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결혼을 했다. 울란 바토르)
참, 경사롭고도 어려운 일을 해냈다. 오랫동안 고대하고 기다렸던 아들의 결혼식이 며칠 전에 끝났다. 코로나 19로 어수선한 시절에 결혼을 결정하고 날짜를 잡기가 참 혼란스러웠다. 50명으로 제한을 하기도 하고, 거리두기를 하며 식사를 하기도 한다니 날마다 걱정이 되었다. 혼기가 되었지만 소식이 없는 아들이 늘 걱정이었다. 일본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느라 고생했고, 아직도 객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아들을 보는 것이 불편해서이다. 친구들은 거의가 혼사를 마친 나이가 되었기에 어때나 저때나 기다림으로 기대를 했었다. 오래전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걱정 한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아들이 여자 친구 이야기를 했다. 나름대로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아들이었기에 대략의 낌새는 알고 있었지만, 서두름 없이 기다리고만 있는 중이었다.
아들이 여자 친구를 인사시키는 날, 그만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의 삶이 모두가 그렇고 그런 거, 아들이 좋다고 하는데 큰 이유가 있지 않다면 내가 딴지를 걸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아이들을 전적으로 믿고 살아온 지금, 내가 무엇을 더 바라고 이유를 단단 말인가? 시집을 보낸 딸아이가 인사시킨 사위도 그랬다. 그만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첫 번에 승낙 아닌 동의를 했고, 아들도 그런 뜻에서 흔쾌히 동의를 했다. 서둘러 양가 부모가 만나 인사를 하고 결혼 날짜를 잡았다. 세월이 그런지라 마스크로 무장하고 만났지만 훈훈하게 이야기가 되어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결혼식 장소가 그랬고 식의 진행도 그랬다.
결혼식을 비롯한 모든 절차는 약소하고도 간소하게 하기로 양해를 구했다. 너무나 복잡한 절차에 가끔은 짜증이 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되도록이면 간단히 하자는 말에 모두가 좋아하며 환영하는 의견이다. 양가에 오고 가는 예단이 필요 없고, 신랑, 신부가 주고받는 예물도 간단하게 하되 자신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자그마한 커플링으로 대신하고 말았다. 생각에 따라 좋기도 하지만 불편하기도 한 폐백도 생략하기로 했다. 예식이 끝나고 폐백을 하다 보면, 손님은 손님대로 식사를 하고 떠나는 실례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신혼여행도 이튿날 가기로 했다. 결혼식날 바쁜 틈에 출발하느라 인사도 제대로 못하는 실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아이들도 신부 측 부모님도 흔쾌히 승낙하시어, 단지 결혼식만 끝내고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예식을 하기로 했다. 결혼식은 간단하게 하기로 하고, 그 후에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예식이 끝나고 하객들의 식사 접대를 해야 한다. 코로나 19가 잠잠해지고 당국의 조치도 완화되어 손님들의 출입이 자유스러워 정말 다행이었다. 친구들 중운에 혼사를 정해 놓고, 연기에 연기를 거듭해서 아직도 연기를 해놓았단다. 모임을 하는 친구들이 그 자리에서 모임을 한다는 연락도 있다. 초청인원을 놓고 고민 끝에 얼마 전 결혼식을 치른 지인에게 상의를 했다. 찾아오는 손님수가 코로나 19와 별로 상관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를 여러 날 고민을 했다. 손님을 어떻게 초대할 것인가? 전혀 하지 않을 수도 없고, 어느 선까지 해야 할 것인가? 참 이런 것이 어려워 오래전부터 대사(大事)라고 했나라는 생각이 든다.
