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 손톱엔 빨간 봉숭아 물이 들었다.

(손녀의 손톱, 뜰에 자란 봉숭아)

by 바람마냥

이른 아침, 손녀가 이층 방으로 올라왔다. 불쑥 손을 내밀어 보인다. 손톱에 빨간 봉숭아 물이 든 것이다. 지난밤에 할머니, 엄마와 함께 봉숭아 꽃을 빻아 손톱에 묶고 잠을 잤었다. 깜빡 잊고 있었지만 손녀가 그 사실을 알려주러 온 것이다. 엊그제 시골집에 온 손녀, 봉숭아 꽃을 찾으러 다녔다. 그런데 어쩐지 시골집엔 봉숭아 꽃이 피지 않았다. 이웃집까지 봉숭아 꽃을 찾으러 다녔으나 마찬가지여서 실망하는 눈치였다. 할 수 없이 할아버지가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어제 아침, 자전거를 타고 시골 동네를 돌아다니며 구해 준 봉숭아 꽃이 손녀의 손톱을 빨갛게 물들여 준 것이다.


어제 아침, 새벽 아침 공기는 배신하지 않았다. 안개가 앞 산에 가득히 내려왔지만 공기만은 상쾌했다.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맑은 공기였다. 앞 도랑으로 내려섰다. 맑은 도랑물에 세수를 하기 위해서다. 찬 물이 흘러내리는 도랑 물,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다. 소곤대는 도랑물 하나만으로도 부러울 것이 없는 시골이다. 찬 물로 세수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야 했다. 시골 동네를 찾아가면 여기저기에 봉숭아가 지천으로 꽃을 피웠을 것이다. 봉숭아 꽃을 모아 와야 손녀가 손톱에 물을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햇살이 따갑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자전거에 올라 동네 순찰에 나서는 길이다.

IMG_8722[1].JPG 뜨락에서 자란 봉숭아

시골길을 타고 내려가 큰길에 나서자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차량들이 오고 간다. 삶은 넉넉한 새벽잠도 놔두질 않는가 보다. 간신히 차량을 피해 논길로 접어들었다. 검푸른 논엔 벼가 가득해졌다. 어느새 키를 부쩍 불려 놓았다. 무심히 논길을 지나가던 중, 깜짝 놀랐다. 말로만 듣던 뜸북새가 후다닥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잠을 깰까 봐 뒤꿈치를 들고 집을 나섰는데, 조용히 새벽잠을 자는 뜸북새 부부를 깨웠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흥얼거렸던 '오빠 생각'이 퍼뜩 떠오른다. 말 타고 서울 간 오빠가 비단구두 사 오길 기다린다는 동요였다. 갑자기 떠오른 오래 전의 동요가 힘든 근육을 위로해 준다. 다시 페달을 밟아 올라간다. 언덕을 올라 내려가는 기분이야 비교할 데가 없지 않은가? 작은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소를 키우던 커다란 축사가 보인다. 갖가지 풀이 우거진 폐교도 보인다. 시골의 변해가는 변해가는 모습이 씁쓸하기만 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한 무리의 봉숭아 꽃을 만났다. 다복하게 피어있는 봉숭아에 붉은 꽃이 가득 피어있다. 자전거에서 내려 꽃을 땄다. 하나, 두 개씩 꽃을 따서 배낭에 넣었다. 많이 따면 꽃에 지장이 있을까 봐 한 주먹만 따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멀리서 농부들의 발걸음이 잦아진다. 논두렁엔 삽자루를 든 농부가 보인다. 삽을 쥔 손으로 뒷짐을 쥐고 논두렁을 걸어간다. 아주 평화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오래전 아버지가 떠오른다.

IMG_9061[1].JPG 봉숭아가 빨갛게 피었다.

근근이 살아가는 시골 살림, 하늘만 바라보던 천수답엔 늘 눈물이 한가득이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샘을 파야했고, 졸졸거리며 흐르는 도랑물을 모아야 했다. 간신히 물을 모아 모를 심고, 아침저녁으로 찾아온 다락논은 실망을 시키지 않았다. 검푸른 벼가 넘실 대는 자갈논, 아버지는 삽자루를 든 손으로 뒷짐을 쥐고 논두렁을 오고 가셨다. 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릴 다락논에서 만난 처절하고도 평화를 보는 아버지의 그림자였다. 오랜만에 그 그림을 보면서 페달을 밟는다.


