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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ul 08. 2022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이 돌아왔다.

(토마토 향기를 맡으며)

붉게 익어가는 토마토의 계절이 돌아왔다. 텃밭엔 방울토마토가 옹기종기 달려 있다. 곳곳에 붉음과 연초록이 적당히 섞여 맑은 이슬을 달고 있다. 여기에 밝은 햇살이 찾아와 비춰준다. 얼른 붉은 방울토마토 하나를 땄다. 이슬이 송골송골 맺힌 방울토마토, 가지에서 떨구기가 미안했다. 한참을 망설이다 얼른 입에 넣는다. 신선함이 묻은 방울토마토는 씻을 것도 없는 그냥 맑음이다. 입안에서 확 터지는 토마토의 맛에 온몸이 몸서리친다. 야, 이 맛이야!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상큼함을 주는 골짜기의 아침이다. 향긋한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엉성한 나무 지지대가 서 있는 작은 토마토 밭이었다. 소독을 하지 않아 곳곳엔 벌레가 왔다 갔다. 물도 제대로 주지 않아 엉성하게 생긴 토마토 줄기다. 하지만 붉게 익은 커다란 토마토도 있고, 작은 방울토마토도 옹기종기 달렸다. 오래전,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다. 동네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우물가에 있는 작은 밭에 토마토가 달린 모습이다. 붉게 익은 것이 무엇이지? 먹고 살기 급급하던 시절에 친구 집에는 토마토 밭이 있었다. 붉게 달린 토마토가 따가운 햇살 아래 익어간다. 친구 따라 한 개를 따서 입에 넣었다. 달지도 않고 무슨 맛인지 모를 맛이 입안에 퍼진다. 입맛에 당기는 맛도 아닌, 맞지 않는 맛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갔다.

고등학교 영어시간이다. 무서운 영어 선생님이 영문으로 된 참고서를 해석하신다.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 갈수록 의사들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간다는 내용이었다. 오래전에 친구네 밭에서 만났던 토마토가 다시 소환되었다. 토마토는 맛과 영양이 뛰어나고 서양에서는 천국의 과일로 불린다는 설명이었다.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고 항산화물질을 듬뿍 함유하고 있는 토마토, 살아가기 바쁜 시절엔 잊고 살았던 토마토다. 어쩌다 만나면 먹게 되면서 몸에 좋다고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내가 챙겨주는 토마토, 가끔은 주스로 호강을 하게 되고 주전부리 감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방울토마토였다. 세월이 흘러 작은 골짜기에 자리를 잡았다.


푸르른 잔디밭이 주를 이루는 주택이다. 잔디밭 근처에 작은 밭을 만들어 상추 등 야채와 토마토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작물이다. 방울토마토를 대여섯 그루, 일반 토마토를 대여섯 그루 심었다. 토마토를 먹는 것도 좋지만 언제나 붉음과 초록으로 어울림이 좋아서다. 연초록이 서서히 익어가면서 검은 초록으로 변한다. 어느 순간에 붉음으로 변하는 방울토마토의 모습이 너무 신비스럽다. 붉음과 초록이 어우러진 모습은 자연 속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어느 화가가 저런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여기에 이슬까지 내리고 햇살이 찾아오면 눈을 뗄 수 없는 신비함이 찾아온다. 

뜰엔 나리도 피었다.

후덥지근한 여름날, 일찍 잠이 깨어 앞뜰로 나선다. 잔디밭을 서성이다 작은 밭으로 눈이 간다. 토마토의 색의 조화가 발길을 잡고 말았다. 서서히 익어가는 방울토마토, 눈을 뗄 수가 없는 아름다움이다.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이 신기해 한참을 바라본다. 금방 붉은 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이 맑은 붉음이다. 딸까 말까를 한참 망설이다 한 알을 따서 입에 넣는다. 입에 넣고 금방 터트리는 것이 아닌, 잠시 입안에서 음미한다. 어릴 적에 느끼지 못했던 상큼함과 달큼함이 입안으로 퍼진다. 향긋함에 못 이겨 한입 베어 물면 이내 눈을 감고 만다. 상큼함과 신선함이 입안에서 터지는 그 맛을 표한 할 수 없어서다.


어느 한 구석 닦아 낼 것도 없는 맑음에 신선함이 가득하다. 얼른 앞산을 바라보는 얼굴엔 나도 모르는 미소가 가득해진다. 하나를 따서 아내 입에 넣어 준다. 사람의 마음과 맛은 똑같은가 보다. 방울토마토가 안겨주는 맛에 정신줄을 놓고 만다. 얼른 바지를 걷고 앞 도랑으로 들어간다. 입안에서 퍼지는 달큼함에 도랑물이 주는 시원함이 전신을 타고 올라온다. 짜릿한 전율이 온몸을 감싸 온다. 입안에 남아 있는 토마토의 향긋함에 도랑물이 주는 짜릿함이 만난 아침이다. 얼른 팔을 걷고 도랑물에 세수를 한다. 어느 향수보다도 향긋한 도랑물이다. 토마토가 주는 향긋함은 온몸을 도랑으로 안내했다. 

붉은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렸다. 첫해엔 토마토를 따서 도랑물에 닦아 먹었다. 토마토와 도랑물을 함께 하게 된 연유다. 점차 골짜기의 아침에 익숙해지면서 도랑물의 신세를 지지 않는다. 토마토에 닦을 것도 없을뿐더러 맑은 이슬을 닦아 내기가 아까워서다. 산을 넘은 햇살까지도 입에 넣고 싶은 아침이다. 의사가 전전긍긍하는 계절이 아닌, 붉음과 초록이 어울리는 계절이 왔다. 작은 텃밭에 서서히 붉음이 찾아오는 계절이다. 수돗가 뜰 보리수의 붉음이 자취를 감추고 노루오줌이라 불리는 아스틸베가 붉음을 드러낸 아침이다. 여기에 토마토가 붉음으로 몸을 감싸고 있다. 문득 시골집을 찾아오는 손녀가 떠 오른다.


가끔 찾아오는 손녀가 좋아하는 방울토마토다.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는 방울토마토다. 맛이 다르고 생김이 다르다. 여기에 담긴 정성까지 다르니 맛이 좋지 않을 수 없는 토마토다. 아직도 꽃을 피우고 서서히 달려가는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렸다. 서서히 토마토가 익어가고 여름이 깊어지면 먼 곳에 사는 손녀가 찾아올 것이다. 아내는 붉게 익은 토마토가 버텨주기를 또 기다릴 것이다. 어린 손녀가 찾아와 따 먹기를 고대해서다. 서서히 몸집을 불리는 토마토가 가득한 작은 밭이 붉어진다. 푸름과 붉음이 신기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토마토 밭이다. 여름이 익어가는 날에 붉음이 가득해지고 손녀가 찾아와 떠들썩한 골짜기를 고대해 본다. 서서히 여름이 깊어가는 골짜기의 작은 밭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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