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귀나무 꽃을 만나다, 자귀나무)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 길에 올랐다. 매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하고 있는 행사이다. 친구들끼리 모여 곳곳을 누비며 자전거를 탄다. 때로는 전국 유명지를 다니면서 자전거를 즐기고 있다. 오전 10시경, 친구들과 어울려 자전거 길에 올랐다. 운동을 하러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로 인해 갈 곳이 적당치 않아서인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곳곳에 설치된 많은 운동기구들이 쉴틈이 없다. 가끔 찾아오는 새떼들도 자리에 앉아 쉴 틈을 주지 않는 아침이다.
자전거에 올라 달리는 길, 곳곳에 금계국이 노랗게 꽃을 피웠다. 얼마나 번식력이 좋은지 길가를 가득 메웠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많지 않았지만 올해 만난 제방에는 노란 꽃으로 가득하다. 어느새 고추밭엔 큼직한 고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농부의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는 풍경이다. 어린 고추모를 심고 추우면 냉해를 입을까, 병충해를 입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고추밭이다. 검은빛으로 자란 고추가 건실함을 과시함에 흐뭇한 마음이다. 논에도 벌써 검푸름이 가득해졌다. 뒷짐을 쥔 농부 손에 들린 긴 삽자루가 한결 평화스럽기만 하다. 한 없이 풍요한 가을을 약속하는 듯해 페달을 밟는 발이 가볍기만 하다.
한참을 돌아 대청호로 내려가는 길, 봄내 벚꽃으로 가득했던 길이다. 여름으로 접어드는 길에 하늘을 막을듯한 녹음이 가득하다. 편안함과 행복함을 주는 아름다운 길이다. 지나는 차량도 드물고 가끔 널따란 들판을 오가는 농부의 트럭만 눈에 보인다. 우리는 언제나 저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오래전 일본 들판에서 만났던 풍경이다. 모든 논에 차량이 드나들 수 있고, 모든 것이 기계화된 농업에 한없이 부러워 보였었다. 우리도 그런 세월이 오고 말았지만, 오래전에 들판에서 만났던 그리운 추억은 아쉽기도 하다.
모를 심는 들판을 그냥 지날 수가 없었다. 밥을 먹고 가라는 성화를 이길 수가 없어서이다. 하얀 쌀밥에 바삭한 김을 만날 수 있었다. 노란 콩나물에 빨간 고춧가루가 얹힌 반찬은 상상만으로도 울컥해지는 맛이다. 먼 논에서 일을 해도 목청을 높여 불러야 속이 시원했다. 부르지 않고 먹는 밥은 소화가 되지 않은 듯해서이다. 이젠 만날 수 없는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조금은 서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변하는 세월을 어쩔 수야 있다던가? 친구들과 어울려 앞서거니 뒤서거니 페달을 밟아 간다. 곳곳에 꽃들의 잔치로 떠들썩한 들녘이다.
푸르른 녹음 속에 금계국이 땅을 물들였고, 가끔 만나는 분홍낮달맞이 꽃이 한창이다. 누가 저렇게 많은 꽃들을 심어 놓았을까? 어느 누구의 수고로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함을 알고 있을까? 고맙고도 감사한 사람들이 많아 좋다. 늘 받고만 살아온 삶이 부끄럽기도 하다. 페달을 밟는 근육이 상쾌해진다. 한참을 돌아 도착한 대청호엔 평화가 가득 고였다. 잔잔한 물결에 숨이 멎었고, 찰랑찰랑한 호수 안에 녹음이 가득하다. 어느 곳이 산이고 어느 곳이 호수인지 알 수가 없다. 한없이 평안함을 주는 물, 언제 봐도 다시 오고 싶은 아늑한 풍경이다. 다시 숨을 고르며 자전거에 올랐다.
찾아온 더위에 몸이 달구어질 무렵, 눈앞이 환해지는 꽃이 보인다. 분홍에 하양이 섞인 아름다운 꽃이다. 여름 즈음에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 자귀나무가 꽃을 피웠다. 지나는 언덕 위에서 너울 거리기도 하고, 누구도 찾지 않는 산자락에서도 자라는 나무이다. 자귀나무 꽃, 많은 꽃 중에서도 고고한 빛깔로 품위를 자랑하는 꽃이다. 바람이 불어와도 촐랑대는 일이 없고, 언제나 느긋한 흔들림을 보여줄 뿐이다. 옆으로 가득 펼쳐진 잎이 그렇고, 분홍빛으로 하늘 거리는 꽃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꽃이다.
자귀나무, 자는 모습이 귀신 갔다 하여 '자귀나무'라 하는 나무이다. 잠자는데 귀신같다 하여 '자귀나무'라 했다고도 하는 나무이다. 연분홍빛 꽃으로 치장을 하고 작은 바람에 그네를 타고 있다. 콩과에 속한 낙엽 소교목으로 밤이 되면 양쪽으로 마주 난 잎이 서로 맞대고 잠을 자니 그럴듯한 이름이기도 하다. 소가 자귀나무 잎을 좋아해서 소쌀나무라고도 하는 나무이다. 콩과 식물이라 콩깍지 같은 열매가 달리는데 바람이 불년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흔들려 여설목(女舌木)이란 이름도 가지고 있는 나무이다.
낮에는 햇살을 받으려 잎을 펼치면서 밤이 되면 수분 증발을 방지하고 자기 방어를 위해 잎을 닫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옛사람들 눈에도 자귀나무는 예사롭지 않게 보였는가 보다. 금실 좋은 부부가 꼭 껴안고 잠자는 모습으로 보아 야합수(夜合樹), 합환수나 합혼수, 월선화(鉞仙花), 유정수(有精樹)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수많은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나무임엔 틀림없다. 환하게 하늘을 밝혀주는 아름다운 꽃이기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잎은 차로 다려 먹기도 하고, 향 대용으로도 사용한다고 하니 요긴한 나무이기도 하다. 예사롭지 않은 자귀나무가 꽃을 가득 피우고 바람 그네를 타고 있는 것이다. 분홍빛 우산을 펼친 듯이 꽃을 피우고 있다. 자전거에 올라앉아 바라보는 대청호는 오늘도 아름답다. 멀리는 푸르름이 가득 잠겨있고, 곳곳엔 다양한 꽃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잔잔한 호수가엔 어미 오리가 새끼를 거느리고 첨벙거리고 있다. 꽃으로 가득한 시골집 정원이 생각났다. 뒤뜰에는 네 그루의 벚나무가 봄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난가을에 큰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봄이면 꽃을 피워 봄을 일깨워준 벚나무 한 그루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일찍 잎이 떨어져 웬일인가 걱정했었다. 봄이면 깨어나겠지 하던 나무가 끝내 잎을 내밀지 못하고 말았다. 안타까워 잎이 나오길 기대하며 아직도 그대로 두고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언젠가는 아쉬움을 덜어내고자 죽은 벚나무를 베어내려 마음을 잡았다. 오늘 아름다운 자귀나무를 보는 순간, 한 그루 마련하여 벚나무 자리에 심으면 어떨까 생각을 해본다. 봄내 벚나무가 계절을 노래하고, 많은 꽃들이 수다를 떠는 사이 여름이 오면 자귀나무가 한 자락 거들면 시골집은 어떻게 변할까 궁금해서이다. 고고한 자귀나무 꽃을 보면서 나의 정원 식구로 들여볼까 하는 또 한 가지 욕심을 가져보는 자전거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