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을 기억하는 기쁨, 까치밥이 된 외로웠던 감)
시골에 둥지를 튼지도 몇 년이 되어간다. 꿈에 부풀어 찾아들었던 시골집, 그곳에 아름다운 자연이 숨어 있었다. 아침이면 안개가 찾아오고, 심심치 않게 산바람이 찾아온다. 저녁때는 어김없이 긴 그림자도 찾아온다. 수많은 산새들이 찾아와 집을 지으려 수작을 한다. 심심하면 하늘을 휘저으며 정신을 빼놓는다. 봄부터 집을 짓기 시작하면 새집인지 내 집인지 알 수가 없다. 곳곳엔 초록이 지천이다. 평화를 주는 색은 역시 초록이다. 녹음이 가득해지면 눈을 뜨고 있을 수 없는 편안함이 찾아온다. 커피 향이 가득한 거실에 앉아 떨어진 햇살을 바라보는 느긋함은 잊지 못할 삶의 기쁨이다. 하지만 기쁨을 위해선 갖추어야 할 것도 많다. 잔디가 있어야 하고, 나무가 있어야 하며 푸릇한 채소가 있어야 한다. 전원주택에 어울리는 텃밭이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전원엔 텃밭이 있어야 어울림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텃밭은 만만치 않은 놀잇감이자 골칫(?) 거리다. 푸르름을 주고, 생명의 대단함과 대지의 위대함을 알려 주는 텃밭이다. 상추를 길러야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고, 고추를 길러 된장과 곁들여야 맛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토마토가 있어야 하고, 보랏빛 가지도 있어야 한다. 가을이면 건새우가 들어 간 아욱국이 최고이고, 시금치와 부추 그리고 파릇한 열무에 고추장이 어울린 비빔밥 있어야 제격이다. 껑충한 옥수수도 심어야 여름 맛을 볼 수 있으니 텃밭은 제법 커야 하지 않을까? 이 많은 것을 심으려면 얼마만 한 크기가 적당할까? 30평 정도? 아니면 50평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교실 한 칸 크기가 67.5㎡이니 대략 20평 정도가 된다. 전원주택에서 적당한 텃밭의 크기는 얼마가 적당할까? 물론 취향과 능력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의 시골 주택에도 작은 텃밭이 있다. 몇 년간 가꾸어 삶의 재미를 주는 텃밭의 크기는 열 평이 되지 않는다. 예닐곱 평으로 충분한 재미를 보고 있다. 작은 것으로 세 개로 나뉘어 있는데, 친구들이 찾아오면 이것이 밭이냐며 작다고 타박을 한다. 요만한 텃밭에 무엇을 심을 수 있느냐며 잔디밭을 줄이라 한다. 하지만, 예닐곱 평으로도 각종 채소를 가꾸어 충분히 즐기고 있다. 남는 푸성귀는 친지들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다. 텃밭이 크면 능력을 벗어난 고단한 노동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잔디밭의 크기가 대략 50평으로 잔디를 가꾸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수없이 풀을 뽑아야 하고, 물을 주어야 하며 일 년에 서너 번은 깎아 주어야 한다. 하루 이틀만 돌보지 않으면 풀이 수북하게 올라온다. 장마철이 계속되면 푸른 이끼가 자라 있다. 숨을 돌릴 틈이 없다. 고단함을 무릅쓰고 잔디를 고집하는 이유는 푸르름과 평안함을 주는 초록을 위해서다. 푸름을 주어 편안하고 아침마다 찾아오는 이슬이 있다. 뒤따라 내려오는 맑은 햇살이 있다. 안개가 자주 찾아오는 잔디밭이다. 맑은 이슬과 햇살이 찾아온 잔디밭을 포기할 수가 없다. 푸른 잔디밭을 고집하면서 넓은 텃밭은 감당할 수가 없다. 예닐곱 평의 텃밭에 무엇을 심을 수 있을까?
큰 텃밭은 세평 남짓하고, 두 평 남짓한 작은 텃밭이 두 개 더 있다. 큰 텃밭에는 단골손님인 쌈채소가 주를 이룬다. 상추를 종류별로 골고루 20여 포기를 심는다. 거기에 쌉쌀한 쑥갓 십여 포기가 빠질 수 없고, 건강에 좋다는 케일 십여 포기도 단골손님이다. 이만하면 쌈채소는 충분하고, 남는 것은 친지들에게도 넉넉히 줄 수 있다. 여기에 음식에 반드시 필요한 파가 심어져 있고, 아욱과 시금치도 빠질 수 없는 밭이니 마치 꽃을 기르듯이 잔잔하게 심어 놓는다. 푸릇한 상추가 키를 불리면 쑥갓이 따라서 크고, 여기에 질 수 없다는 듯이 케일이 키를 불린다. 파는 언제나 넉넉하게 자라며, 아욱과 시금치도 잘 자라서 자기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략 2평 남짓한 작은 밭 두 개도 넉넉하게 자기 몫을 하고 있다.
