누렇게 익은 볏단 자리 삼아
논둑에 펼쳐진 그 날 성찬은
땅 위에 그려진 으뜸 그림이었고
바람 따라 너울대는 노란 볏 잎은
농사꾼과 신나는 춤사위되어
그해 가을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해, 가을은 실했습니다.
마당 끝에 높이 쌓은 볏가리는
황금빛 석양 따라 누런빛 발해
힘겨웠던 지난 나날 다 잊게 하는
멋진 가을날의 잔치였습니다.
알알이 맺은 볏단 헤아림은
아름아름 오는 겨울 푸근케 하고
가는 가을 성스러이 보내주며
오는 겨울 반가이 맞이하는
그 가을은, 참으로 실했습니다.
그해 가을은 정말 대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