한적한 시골길에 밤나무가 그늘을 준다. 시원함에 방심하는 사이, 다시 만난 봉숭아가 길가에서 꽃을 가득 피웠다. 자전거를 세우고 드문드문 꽃을 따는 순간, 손가락이 따끔한다. 깜짝 놀라 새끼손가락을 보니 작은 독침이 박혀 있다. 봉숭아 꽃에서 꿀을 따고 있던 벌이었나 보다. 얼른 독침을 뽑아내고 손가락을 보니 빨갛게 부어오른다. 뻐근한 손가락을 어찌할 수 없이 흔들어댔다. 점점 부어오르는 손가락을 잡고 자전거에 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욕심을 부리지 말걸, 조금만 있어도 손녀의 손톱에 물들이기에는 충분했다. 그만해도 되었는데 작은 욕심을 부리다 그만 화를 불러오고 말았다.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젖어든다. 잠을 깨운 뜸북새가 있었고, 봉숭아꽃에 있던 꿀벌도 있었다. 모두가 나름대로의 삶을 꾸려가는 중이었다. 뜬금없는 찾아온 방해꾼은 나였다. 나름대로의 삶을 그대로 두지 않고, 불쑥 건드린 것이다. 그 대가로 퉁퉁 부어 오른새끼 손가락을 잡고 오는 중이다. 널따란 들판을 지났다. 아직도 가야 할 곳이 많다. 봄철, 화려한 벚꽃을 피웠고 여름 들어 푸르른 녹음을 자랑하던 길이 그리워졌다. 가끔 성찬을 즐기던 들녘에 자리한 정자도 생각났다. 다시 근육의 힘을 빌려 본다.


한참을 지나 도착한 개울가, 키다리 두루미가 외다리로 서서 주위를 살핀다. 왜 저렇게 서 있을까? 다리가 아프지 않을까? 다슬기를 잡는 사람이 부지런이 물가를 오고 간다. 옆을 거니는 두루미는 상관없다는 듯이 물속으로 고개를 연신 밀어 넣는다. 부지런히 먹거리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긴 벚나무 터널에 도착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나무터널엔 사람 그림자도 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푸름은 역시 평화를 주는가 보다. 서서히 페달을 밟으며 가능하면 오래 있고 싶은 푸르름 속이다.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 찾아간 곳은 커다란 벌판이 보이는 어르신들의 쉼터이다.


몇 분의 할머니들이 앉아 계신다. 젊은이가 찾아왔다며 반겨준다. 괜히 기분이 상쾌해짐은 젊다는 말이었나 보다. 한 할머니, 지난해에 사과를 준 사람 아니냐 하시는 것이 아닌가? 지난가을에 들러 사과 반쪽을 드린 할머니였다. 깜짝 놀랐다. 나도 할머니 정도의 세월이 지나도 저런 기억력을 갖고 있을까? 올해가 아흔다섯인데, 아픈 데가 없다며 자랑을 하신다. 할머니들이 찾아온 젊은이(?)에게 이런저런 말을 거신다. 공장에서 일하는 아들 이야기, 뒷 집의 나이 먹은 총각 이야기이다. 모두 어려운 삶을 이야기하는 생생한 이야기로 쉼을 하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모두 이야기가 그리웠던 할머니들이었나 보다.

IMG_8831[1].JPG 푸짐한 해바라기를 만났다.

지나친 욕심으로 아픈 손가락을 숨기고 페달을 밞는다. 넓은 들판을 지나 평화스러운 냇가를 지났다. 몇 마리 오리가 평화스럽다. 아무 걱정도 없을 것 같은데, 오리도 걱정이 있을까? 한없이 평화스러워 보이지만 물갈퀴가 달린 발은 쉼이 없다. 그렇다. 물 위에 떠 있기만 할 수 있다던가? 삶이 그런 것이겠지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긴 언덕을 힘겹게 올라가는 중, 느닷없이 이름 모를 벌레가 얼굴로 날아들었다. 깜짝 놀랐다. 순간적으로 따끔하더니 날아가 버렸다. 오른쪽 볼을 순간적으로 물고 날아간 것이다. 엄청 따가우면서 순간적으로 부어오른다. 갑자기 화끈 거리는 볼이다. 손가락은 욱신거리고 오른쪽 볼은 뻘겋게 부어올랐다. 벌레들도 나름대로의 방어 수단을 갖고 살아감을 알게 한다. 참, 신기한 자연의 어울림이고 조화이다.


여러 사연을 안고 도착한 집, 봉숭아 꽃을 본 손녀는 신이 났나 보다. 한 줌의 봉숭아 꽃을 얻으며 갖가지 이야기를 만들었다. 손녀는 손톱을 빨갛게 물들일 생각인가 보다. 할아버지 새끼손가락은 뻣뻣해졌고, 오른쪽 볼은 빨갛게 부어올랐다. 손녀에게 부어오른 볼과 손가락 사연을 말할 수는 없다. 딸이 곤충 물린데 바르는 연고를 발라 주었지만 통증은 여전하다. 손가락은 통증이 있고, 오른쪽 볼은 보톡스를 맞은 것처럼 팽팽하게 부어올랐다. 아무렇지도 안은 듯 태연해했지만 통증은 여전하다. 어제저녁, 아내는 걱정을 하면서도 손녀 손톱에 빨간 봉숭아 물을 들여 주었다. 아침부터 손녀가 이층 서재로 올라와 손톱 자랑을 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부어오른 볼과 통증이 있는 손가락 그리고 빨갛게 물이 든 손녀의 손톱과 맞바꾸어야 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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