몇 날의 고민 끝에 마음을 정했다. 그동안 나와 가깝게 소식이 오간 사람들만 최소한으로 연락하기로 했다. 초청인원이 결정되고 모바일 청첩장을 조심스레 보냈다. 반응은 나의 의도와는 다른 사람이 여러 명 있어 곤욕스럽기도 하였다. 여러 번 연락이 왔기에 청첩장을 보냈지만 무관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락도 하지 않은 사람이 연락을 했다. 왜 연락하지 않았느냐는 항변 아닌 항변을 한다. 전화상으로 축하한다는 말만 하는 사람도 있고,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축의금만 불쑥 보내는 사람도 있다. 참,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그래서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게 식사인원이 결정되고 계약을 했지만 끝나기 전까지는 불안하다. 혹시, 식사가 모자라면 어쩔까? 식사 주문량이 많이 남으면 낭비가 아닌가? 이런 걱정 끝에 넉넉할 정도로 인원을 정했다.
상견례를 하는 자리에서 결혼식 진행에 관해 상의를 하던 중, 축하연주에 관해 의견을 타진했다. 오랫동안 색소폰 동호회를 하면서, 가끔 동료들의 혼사가 있으면 축하연주를 하기도 하고, 지인들이 부탁을 하면 축하연주를 해 주기도 했었다. 그런 연유로 축하연주는 동호회에서 해주면 어떻겠느냐는 말에 모두가 좋다는 반응이었다. 축하연주를 하기로 결정되면서 동호회원들과 틈틈이 연습을 했다. 누군가는 혼주가 솔로곡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내가 주인공이 될 이유가 없다는 말로 사양했다. 딸아이의 결혼식 때도 동호회 회원들과 어울려 축하연주를 했었다. 주위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받은 바가 있어 이번에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걱정을 하던 날짜가 흘러가고, 드디어 결혼식 날이 되었다.
다행히도 코로나 19가 잠잠해지고 손님들의 초대도 순조로웠다. 가족 친지들로 식장이 가득한 가운데 간단하고도 간결하게 식이 진행되었다. 하객들이 예식장을 가득 메웠고, 앞쪽으로는 우리 동호회 회원들 15명이 색소폰으로 무장하고(?) 자리를 했다. 식이 거의 무르익을 무렵 축하연주 시간이 되었다. 15명의 색소폰 동호회원의 연주로 결혼식 축가로 유명한 'Forever With You'가 연주되었고, 두 번째는 남진의 '님과 함께'가 신나게 연주되었다. 대부분 예상하지 않은 10여 명의 우렁찬 색소폰 소리에 놀랐고, 그것도 혼주가 나서서 합주를 한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그렇게 식이 끝나고 식당에 들러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축하연주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간단한 예식이 끝나고 결혼한 아들 내외와 함께 식당에 들러 일일이 인사를 했다. 이런저런 일을 했으면 하지 못할 최소한의 인사를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이렇게 아들의 결혼식이 끝이 났다.
코로나 19로 복잡한 환경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아들의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달 동안 가슴을 졸였지만 운이 좋았다. 간소하게 진행된 식도 괜찮았고, 초청된 손님들을 접대하는 시간도 넉넉해 좋았다. 결혼식 후, 신랑과 신부의 시간을 줄여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절차도 괜찮았다. 손님은 손님대로 식사를 하고 떠나고, 신랑 신부는 신혼여행을 떠나느라 부산을 떠는 것을 피했음이 너무 좋았다. 초대된 손님수보다 주문한 식사량이 조금은 많았지만 부족한 것보다는 마음이 편해 좋았다. 거기에 동호회원들이 연주한 축하 연주도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이렇게 하여 간단하지만 알뜰한 아들의 결혼식이 끝나게 되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다.
11월 중순쯤은 코로나 19가 잠잠해저서 손님들을 초청해도 관계없는 시기가 되었다. 그동안 가슴 졸였던 걱정거리가 해소된 하늘이 준 행운이었다. 지금도 혼사를 정해놓고 연기에 연기를 거듭한 친구들도 많다. 어서 이 사태가 진정되어 모두가 축복스런 결혼식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결혼식, 왜 대사라고 했는지 혼사가 끝나고 다시 한번 알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