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말이 없었다)
자그마한 시골 동네, 시끄러운 공장도 없고 축사도 없으며 오로지 사람들만이 살아가는 아담한 동네이다. 몇 년 전에 자리 잡아 자연이 고마워 늘 감사하면서 살고 있는 곳이다. 전 산이 울타리처럼 아래로 내려와 마치 울타리를 친 것처럼 보이는 동네 '전하울'이라는 마을이다. 시골집 앞으로는 작은 도랑이 흐르고 아늑한 산이 동네를 편안하게 감싸 안았다. 그래서 더욱 포근하고 정감이 가는 동네이다.
봄이면 갖가지 나물이 나오고, 작은 마을에 배추와 벼가 익어가면 '평화'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는 동네이다. 동네로 들어서면 아늑한 산이 둘러싸고 있고, 가끔 소쩍새가 어두운 밤을 깨우곤 하는 곳이다. 아침이면 온갖 새들이 날아들고, 산너머로 햇살이 넘어오면 온 산이 서서히 밝아지는 영화관을 연상케 하는 동네이다. 가을이면 입구부터 붉은 국화가 마을을 밝혀주고,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켜주는 곳이다. 몇 년 전부터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를 재고 외지인이 오고 가면서 붉은 깃발이 꽂히기 시작했다. 가끔은 이상한 현수막이 붙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했다. 적어도 자연만은 무자비하게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면서 조마조마한 시간이 흘렀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던 차에 동네 앞에 안내문이 세워졌다. 길을 확장한다는 안내문이었고, 공사기간까지 표시해 놓았다. 안내문을 보면서도 자연 손상을 덜했으면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대형 중기계와 덤프트럭이 오고 가면서 우려는 현실이 되어갔다. 우선은 동네를 오가는 것이 엄청 불편하고 위험하다.
중장비와 대형트럭이 오고 가면서 어느 때는 붉은 흙으로 덮여있고, 어느 때는 흙을 닦아내느라 물을 뿌려 놓아 차를 몰고 지날 수가 없다. 흙이 튀어 오르고 물이 튀어 오르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동네 앞에 이르면 흙이나 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조심 서행을 해야만 한다. 얼마나 중요한 도로인지 알 수도 없다. 주민들은 알 필요도 없다는 듯이 엄청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누구 하나 설명도, 해명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중장비와 대형 트럭이 쉼 없이 오고 가더니 동네의 모형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흉측한 몰골로 바뀌고 말았다. 아기자기하던 논과 밭이 바뀌어 갔다. 산을 헐고 남은 흙이 갈 곳이 그곳이었다.
산허리를 자르며 나온 흙으로 곳곳을 메웠고, 산은 두 동강이 나면서 흉측스러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울타리처럼 동네를 감싸고 있던 산 허리를 두 동강을 내놓고 만 것이다. 울타리의 한 구석을 헐어내고 만 것이다. 뻥 뚫린 산을 보면서 화가 나기도 했다. 멀리서 보면 이가 빠진 것처럼 보기 싫고, 무엇이라도 금방 쏟아 저 나올 기세이다. 나무를 잘라내고 흙을 연신 퍼 날랐다. 곳곳에 산을 허문 자국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조그마한 길이 있던 곳에 거대한 길이 생기면서 만든 자연의 상처들이다. 산을 헐면서 나온 흙을 실은 대형차량의 행렬은 그칠 줄 모르고 들락거린다. 사람이나 차량이 오고 가는 것이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감에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길을 만들고 다리를 놓는 이유도 편리를 위한 것이다. 다만 편리함의 추구가 정당한 당위성이 있어야 하고, 보통의 상식을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소수나 얼마간의 편리함만을 추구하기 위해 엄청난 자연을 훼손하거나 상식을 넘어서는 안 된다. 거대한 산을 싹둑 자르고 엄청난 불편을 겪어야 하는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뭐가 그리 중요하고 꼭 해야만 하기에 저렇게도 어설픈 산을 만들어 놓았을까? 불편함과 어설픔을 겪는 주민으로서는 답답하기만 하다. 장구한 세월이 만들어 놓은 산의 모습이었고 자연이 만든 아름다움이었다. 얼마나 중요하고 긴박한 공사인지 알기나 했으면 속이라도 후련하겠다. 시골에 사는 무지렁이는 알 필요가 없다는 뜻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중요한 도로이니 거대한 산을 두 동강 내면서 한다면, 무엇이 그리도 중요했을까? 거대한 산 허리를 두 동강 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을까? 자연이 만들어 놓은 그 산을,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전해주는 그산을, 긴 세월 동안 동네를 지켜온 그 산을 그렇게 쉽게 대해도 되는 것인가? 아침저녁으로 동네를 오가면서 두 동강이 난 산을 보면 마음이 저리도록 아프다. 두 동강이 난 산을 안타까워하며 바라봄이 오늘도 처절하도록 쓸쓸함을 준다. 언제, 자연을 소중하고도 고마워하며 살아갈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산 허리가 두 동강으로 잘린 산 허리를 오늘도 가슴 아파하며 바라보고 있다. 볼수록 아쉽고도 아픈 시골집이 있는 앞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