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Oct 18. 2021

가을 아침, 나의 뜨락에도 가을은 가득히 왔다.

(시골집 아침 풍경, 정원 풍경)

현관문을 열고 내려선 나의 뜰, 수만 평의 정원이 울렁거린다. 거대한 앞산이 집 앞에 있기 때문이다. 싱싱한 푸름이 서서히 가을에 물들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안개는 대관령이 부럽지 않다. 서서히 물러가는 안개를 보며 내려선 잔디밭엔 하얗게 이슬이 내려왔다. 벌써 가을임을 실감하는 자연이 수두룩하다.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뜰 앞에 국화다. 작은 꽃망울로 꿈틀거림이 보인다. 보일락 말락 한 붉은색이 앙증맞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다. 아침 이슬에 젖어 깊은 가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꽃을 보려 마련한 국화, 가을을 즐기고 화단에 심어 놓은 것이다. 자연에 순응하면 꽃을 피워주려 애쓰는 국화가 고맙기만 하다. 


여름내 아름다운 꽃을 보여 주었던 나무수국도 가을을 맞았다. 세월에 젖어 희끗희끗한 머릿결처럼 어느새 붉은색으로 갈아입었다. 붉은빛으로 치장한 곳에 촉촉한 이슬이 내려앉았다. 몇 개의 잎은 벌써 떨어져 가을을 알려주고 있다. 겨울을 대비해 떨구어낸 나무의 지혜임을 알게 한다. 봄부터 여름까지 싱싱한 녹음을 선사했고, 하얀 꽃으로 치장했던 나무수국이 붉은빛으로 다가옴이 가을을 실감케 하는 아침이다. 서둘러 꽃을 피운 구절초가 있다. 아직도 남은 구절초에 비해 밝은 흰빛으로 정원을 빛내주고 있다. 

뜰앞의 공작단풍

가을을 기다려 온 감나무가 외롭게 서 있다. 초봄에 제법 많은 감이 달려 있었다. 신이 나서 아침저녁으로 돌보았지만 열매를 지켜주지 못했다. 어느새 한 두 개 떨어지더니 그예 한 개만 남고 모두 떨어진 것이다. 그리움을 주고 추억을 주던 감이다. 어떻게든지 감이 달려 가을까지 버티어 주길 바랬지만 지켜주지 못해 늘 미안한 생각이다. 몇 개의 감이 열려 붉은 열매를 기대했었다. 추운 지방이라 살아남기 어렵다는 이웃들의 말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심어 놓은 감나무다. 겨울이면 푹신한 옷을 입히고 봄이면 퇴비를 주며 돌봐온 감나무에 홀로 달린 감이 쓸쓸함을 얹고 가을날을 지키고 있다. 서둘러 도랑물은 살이 빠졌다.


사계절을 갈갈대는 시골집 앞 도랑물 소리가 작아졌다. 봄이 왔음을 알려주려 무던히도 애쓰던 도랑물이었다. 살얼음 밑으로 옹알거리며 봄이 왔음을 알려주었던 작은 도랑은 여름이 되면서 부쩍 살이 올랐었다. 주변엔 갖가지 푸름이 내려왔고, 가끔 찾아주는 햇살에 눈이 부셔 부끄러워했던 도랑물이다. 찾아온 여름날에 감당할 수 없는 덧살에 힘겨워했지만 적당히 계절이 바뀌면서 보기 좋은 몸매가 되었었다. 적당한 몸집의 살이 되어 낭랑한 목소리로 소곤대던 도랑물이 가을이 되면서 점점 날씬해졌다. 오늘따라 들려오는 도랑물 소리가 가을이 벌써 왔음을 실감하게 하는 아침이다. 촉촉한 잔디도 가을을 타나보다.

한 개의 감, 외롭지만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싱싱한 푸름을 자랑하던 잔디, 아침이면 찾아오는 햇살에 눈을 부셨던 잔디밭이다. 간간이 풀을 뽑아주기만 하면 되는 잔디밭에도 가을빛이 역력하다. 조금은 누런빛이 찾아왔고 서둘러 몸을 움츠린다. 언제나 키를 불리려 애쓰던 잔디가 점점 속도가 느려진다. 벌써 키를 불렸어야 하는 잔디가 느릿한 몸짓으로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이슬에 촉촉이 젖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잔디밭에 다시 이슬비가 내린다. 가느다란 빗방울에도 흔들리는 잔디 잎이 애처롭게도 하다. 일 년 내 푸르름을 주려 무던히도 애쓰던 모습이 생각나서이다. 여름을 빛내 주던 공작 단풍도 언제 옷을 갈아입었다.


껑충한 키에 푸르른 잎을 늘어뜨리고 위엄을 보였던 공작단풍이다. 봄부터 작은 싹을 내밀어 푸름을 준비하더니 여름에 절정에 달했었다. 하늘거리는 잎으로 일 년 내 품위를 지키며 뜰을 호령하던 공작단풍이다. 거친 바람에도 끄떡없이 위엄을 보이던 공작단풍이 아름다움으로 장식했다. 붉음으로 칠을 하더니 찾아온 가을바람에 몸을 흔든다. 변하는 계절 속에 작은 뜰을 지켜주던 공작단풍이다. 서서히 찾아오는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나 보다. 몇 개의 잎이 떨어진 잔디밭에도 가을의 흔적들이 넉넉히 자리를 잡았다.

국화가 꽃을 피우려 머뭇거린다.

도랑가에서 자리를 지켜주던 메리골드, 서리가 올 때까지 긴 세월 핀다고 하는 만수국이다. 봄에 심어 놓은 것이 험한 여름 비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주었다. 긴긴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주황색으로 동네를 지켜주어 오가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메리골드다. 이웃들이 합심하여 동네길을 따라 심어 놓은 것이다. 찾아온 햇살에 반짝이며 굳건했던 메리골드, 찾아온 가을을 타나보다. 어느새 푸르던 잎도 조금은 힘이 잃었고, 꽃잎마저 기력을 잃은 듯하다. 군데군데 허물어 저 가는 꽃잎에 가슴이 아프다. 변하는 계절을 감당할 수 없었는가 보다. 서서히 계절을 준비하는 모습에 숙연해짐은 계절 탓인가 보다.


서서히 가을이 저물어가고 찬바람이 찾아 올 시골이다. 가을이 더 깊어지면 녹음을 주었던 푸름이 붉음을 지나 하양으로 변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무들도 서서히 잎을 떨구고 겨울을 참아낼 준비를 하리라. 여름을 빛내주던 녹음은 다시 대지를 살찌게 하고, 긴긴 겨울을 버티는 힘이 될 것이다. 그래야 찾아오는 봄을 준비하리니, 붉음에 취해 가을을 즐기는 사이 겨울은 내 옆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오늘도 찾아온 가을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참을 뜰 앞에 서 있다. 나의 계절을 생각하며 내 곁의 가을을 마음껏 즐기며 축복하리라. 성스런 가을 아침에 보이는 뜰 앞의 모습들이다.  

이전 18화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이 돌아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