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잔치 속에 상추의 계절이 돌아왔다.

(골짜기 풍경, 뜰앞의 정원)

by 바람마냥


골짜기에 봄은 다시 돌아왔다. 다시는 올 것 같지 않았던 봄이 깊숙이 찾아온 것이다. 언제나 산골 바람에 웅크리고 있던 골짜기, 산을 넘은 바람 따라 상큼한 봄날이다. 골짜기의 예닐곱 평 텃밭에 일 년 농사를 시작해야 하는 계절이다. 작은듯하지만 나에게는 적당한 크기에 많은 선물을 주는 소중한 텃밭이다. 서서히 퇴비를 내야 하고 밭을 갈아야 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밥상을 책임질 텃밭이기 때문이다. 남에게는 작은 밭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에겐 더없이 소중하고도 거대한 텃밭이다. 우선 퇴비를 펴고 밭을 갈아야 한다.


얼른 텃밭에 퇴비를 펴고 밭을 갈아엎었다. 힘에 겹지만 봄바람이 좋고, 햇살이 반가운 봄날이다. 골짜기의 바람은 아직 서늘해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어설프게 상추를 심었다가는 실패할 수가 있다. 4월 중순, 힘겹게 밭을 정리하고 이웃에게 상추 심는 시기를 물었다. 아직은 바람이 서늘하니 며칠 더 기다리란다. 상상만 해도 싱그러운 상추다. 작은 채소라도 심어 놓으면 남아나지 않는다. 어떻게 알았는지 벌레가 생겨 잎을 놔두지 않는다. 하지만 상추나 쑥갓을 언제나 싱싱함을 유지한다. 심어 놓기만 하면 저절로 자라는 상추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맑은 이슬이 떨어진 잎에서 삶의 생기가 돋아난다.

IMG_E1548[1].JPG 봄을 자축하는 푸성귀의 잔치 뜰

가끔 친구들, 친지들이 찾아온다. 골짜기의 성찬인 삼겹살을 준비하고 야채를 준비한다. 텃밭에서 상추를 뜯어 오라 한다.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싱싱한 청양고추를 따다 된장을 찍는다. 삼겹살 한 쌈에 청양 고추 한입 베어 물으며 골짜기가 입으로 확 들어온다. 이맛을 어디서 맛볼 수 있을까? 쌉쌀한 쑥갓이 숨을 헐떡이고 있다. 상추 한 장에, 쑥갓 몇 잎이 곁들여졌다. 쑥갓 위에 노릇노릇한 삼겹살이 올라앉았다. 마늘과 청양고추 한 조각이 어우러지는 맛, 생각만 해도 어질어질해지는 골짜기의 맛이다. 소주 한잔이 곁들여진 저녁나절, 지나는 이웃이 동참했다. 앞산이 검게 물들었다. 골짜기의 미친 맛을 방해함이 아무것도 없다. 고요함 속에 앉아 포근한 밤을 맞이하고 있는 골짜기다. 가끔 비가 내려온다.


골짜기에 사선으로 내려오는 빗줄기가 너울너울 춤을 춘다. 앞 산이 보이다가 숨기도 한다. 뿌연 안개가 덮여 여기가 산인지 구름인지 알 수가 없다. 지나는 안개가 걸터앉은 살 골짜기, 작은 빗방울이 후드득거린다. 처마 밑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정스럽다. 골짜기엔 아무 소리도 없고, 필요도 없는 밤이다. 오로지 작은 도랑물만이 옹알거린다. 여기가 골짜기임을 알려주는 소리다. 골짜기 자연 속엔 항상 푸르른 채소가 있어야 한다. 상추가 있고 쑥갓이 있으며, 청양 고추가 있어야 한다. 가지런히 자리 잡은 텃밭에 자리 잡은 취나물도 등장해야 한다. 텃밭엔 지난가을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IMG_1540[1].JPG 공작단풍의 위용이 대단하다.

지난해 심어 놓은 산마늘이 푸름으로 자리했다. 대파는 굵게 살을 찌웠고 골파도 싱그럽게 살아있다. 고난의 겨울을 이겨낸 시금치도 살아 있음을 과시한다. 뒤뜰 언덕 밑엔 돌나물이 푸짐하게 자리를 잡았다. 시골집 둘레에 푸름이 가득한 봄날이다. 곳곳에서 봄을 준비하고 있는 사이, 이웃집엔 벌써 상추를 심었다. 이젠 상추를 심어도 된다는 이웃의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서둘러 찾아간 5일장, 곳곳에 각종 상추 등 모종들이 가득하다. 엄청난 농사꾼처럼 흥정을 한다. 갖가지 상추를 종류별로 구입했다. 여기에 쌈추와 쑥갓 그리고 겨자채도 빠질 수 없고, 청양고추와 케일을 추가했다. 손녀가 좋아하는 방울토마토를 색깔별로 준비했으니 작은 밭에 가득해질 것이다. 작은 밭이지만 갖가지 종류와 색깔로 멋진 여름을 준비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돌봐준 덕에 채소는 무럭무럭 자랐다. 하루 밤이 다르게 채소는 자랐다. 산마늘이 넉넉하게 잎을 늘렸고, 쌈추는 배추처럼 자라고 있다. 여기에 갖가지 상추와 겨자채는 널따란 잎을 불려 밭고랑을 가득히 덮었으니 보기만 해도 넉넉한 텃밭이다. 심어 놓고 얼마 지나 자리를 잡은 방울토마토, 벌써 꽃을 피우고 넉넉한 여름을 기약한다. 대여섯 포기의 가지가 자리를 잡아가고, 넉넉한 고추밭이 풍성해졌다. 아침, 저녁으로 달라지는 텃밭을 보며 넉넉한 시골살이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자리 잡은 푸름에 붉음과 푸름을 더해 줄 텃밭의 식구들이 풍성해지는 봄이다. 아내는 벌써 손녀의 화단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IMG_1545[1].JPG 금낭화가 한창인 손녀의 화단

푸르른 채소밭에 화려한 어울림을 주는 손녀의 화단이다. 튤립과 노란 수선화는 서둘러 꽃을 지웠다. 지난해에 심은 앵초와 금낭화는 아직도 화려하다. 며칠 후에 올 손녀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정성이다. 넉넉하게 자리 잡은 손녀의 화단이 가득 채워졌다. 이젠, 서서히 보리수 꽃이 가득하고, 얼마 전에 심어 놓은 앵두나무도 꽃이 피었다. 개키버들도 질세라 긴치마를 치렁거리고, 공작단풍도 서서히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꽃잔디 위로 붉은 영산홍이 피어났고 하얀 철쭉이 꽃을 피워 자리를 잡았다. 봄이 더 익어 꽃이 정원을 가득 메우고 나면, 작은 텃밭은 푸름으로 풍성해지리라. 푸성귀들이 자리다툼을 하면서 동네 벌들이 모여들 때쯤, 반가운 친구가 찾아오고 이웃들이 북적일 것이다. 풍성한 골짜기의 잔치를 위해 작은 텃밭은 풍성하게 살을 찌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