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호수에서 삶을 그리다.

(가을에 주는 소식, 나미비아의 사막 )

by 바람마냥

아침이지만 안개가 자욱해 밖은 어둡다. 시간은 7시가 넘어선 아침인데도 그렇다. 나무가 가득한 앞산도 뿌연 안개를 쓰고 있다. 지붕에는 하얀 서리가 내렸다. 얼마 있으면 가을이 물러나고 겨울이 올 때가 되었다는 소식 이리라. 옷을 두텁게 입고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페달을 밟고 달려 내려가는 골짜기 바람이 제법 싸늘하다. 할 수 없이 페달을 서서히 밟으며 속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찬 바람에 온 몸이 움츠려지기 때문이다. 찬 바람을 맞으며 골짜기를 벗어나자 자그마한 햇살이 찾아왔다.


일요일인데도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차량이 많다. 쉬는 날인데도 어디를 그리 바쁘게 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도 그 대열에 끼였으니 그들도 내가 궁금할지 모르겠다. 할 일이 없어서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아침부터 운동을 하러 나서는구나! 어떤 생각일지 모르지만 페달을 열심히 밟아야 서늘한 몸을 데울 수 있다.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골짜기 사이를 오고 간다. 지나는 곳에는 집집마다 많은 개를 키우고 있다. 어느 개는 사납게 짖어대지만, 하늘을 향해 컹컹 짖는 개도 있다. 심심해서 짖는 것도 같다. 나 같은 사람이 있어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한다.


길가 은행나무는 노란 옷을 해 입었다. 성질 급한 잎은 벌써 대지를 덮었고, 햇살을 적은 곳엔 아직도 푸름을 자랑하고 있다. 씩씩하게 흐르는 물이 맑아 기분이 좋다. 속까지 훤하게 들러낸 바닥엔 작은 고기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고지가 높아 배추 주산지인 동네엔 배추가 밭에 가득하다. 아침에 내린 서리가 하얀 물을 들였고, 곳곳에 벼를 베는 소리가 요란하다. 농부는 얼마나 소출이 있으려나 궁금한지 논가를 서성인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벼를 베고, 맛깔난 점심으로 배를 불리던 시절은 갔다. 기계가 모든 것을 대신한다. 많은 사람도 필요 없고 두어 명이면 해결된다. 사람이 필요 없는 시절이 되었다. 그것도 해 낼 젊은이가 없어 안타깝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배추밭도 푸름이 가득해졌다. 유모차에 몸을 기대 배추밭을 돌보던 할아버지 부부는 안녕하신지 궁금하다. 햇살이 비추는 언덕배기 배추밭은 푸름으로 넘친다. 두 분의 노고를 하늘이 외면하지 않았음이 다행스럽다. 맑은 냇가에는 오리들이 나왔다. 오리는 한없이 평화스러워 보이지만, 휘젓는 발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쉼 없이 휘젓는 노력 덕분에 한 없이 평화스러워 보인다. 어떻게 편안할까가 궁금했다. 맑은 물 덕분에 의문이 풀렸다. 논두렁엔 덜 영근 두렁 콩이 햇살에 나풀거린다. 남은 가을 햇살에 힘을 모아 가을을 재촉한다.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가고 있다. 가을이 있어 청량한 하늘을 볼 수 있음이 행복하다.


비탈길에 밟는 페달이 힘에 겹다. 내려서 걸어갈까 망설이다 근육의 힘을 빌려보기고 했다. 언덕배기를 오르자 양지바른 곳에 시골 주택이 나타난다. 어김없이 큰 개가 으르렁거림에 놀라 페달을 밟는다. 골짜기 골골마다 어김없이 주택이 자리 잡았다. 멀어도 차량이 있어 가릴 곳이 없나 보다. 산이 있고 널따란 들판이 한 폭 수채화를 만들어 준다. 햇살을 받으며 살아가는 산골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의 삶도 윤택해졌다는 증거 이리라. 길가에는 이웃을 즐겁게 해 주던 빈 밤송이들이 즐비하다. 모든 것을 내준 빈 밤송이가 지나는 차량에 밟히고 눌려 안쓰럽다. 모든 것을 준 것에 대한 보답이 아쉬워 얼른 눈을 돌렸다.


동네 끝에 오르자 자전거 길이 끊어졌다. 자전거를 끌고 가는 수밖에 없다. 누군가 깨끗하게 산길을 청소했다. 빗자루로 낙엽 한 장 없이 쓸어 놓은 자국이 뚜렷하다. 부지런함이 깨끗함을 주지만 가끔은 낙엽이 있어도 좋았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가을이 왔음은 곳곳에서 알 수 있다. 허공에 매달란 빨간 단풍이 그렇고, 나무를 타고 오른 붉은 담쟁이덩굴이 그렇다. 곳곳에서 붉게 물든 단풍이 가을이라는 것을 강조하듯이 물들었다. 가을을 읽으며 넘어선 산 말랭이에 커다란 성이 보인다. 드디어 상당산성에 도착했는가 보다. 우람한 산성의 모습이 보이고, 드문드문 등산객들이 보인다.


언덕 배기에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언덕에서 바라본 성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어느새 막걸리 집에 잔을 기울이는 사람도 보인다. 주차장엔 차량들로 가득하고, 호수에도 가을이 들어있다. 호수 둘레를 따라 단풍나무가 물이 들었고, 물가에 갈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그 너머에는 억새풀이 가을을 실감 나게 만들어 준다. 햇살이 내린 의자에 고구마와 사과로 아침 성찬을 준비한다. 지나는 사람들도 즐거운 산책을 하며 커피를 마신다. 많은 먹거리를 펼쳐놓고 가을을 즐긴다.


신성한 성찬을 즐기는 중에도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읽힌다.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소리가,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코로나 19로 모두가 힘든가 보다. 어서 이 병란이 종식되길 바래본다. 사는 것이 무엇인가 문득 의문이 든다. 쉽게 답이 나올 리 없다. 하지만, 거기가 거기라는 생각이다. 잘 살면 얼마나 더 잘 살겠는가? 가을날, 자전거도 타며 성찬을 즐기는 아침이 얼마나 좋은가? 하루하루 살아감에 자신만의 발걸음으로 살면 되는 것이 아니던가? 아등바등 사는 삶이 지천이라 이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잘 살고, 행복한 삶이란 어떻게 사는 것일까?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는 가을날 아침에 만난 '삶'에 대한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