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살이 이야기, 덴마크 니하운 )
시골에서 살아감은 언제나 자연과의 어울림이 가장 좋다. 푸르른 자연과 함께 하기에 마음껏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행운이기도 하다. 미세먼지 먼지가 가득한 곳을 생각하면 깨끗한 곳에서 산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자연의 엄청난 혜택이 아닐까 하면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집 뒤에는 듬직한 산이 버티고 있고 앞으로는 야트막한 산에 녹음이 철철 넘친다. 봄철에는 갖가지 나물이 넘쳐나고, 여름이면 진한 녹음이 넘치도록 묻어난다. 여름을 이겨낸 가을이 익을 무렵인 요즈음, 앞 산에는 밤송이가 입을 벌리고 붉은 아람을 쏟아내는 진풍경이 사람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가을이 영글어 밤이 떨어질 무렵이면 앞산 주인 할머니가 아침마다 알밤을 주으러 오시곤 했다.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가 작은 도랑을 내려가 건너는 것이 언제나 위태위태해서 염려를 하기도 했었다. 잘 못하면 넘어져 다칠 우려가 있어 다리를 놓을 수 없을까도 생각했지만 내 영역이 아니라 보고만 있었다. 어렵게 도랑을 건너 알밤을 주워 그릇에 가득히 담아오곤 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몸이 편치 않으신지 아니면 무슨 일이 있으신가 궁금하기도 했었다.
지난해에는 집에 설치된 인터넷을 손보러 온 사람들이 차를 세워놓고 갑자기 산으로 올라간 적이 있다. 얼마 후 내려온 사람들의 손에는 빨간 밤이 가득히 담겨 있어 깜짝 놀란적이 있다. 어떻게 밤이 있는지 알았느냐는 질문엔 자주 오는 곳이라 잘 알고 있단다. 그제야 여기에 밤이 익었다는 것을 알고 올라갔더니 정말 많은 밤이 쏟아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시골에 살면서 이런 즐거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었다.
밤이 영글어 떨어지는 시기가 되었지만 알지 못하고 오늘도 잔디밭과 채소밭을 돌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웃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산에서 내려오신다. 밤을 주워 내려오고 계신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많은 양을 주워 오면서 산에 밤이 많이 있다고 하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함께 오른 곳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 흔적이 역력하다. 곳곳에 빈 밤송이가 널려있고 곳곳에 있는 풀밭이 평평한 들판이 되어 있다. 밤을 주우면서 만들어낸 흔적들이었다. 이왕 올라갔으니 아내와 함께 밤을 줍기 시작했다.
어려서 해본 이력이 있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제법 많은 밤을 주웠다. 곳곳에는 동물들이 밤 껍데기를 벗겨 먹고 남은 흔적들이 어수선하다. 다람쥐를 비롯한 산 짐승들이 살아간다는 흔적일 것이다. 밤을 주으며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멈칫거리기도 했지만, 내가 두고 내려와도 누군가는 주워간다는 비겁한 핑계로 밤을 주으며 또 다른 생각에 하게 한다. 자연이 주는 감사함이 이렇게 많고도 넘치는데, 인간은 이 자연에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나를 말이다. 받은 만큼의 보답이 아니라 자연이 흘러가는 대로 놔두고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산은 봄철이 되면 갖가지 나물을 길러 낸다. 푸르른 녹음으로도 충분한데, 골짜기 곳곳에는 겨울을 이겨낸 갖가지 산나물들이 새싹을 밀어내 사람에게 안겨준다. 초봄에 홑잎 나물이 나오는가 하면 이어서 취나물과 두릅이 넘쳐나고, 뒤이어 고사리가 순을 내밀며 사람을 즐겁게 한다. 쌉쌀한 파란 쑥이 순을 내밀고, 길가에는 연한 민들레가 꽃을 피워 아름다움을 준다. 다시 여름내 푸름을 안겨준 자연은 또 가을의 결실을 건네준다. 정스런 밤이 있고, 도토리가 있으며 가을비가 추적대는 날은 갖가지 버섯을 길러내 인간을 키워낸다. 이렇게 많은 것을 주는 자연에 인간은 무엇으로 보답을 했던가? 생각해 보니 나는 아무것도 준 것이 없었다. 얻은 것뿐이었다.
맑고도 신선한 가을날, 어린 시절 즐거운 주전부리 감이었던 알밤을 주으며 자연이 주는 고마움을 생각해 본다. 나는 그들에게 해를 주지는 않았는가? 지금껏 누려온 자연을 가볍게 여기며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자연이 주는 고마움에 대한 보답은 하지 못할망정 그들의 살아감에 그르치는 일만이라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아주 소박한 생각 말이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수천 년 흘러 온 물의 방향을 바꾸고, 아름다운 산을 파헤치는 인간의 오만함만으로 자연의 울부짖음을 이만큼 보았으면 되지 않았을까? 외양간에 있어야 할 소가 사람이 살아야 하는 지붕 위로 올라가고, 자연이 만들어 놓은 가을 들녘이 물바다가 된 의미를 잠시나마 되새겨 보는 가을날의 오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