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쓸며, 크로아티아 블레드 호수의 아침)
성스러운 가을이면 만나는 낙엽은 가을의 꽃이면서도, 나무에게는 살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지는 조금은 서러운 계절의 전령이다. 초봄 싹이 돋은 어린 새싹이 한여름 무더위와 소나기를 견디어 내고, 가을이 오면 나무가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낙엽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깊어지고 기온이 내려가면 나뭇잎에 있는 엽록소가 분해되어 녹색이 줄어들고, 황색이나 주황색 색소가 드러나 아름다운 단풍이 만들어진다. 또 나무가 몸을 지탱하려면 많은 수분이 필요하지만, 겨울이 되면 부족한 수분으로 몸 전체를 지탱할 수 없게 된다. 할 수 없이 부족한 수분으로 나무가 살아남으려 '떨켜'라고 하는 것을 만들고, 나무와 나뭇잎 사이를 막으면서 처절하게도 자기 몸의 일부분을 떨구어 내는 것이 낙엽이다.
아름다운 낙엽은 빛나는 가을 햇살과 만나 반짝이는 반짝임은 눈가에 물기가 젖도록 아름답고, 한 해의 결실로 가는 가을로 물들여 가슴 한구석을 허전하게 만들기도 한다. 빛나는 일 년을 끝낸 후, 흩날리는 바람을 타고 대지에 내려앉은 낙엽은 나름대로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담고 있으리라.
부끄러운 듯이 하얀 솜털을 가진 자그마한 새싹이 자라나 여름 한나절 더위를 견디며 세상에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무더위와 야단스런 장맛비를 견딘 후, 찬란한 오색 물감으로 치장을 하고 태어난 성스런 낙엽이다. 가을이면 낙엽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길거리에 나뒹구는 낙엽은 사람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떨어진 낙엽을 아름답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에 따라서는 보기 싫거나 빨리 치워야 하는 귀찮은 낙엽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일 년의 삶을 살면서 여러 가지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주고 떨어진 낙엽이다. 나무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자기 몸을 잘라내어 만든 처절한 낙엽 이지만, 우리에겐 많은 즐거움과 사색을 주는 낙엽이기에 낙엽에 대한 예의로 적어도 하루 하고도 한나절은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
연초록이 변하고 초록이 익어 가을을 빛내고, 성스럽도록 아름다운 삶을 살아온 고귀한 낙엽이다. 봄에 태어나 여름과 가을을 살아온 낙엽을 떨어지고 바로 쓸어 내는 것은 너무나 야속하고도 잔인하지 않은가? 그러니 낙엽을 하루만 보고 만다는 것은 조금 아쉬워 한나절 정도는 덤으로 더 봐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거리에 성스런 낙엽이 지면, 낙엽이 떨어지기 무섭게 낙엽 한 톨 남기지 않고 쓸어 모아 숨이 막히도록 답답한 마대 자루에 넣는다. 그것도 모자라 발로 꾹꾹 밟아 넣어 낙엽을 해결해야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떨어진 낙엽을 보며 조금은 생각할 수 있는 여유는 줄 수는 없는 것인가?
낙엽이 지면 바람을 타고 이리 뒹굴기도 하고, 바람에 날리기도 하면서 오고 가는 사람들의 말거리가 되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아름다운 연인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어 주기도 한다. 재잘대는 여학생을 만나 책갈피가 되어 영원히 간직하는 고운 낙엽으로 남기도 하며, 더러는 고운 연인에게 건네지는 고귀한 선물이 되기도 한다.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보고 난 낙엽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부분은 낙엽을 쓸어 나름대로의 방법에 따라 처리하지만, 뜰앞에 떨어진 낙엽은 언제 쓸면 좋을까? 가끔 낙엽을 쓸면서의 생각이다.
하루하고도 한나절이 지나 낙엽을 쓸기 좋은 날은 조그마한 바람이 일어나는 늦은 오전 시간이 좋다. 이른 아침이면 이슬에 젖어 대지에 넙죽 엎드린 낙엽을 쓸기가 미안하고, 그러니 이슬이 조금 마르기 시작하는 늦은 오전 정도가 적당하다. 오후에 낙엽을 쓸면 지는 석양빛이 비추는 낙엽에 취해 쓰는 일을 잊어버릴 수가 있고, 늦은 오후에 쓸면 지는 낙엽을 쓸쓸히 보내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 싫다. 오전엔 서툰 햇살이 아직 남아 있어 낙엽의 윤기 나는 민낯을 볼 수도 있고, 낙엽을 보내는 사람도 쓸쓸함이 적어 좋다.
여기에 바람이 없으면 빗자루 가는 대로 낙엽이 죽은 듯이 나뒹굴어 낙엽의 시체를 치우는듯해 마음이 엄숙해져 싫다. 바람은 자그마하게 불어야 하는데, 바람이 너무 세게 오면 어떻게 쓸어도 낙엽을 쓸기에 적당하지가 않다. 바람과 같은 방향으로 쓸면, 낙엽이 쉬이 날려 어지러우면서 너무 멀리 날아가 낙엽을 자세히 볼 수가 없어 싫다. 낙엽을 바람과 반대 방향으로 쓸면, 바람에 날려 가는 낙엽이 어수선해 낙엽을 원망할 수 있고, 시간만 허비하며 낙엽의 참모습을 불 수가 없어 아쉬워진다.
하지만 햇살이 있는 늦은 오전에 작은 바람이 불면, 바람의 어느 방향과 상관없이 낙엽을 쓸기가 좋다. 바람과 같은 방향이면, 낙엽을 쓰는 대로 낙엽이 이리저리 흩날려 낙엽의 온몸을 세세히 볼 수 있어 행복해 좋다. 바람을 마주하며 낙엽을 쓸면, 바람의 심술로 시간이 조금 걸려도 바람에 낙엽이 높이 날려 온몸을 세세히 오래 볼 수 있어 좋다. 일 년을 보내며 낙엽이 지는 가을이면, 낙엽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자연의 성스러움에 반해 넋을 놓고 가을을 노래한다. 하지만 대지에 누운 낙엽을 쓸며 그리도 낙엽을 오래 보려 하는 것은 아름다움과 처절함을 동시에 준 당신과 멀리함이 아쉽고, 올 해가 지고 있다는 것이 아쉬워 그런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