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는 순대를 싫어해요.

(순대국밥집 풍경, 몽골 흡수골의 저녁: 본인 촬영)

by 바람마냥

어려서부터 순대국밥은 참, 친숙한 음식이었다.

친숙하게 된 이유는 아마, 어머니께서 순대 국밥을 좋아하셨기 때문이리라.

오래전 깊은 병환으로 퇴원하고 오시던 날, 힘겹지만 맛있게 잡수시던 순대국밥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순대국밥은 가끔 시골 5일장에서 만날 수 있었고, 잊을 수 없는 순대국밥은 초등학교 운동회날에 또 만날 수 있었다. 먼지가 나는 학교 운동장 구석, 천막 안에서 먹는 뜨거운 순대국밥이야말로 천하제일 맛이 아니던가?

그러니 순대국밥은 나의 입맛에 맞춤형 음식이다. 참, 맛있는 음식이다.


언젠가 살고 있는 집 앞에 자그마한 순대국밥집이 생겼다.

간판도 정다운 '시골 순대'였다. 지나는 길에 늘 궁금해했었는데, 아내가 한 번 가보고 싶어 한다.

작은 순대집은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부부가 인사성 바르고 깔끔한 외모를 갖춘 사장님이었다.

가끔 찾아가면 언제나 웃는 얼굴로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고 아름다워 자주 가는 곳이 되었다.


순대 국밥과 순대 한 접시 그리고 막걸리를 한 잔, 그 맛은 오래 전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멋진 맛이었다.

가끔은 산행을 한 후에, 늦은 운동으로 허기가 질 때 찾았다. 아내와 볼 일을 보고 막걸리가 생각나면 찾곤 했다.


정갈하게 만들어진 순대국밥에 잘 숙성된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적당히 익은 깍두기를 얹어 한 입 가득히 넣어 씹는 기분은 모두가 알지 않을까? 또는 간이 적당한 겉절이를 얹어 먹는 맛도 대단한 맛이지 않던가?


언젠가 아내와 순대집을 또 찾았다. 문을 열고 주인과 인사를 나눈 후 문을 닫으려는 순간, 우리 뒤를 따라 들어오는 사람은 세 사람이었다. 중년 부부와 어르신 한분인데, 거동이 약간은 불편한 듯한 할아버지가 중년부부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셨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자, 세분도 대각선 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생각지도 않게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들릴 수 있는 거리였다. 할아버지는 약간의 다리가 불편하신데, 아들 내외가 점심을 사 드리러 온 모양이다.

할아버지의 의견을 들어 아들이 순대국밥을 세 그릇 시킨다. 잠깐이 시간이 지나자 우리 음식도 나오고, 세분의 음식도 나왔다. 먹음직한 순대국밥에 어르신은 어느새 흐뭇한 표정이다.


막걸리 한 잔에 순대 한 점을 먹으려는 순간, 말소리가 들려온다.

내용인즉슨, 순대 국밥을 나오자마자 아들이 순대 몇 점을 숟가락으로 어르신 그릇에 놔드린 모양이었다.

어르신은 손사래를 치며 극구 사양하신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씀이다.

아들은 순대 몇 점을 기어이 어르신 그릇에 또 놓고 말았다.


어르신이 난처한 얼굴을 하자, 옆에 있는 여자가 말을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어르신께 말을 건넨다.

'애비는 순대를 싫어해요' 남편은 순대를 좋아하지 않는단다.

어르신은 난처한 자세로 가만히 계시지만 얼굴에는 흐뭇한 표정이 가득하다. 그렇게 식사는 계속되는가 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중년 여자는 남편과 어르신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중년 여자가 머뭇거리더니, 순대 몇 점을 숟가락에 담아 얼른 남편의 국밥 그릇에 옮겨 놓는다.

잠시 후, 다시 한 숟가락에 담아 눈치껏 또 옮겨 놓는다.


중년 남자는 눈을 흘기며 그만하라는 눈짓을 한다. 어르신은 못 본 척하시며 순대국밥을 드신다.

아내도 이제야 순대국밥을 자기 입으로 넣기 시작한다.

세 사람의 흐뭇한 점심식사는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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