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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Nov 28. 2021

전원주택의 김장, 가을잔치가 벌어졌다.

(김장하는 날)

자그마한 텃밭엔 늘 어머님이 계셨다. 희끗한 머릿결에 흰 수건 질끈 맨 어머니, 다양한 채소를 기르며 반찬거리를 장만해야 했기 때문이다. 봄이면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대로 계절에 따른 채소를 돌 보셨다. 초봄에 이르러 겨울을 이겨낸 마늘을 돌봐야 했고, 시금치를 돌봐야 했다. 가을이 오면 아욱이 우뚝 자라나지만, 겨울을 책임지는 무와 배추가 대세였다. 허연 지푸라기로 질끈 묶어 놓은 배추, 살이 오를 대로 올라 텃밭을 가득 덮었다. 푸른 머리로 두툼한 무는 살이 터져 나올 듯이 살을 찌우기도 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텃밭은 언제나 어머니의 놀이터였고 삶의 터전이었다. 한 식구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어머니의 숭고한 업이기도 했다.


5일 장날 구입한 배추씨를 뿌려 작은 싹을 만났다. 따스한 날을 잡아 텃밭에 옮겨 심었다. 잦은 비에 온전할까 전전긍긍하며 기른 배추모가 작은 이슬에 바르르 떤다. 가느다란 이슬에도 힘겨워하던 잎은 가끔 찾아오는 빗줄기를 견디며 몸집을 불렸다. 이슬이 내리고 찾아온 햇살에 윤기가 흐른다. 연약하던 연초록이 검푸름으로 변하고, 푸르름을 가득 실은 배추는 밭고랑을 가득 덮었다. 텃밭을 바라봐도 언제나 흐뭇해지는 이유다. 여름 비를 견딘 배추는 노란 고갱이를 가득 안고 찾아온 햇살에 의기양양하다. 온갖 고난을 겪어 온 자부심이다.

배추가 넉넉해질 무렵, 무도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배추와 어우러져야 하고, 깍두기로 환생해 맛의 환희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줄 것을 다 준 무는 마지막 남은 잎까지도 줬다. 찾아온 가을 햇살에 몸을 말리고 겨울을 준비한다. 검푸름은 누런 빛을 발하고 구수함으로 세를 과시했다. 5일 장의 국밥집에서 한몫을 했고, 된장과 어우러진 구수함은 비교되지 않는 탁월함이었다. 초봄의 어린싹이 자라 여름을 이겨낸 텃밭, 갖가지 채소로 밥상을 책임지는 보물창고였다. 한 가족의 먹거리를 책임지며 삶을 영위케 하는 영원한 터전이었다.

  

겨울이 물러갈 즈음 만든 비닐하우스는 아버지의 몫이었다. 두텁게 언 땅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고추를 기르기 위해서다. 지난해 장만 해 둔 고추씨를 물에 불려 아랫목에서 싹을 틔웠다. 가까스로 촉을 내밀면 한기가 가신 비닐하우스에 싹이 튼 고추씨를 뿌렸다. 햇살 따스한 날, 가까스로 자란 고추모를 이식해 여름을 보냈다. 잔잔하던 잎이 검푸름으로 변할 무렵, 주렁주렁 달린 고추는 변색을 한다. 푸름을 빨갛게 색칠한 고추가 초록과 어우러진 모습은 자연의 선물이었다. 검푸른 장맛비를 거친 고추가 주인의 노력에 배반하지 않은 것이다. 붉게 물든 고추를 빻아 마련되면 어머니는 배추와의 만남을 서둘렀다. 성스런 김장하는 날이었다.

온 식구의 겨울 식량인 김치를 담그는 일은 단순한 김장이 아니었다. 배추를 뽑아 소금에 절여 고춧가루와 각종 야채를 버무리는 일은 어머니의 성스런 기도였다. 초겨울 날씨를 이겨내는 고단한 김장은 모든 식구들이 참여하는 위대한 대사였다. 모두가 어울리며 가족을 확인하는 일이었고, 성스런 가을을 마감하는 의식이었다. 김장은 가족단위의 의식이었고 제사였다. 땅속에 묻어 놓은 김치 단지는 한 가족의 보물이었고 일 년을 책임지는 파수꾼이었다. 언제나 든든함을 안겨주는 식량이었고 어머님을 지켜주는 위병이었다. 세월이 서서히 흘러갔고, 세태도 변하기 시작했다. 김장을 하는 풍속도 변하기 시작하여 오래 전의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햇살이 따가운 언덕 위 작은 집에 가족들이 모여 김장을 한다. 부모님이 주고 가신 따스한 언덕 위의 집이다. 오고 감이 불편해 가끔은 투덜대던 언덕이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누구도 쉽게 차지할 수 없는 집터가 된 것이다. 텃밭에 심어 놓은 배추를 손질하고 김장준비를 한다. 손위 언니의 지휘 하에 일사불란한 분업이 시작되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어른의 위엄이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의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의식, 부모님 안겨주신 성스런 의식이다. 기억을 더듬을 사이도 없이 세월이 훌쩍 흘렀지만 아득한 기억이 주는 추억이었다. 시골에서 아득히 남아 있는 추억의 행사는 오래가진 못했다.

양지바른 시골 언덕엔 또 다른 성대한 행사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음 소리다. 대량으로 배추를 씻고 소금물에 절이는 곳이다. 대량으로 절임배추와 김장을 하는 시설이다.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시설이 시골 곳곳에 들어서 있다. 거대한 차량이 오가고, 인적이 드문 곳에 찬바람만 불어온다. 긴 밭고랑엔 트랙터가 오가며 배추를 실어 나른다. 트럭이 오가는 밭고랑이 되었다. 편리함이 우리 곁에 깊숙이 찾아온 것이다. 간단히 전화 한 통화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절이다. 이웃이 누군지 알 필요도 없고, 힘든 배추밭을 오가는 노고도 쓸데없어졌다. 이젠, 정이 오가는 가을 잔치가 서서히 물러가는가 보다. 오래 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고 싶어졌다. 배추를 기르지는 못해도 김장 흉내라도 내고 싶어서다.


멀리 분당과 부산에 사는 아이들 왔다. 가을이 지기 전에 김장을 한 번 해보고 싶어서다. 배추를 기르지 않았으니 절임배추로 대신하기로 했다. 미리 준비한 수육용 돼지고기가 준비됐고, 과메기와 홍어가 곁들여졌다. 아내의 진두지휘 하에 일사불란하게 김장 의식이 거행되었다. 어린 손녀도 빠질 수 없는 일, 둥글게 둘러앉아  먹을 김치를 담는 행사다. 힘들지만 신나는 잔치, 가족의 굴레를 알게 하는 행사였다. 김장 의식을 마치고 이부 행사가 시작되었다. 적당히 삶아진 돼지 수육에 겉절이가 등장했고, 싱싱한 굴과 과메기 그리고 홍어가 출연했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빠질 수 없는 행사, 마침 떠오른 햇살이 골짜기를 넘어왔다. 맑게 개인 가을 하늘 아래 온 가족이 모여있다. 성스런 가을에 감사하는 의식이 마음까지 훈훈하게 해 준 하루였다. 내년의 가을 의식을 기약해 보지만, 언제까지 그 행사를 기대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가을날이기도 했다.  







이전 19화 가을 아침, 나의 뜨락에도 가을은 가득히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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