두 평 남짓한 텃밭 한 곳에는 방울토마토를 십여 포기 정도 심는다. 보랏빛 가지가 그리워 대여섯 포기를 심어 놓는다. 꾸역꾸역 자란 열 포기의 방울토마토, 여름내 효자 노릇을 한다. 푸름과 붉음이 적당이 섞인 방울토마토, 아침마다 주는 맛은 포기할 수 없다. 이슬에 젖은 방울토마토를 따서 먹는 기분, 싱싱함과 달큼함이 입안에 퍼지는 맛을 포기할 수 없어서다. 언제나 싱그러움을 주기도 하지만, 멀리서 손녀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방울토마토이다. 방울토마토 옆에 자리한 가지, 수없이 많은 꽃을 피우는 모습이 너무나 대견하다. 길쭉한 모습으로 키를 불리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자란다. 보랏빛 가지에 이슬이 내리고, 햇살이 찾아와 은은히 풍기는 색의 조화는 진풍경이다. 햇살에 빛나는 보랏빛의 아름다움은 형언할 수 없는 그림이다.
남은 한 밭에는 고추를 심는다. 청양고추, 아삭이 고추를 섞어서 20여 포기 심는다. 언제나 시골집에 빠질 수 없는 식품이다. 매콤한 풋고추가 얼얼함을 안겨 주고, 붉은 고추의 향긋함은 포기할 수 없다. 매운 청양고추는 매운대로 제 몫을 하고, 아삭아삭한 고추는 싱그러움에 달큼함을 여름내 건네주고 있다. 고추밭 옆으로는 부츠와 도라지를 심어 놓는다. 부츠는 어느새 올라와 크는 대로 잘라먹는 기분을 떨칠 수 없고, 도라지는 3~4년은 묵힐 요량으로 무던히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 충분한 시골집의 즐거움과 행복을 줄 수 있는 훌륭한 텃밭이다. 작은 예닐곱 평의 작은 밭이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서서히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빛이 찾아왔다. 토마토가 잦아들고 가지도 몫을 다했다. 감사하다는 생각과 함께 정리한 작은 텃밭, 할 일이 또 남아 있다. 가을 고랭지 배추를 심는 일이다.
사는 곳이 조금은 높은 300 고지 정도이다. 조금은 썰렁하지만 지대가 높아 고랭지 배추로 유명한 곳이다. 토마토와 가지를 정리하고 배추를 20여 포기 심었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며 심어 놓은 배추, 싱싱함에 푸르름을 가득히 준다. 언제 자랐는지 커다란 잎이 작은 바람에도 나풀거린다. 이런 재미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을 몸소 느끼는 배추밭이다. 가끔 찾아오는 불청객, 메뚜기가 있다. 잔디밭에서 놀던 메뚜기가 찾아와 잎을 갉아먹는다. 곳곳에 구멍이 나있어 고민이 되지만, 같이 나누며 먹자는 생각이다. 격한 메뚜기는 먼 곳으로 격리시키며 오는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잔디밭 가에는 가을이 가득히 와 있다. 갖가지 나무가 붉은빛의 잎을 떨구어 낸다.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의 지혜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쓸어 모으며, 예닐곱 평으로도 충분한 몫을 한 텃밭에 감사해한다. 잔디밭을 돌보는 것도 힘들지만, 텃밭을 관리하는 것도 고단하다. 봄이면 퇴비를 주어야 하고, 밭을 갈아야 한다. 작은 밭이니
삽과 괭이를 이용해야 하는데, 퇴비를 주고 밭을 정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푸름을 위해 잔디밭을 포기할 수 없고, 푸릇한 채소와 자연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텃밭도 있어야 한다. 다만, 나의 능력에 적당한 잔디밭과 텃밭이 있어야 한다. 적당한 크기가 얼마일까? 나에게는 예닐곱 평으로도 충분한 자연의 위대함을 일깨워주는 밭이다. 푸름의 평안함을 주는 50여 평의 잔디밭이 든든함을 주는 전원주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