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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Dec 23. 2020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선물

(부모님이 기억나는 크리스마스,카리브해에서 만난 아침,본인촬영)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자그마한 골짜기에 자리한 시골 동네는 마냥 평화스러운 작은 동네였다.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마치 이마를 맞대고 사는 듯했다. 울타리를 넘어 정이 오갔고, 이웃집이 내 집인양 들락거릴 수 있을 정도로 허물이 없었다.

자그마한 골짜기에 농사를 지을 땅은 한계가 있어 모두가 팍팍한 살림살이를 해야 했다. 먹고살기도 힘겨웠던 시절이지만 시골 동네엔 아이들이 참, 많기도 했다. 아침이면 한 무리의 아이들이 학교로 향했고, 저녁때면 한 떼거리의 아이들이 동네로 쏟아 저 들어왔다.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아이들이 지나는 길에는 갖가지 일이 일어났다. 길가에 무밭이 성하지 않았고, 과수원의 배가 남아나질 않았다. 하지만, 주인에게 들켜도 한대 쥐어 박히면 끝이었고, 기껏해야 종아리 몇대로 족했다.자갈이 깔린 신장로를 따라가면 가까운 멀쩡한 길을 두고 늘 먼길을 돌아다녔다. 거기에는 늘 문제가 생겼다. 이웃동네 아이들과 싸우기도 하고, 어른들한테 붙들려 혼이 나기도 했다.이것은 모두가 여러 친구들이 있으니 가능했던 일 이리라. 즐거웠던 학교 시절, 추운 겨울이 오고 방학이 다가왔다.


겨울방학은 늘, 12월 20일쯤으로 정해져 있는 듯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런 기억이 남아있다.

12월에 접어들어 산골에는 눈이 오기 시작한다. 눈이 오면 적어도 무릎까지 묻힐 정도가 되어 언제나 학교 가는 일이 걱정이었다. 어린것들이 오리나 되는 학교길을 오가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었다.

비가 오면 비닐을 쓰고 가야만 했고, 많은 비가 오면 하던 수업을 끝내고 와야 했다. 학교에 가기 싫으면 중간에서 놀다가 집으로 가는 일도 있다. 며칠 만에 들통이 나서 종아리를 맞아야 하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 시절이었다.


어렵게 2학기를 마치고 겨울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린것들은 먼 길을 오고 가지 않아도 되어 기쁘기만 했다. 시골에서 할 것은 많지 않지만 산이 있고 들이 있어 언제나 즐거웠다.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며 고기를 잡고, 산을 헤매는 것이 그렇게도 재미있었다.


기억엔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이다. 담임 선생님은 여선생님이셨는데,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이었다. 라디오도 없고, 텔레비전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이다. 자그마한 시골에서 크리스마스에 관해 알 수도 없어 선생님의 이야기가 아는 것의 전부였다.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것도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좋은 선물을 많이 준단다. 크리스마스 날, 예쁘게 포장을 해서 대문 앞에 갖다 놓는다는 것이다.


약간의 후회가 생겼다. 남의 밭에 들어가 무를 뽑아 먹었고, 친구들과 배밭을 들락거렸다. 잘 못한 일은 생각나면서 착한 일을 한 것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것은 호기심이 생기게 하는 이야기였다. 점차 나쁜 짓을 한 것은 오간데 없고, 예쁘고도 지엄하신 담임선생님이 말씀을 하셨으니 선물만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좋은 일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고쳐먹고 크리스마스 날을 기다렸다.


선물을 주시면 무슨 선물을 주실까? 그렇게 겨울이 깊어가면서 겨울 방학이 되었다.

 방학이 되고 크리스마스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눈썰매를 타고 오신다고 했는데 눈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런데 하늘이 도와주었다. 다행히도 크리스마스 전날 기어이 눈이 오고 말았다. 초가지붕에도, 커다란 마당에도 눈이 소복이 쌓였다.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얼마든지 썰매를 타고 오실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이 많이 와서 소복이 쌓여 전혀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잘 되어가고 있어 가슴이 설렌다.  


시골에서 작은 농사 거리로 가정을 꾸려가는 자그마한 소농, 거기엔 크리스마스가 있을 리가 없었다.

작은 교회라도 있었으면 귀동냥으로 알았을 크리스마스였다. 교회는 면소재지에 있는 것이 유일했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저곳이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바라본 곳이 교회였다.작은 시골에서 농사일만 알고 평생을 살아오신 부모님이 크리스마스를 알리가 없다. 거기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생각할 수 없었고, 그런 여유도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하늘 같은 선생님이 착한 일을 한 어린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신다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착한 일을 한 적도 별로 없고, 남의 밭에서 무나 뽑아 먹던 아이이지만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꿈에 부풀어 있었다. 선물을 주신다면 얼마나 큰 것을 주실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무슨 선물을 주실까?

크리스마스 전날부터 하얀 눈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무엇을 선물로 주실까? 나쁜 짓을 한 것은 오간데 없고 이젠 선물이 무엇일까만이 생각의 전부였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자 밖에는 눈이 더 많이 쌓였다.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문까지 걸어 나갈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기 때문이다. 눈이 쌓였는데 바람이 불어 엄청 추운 듯했다.  

춥지만 선물에 눈이 어두워 망설임 없이 밖으로 나갔다. 수북이 쌓인 눈을 헤집고 나가 커다란 대문을 열었다. 대문을 열자 하얀 눈이 쌓여 있는데 썰매를 타고 온 흔적이 없다.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왔다 간 흔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선물도 없다. 혹시, 눈 속에 묻혀 있는 것은 아닌가? 열심히 눈을 쓸어 보았지만 역시 선물은 없었다.

끝내 받지 못한 나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다.내가 착한 짓을 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나쁜 짓만 해서 일까? 아니면 공부를 덜 해서 그럴까?갖가지 의문이 생겼지만 끝내 부모님에게는 여쭈어 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어린것도 부모님의 사정을 알고 있었을까?


몇 년이 지나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의문은 풀렸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부모님을 기억해 보는 오래 전의 추억이다. 크리스마스 날에 받지 못한 그 선물은 가슴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부모님의 커다란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어 남아 있다.


엊그제 딸아이가 전화를 해와 손녀와 통화를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손녀는 아직 산타클로스 선물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해마다 딸아이가 선물을 준비해 놓고 할아버지가 준 선물이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듯도 하다.


크리스마스를 지나고 만나도 갖가지 인형으로 선물을 대신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무슨 선물을 원하느냐는 말에 왠지 볼펜을 이야기한다. 손녀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늘 여러 색이 있는 색연필이나 볼펜 등을 좋아한다. 딸아이가 작은 소리로 천 원이면 족히 해결할 수 있단다.손녀는 순진하고 착해서 인형을 사면서도 할아버지 주머니를 생각해 엄마에게 의견을 묻기도 한다. 올해는 어떤 인형을 가지고 싶어 할까? 올해는 손녀가 원하는 인형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색색의 볼펜도 사주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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