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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Mar 06. 2022

철부지 아비는 PCR 검사를 받아야 했다.

(아비의 긴 하루하루)

세월은 어느덧 흐르고 흘러, 일에서 손을 놓은 후엔 늘 한가한 삶을 살고 싶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허우적거리던 삶을 놓아주고 싶어서다. 새벽부터 다니던 피트니스 클럽도 7시나 8시가 되어야 간다. 몸도 마음도 많이 느슨해졌다. 늘 7시가 넘어야 눈을 뜨는 세월이다. 오늘은 아내가 일찍 일어난 모양이다. 새벽부터 아내의 인기척 소리다. 문을 열고 웬일이냐는 말에 부산에 사는 딸이 올라오고 있단다. 갑자기 몸에 열이 나서 사위, 손녀와 함께 올라오는 중이란다. 열이 난다고? 코로나?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진다. 코로나 검사는 받아 봤나? 신속항원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는 설명이다. 갑자기 생각이 복잡해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을 차리고 수습에 들어갔다. 만약에 코로나라면 어떻게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 잠깐의 기다림 속에 아이들이 도착했다. 얼른 딸아이를 싣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오래전 제자가 있는 병원, 여러 가지를 묻는 수밖에 없다. 열이 난다는 말에 코로나 검사를 먼저 해야 한단다. 코로나 검사를 하러 간 장소, 아침인데 벌써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열이 나니 많이 춥고, 밤새 고생한 아이가 어떻게 할 줄을 모른다. 제자의 도움으로 응급실로 가기로 했다. 응급실로 가자 먼저 격리부터 해야 한다며 작은 방으로 안내한다. 여기에서 코로나 검사가 나올 때까지 갇혀 있어야 한단다. 간단히 물과 먹을거리만 준비하고 있으란다. 다시 정신이 혼미해진다.

국민 97%가 '행복하다'는 나라, 부탄(2016년)

세월을 어떻게 할 수 없는 내 나이, 건강하다 생각하지만 늘 걱정이다. 70년을 거침없이 사용한 몸, 성할 리가 있을까? 원인도 모르는 통증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병원에서도 모른다 한다. 그냥 사는 수밖에 없다는 말도 의사가 한다. 인간의 신체가 오묘하다는 생각도 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늘 실감하는 소리다. 얼마나 세월을 더 버틸 수 있을까를 늘 실험하면서 살아온 삶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 체육관에 간다. 준비운동 그리고 체력 운동을 끝내면 늘 달리기를 한다. 잠깐의 걷기 후, 5km 달리기를 하면서 오늘도 잘 버텨냈구나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게라도 버틸 수 있음이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늙어가는 몸이니 늘 걱정이다. 


딸아이가 아파서 아비를 찾아온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아침이다. 순간, 너희는 찾아 올 아비라도 있어 다행이다. 내가 돌 봐줄 아이가 있으니 행복하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든 아침이었다. 언제까지 도와줄 수 있을까? 아이들을 가능할 때까지 도와주고, 나도 잘 살아야 할 텐데. 나도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면 어떻게 할까? 어떻게든 피해 보고 싶은 심정에 늘 운동을 하면서 살고 있다. 인간의 힘으로 가능할까? 의사도 제대로 모른다는 신체구조, 몇 번을 가봐도 모른단다. 무슨 의사가 그러냐는 말에 혼만 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나만 믿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가능하면 걷고 뛰면서 근육 단련을 위해 늘 노력한다. 아이들한테 신세를 지지 않으려 하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다.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며 바쁘게 사는 이유도 같은 이유이다. 어떻게 할까?

순수함을 가득 안고 있는 나라, 라오스(2012)

이젠, 할 수 없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한참을 기다리자 간호사가 해열제를 처방해주고, 신속항원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 전해준다. 채혈을 하고 각종 검사가 진행됐다. 신속항원 검사에서 음성이 나온 덕이다. 다행이다 싶기도 하면서 또 기다림의 시간이다. 딸아이의 열은 다소 내렸고, 채혈해간 결과도 나왔다. 코로나와는 상관이 없고 간에 이상 있다 한다. 다시 놀란 가슴, CT촬영 결과에는 큰 이상이 없단다. 다시, 멎을 듯한 긴 한 숨을 몰아 쉰다. 또,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도 도와줄 사람도 없고 걱정이다. 아비만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다. 힘을 내야 하는데 걱정이다. 이렇게 무력한 아비가 될 줄은 몰랐다. 너무 미약한 아비다.


아침부터 드는 아비의 생각, 왜 이렇게 되도록 돌봐주지 못했을까? 갑자기 아비의 마음이 찢어진다. 숨을 몰아 쉴 수 없는 한 나절이다. 어떻게 해야 아이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을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돈 몇 푼 건네주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한스러운 아비의 무능력에 가슴이 무너진다. 또,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의 진단이 나왔다. A형 간염이란다. 여러 가지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삶의 스트레스도 한몫을 한단다. 아비라는 사람이 그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게 무슨 아비란 말인가? 쉬이 올 수 있는 병이고, 당분간 안정을 요하며 입원 치료가 돼야 한단다. 갑자기 한 가정의 축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사위는 일이 바빠 회사로 가 버렸다. 아내는 어린 손녀를 보느라 꼼짝도 할 수 없다. 

푸르른 초원이 가득해 행복한 나라, 몽골(2008)

모든 것을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한다. 운동도 할 수 없고, 화실도 갈 수 없으며 모든 삶이 정지되었다. 우선은 아이를 일으켜 세워야 함이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병실 수발도 들어야 하고, 이것 저것을 챙겨줘야 한다. 코로나 시국에, 병원을 드나드는 것도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열을 체크하고, 출입 명부를 작성해야 한다. 쉬운 방법은 없을까?  방법은 보호자도 코로나 검사를 받는 것이었다. PCR 검사를 받고 음성이 나오면, 세부 검사를 하지 않고 오고 갈 수 있단다. 이젠, 할 수 없이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우선 딸아이를 입원시켜야 했다. 다행인 것은, 같은 병원에 제자가 있어 물어볼 수 있기에 여간 다행스러운 것이 아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병원 절차, 너무도 복잡하고도 어렵다.


복잡한 입원 절차를 마치고 입원실로 올라갔다. 숨을 몰아쉬는 어르신들이 누워 있다. 갑자기 숨이 멎어진다. 할 수 없다. 마음을 다잡고 버티어 내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딸아이를 진정시키고,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집을 향했다. 다리와 마음에 힘이 쭉 빠진다. 어떻게 버티어 내야 할까? 모든 것이 정지된 삶, 누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가슴으로 울음을 참으며 아내가 챙겨준 짐을 들었다. 왜 이렇게 가벼운 짐마저도 무겁게 느껴질까? 마음이 한없이 무거운 저녁, 터덜거리며 병원으로 향한다. 주체할 수 없는 설움이 가슴을 후벼 판다. 찬 겨울바람이 온몸을 얼게 하는 저녁이다. 다시 병원에 들어가는 절차가 앞을 막는다. 모든 사정을 또 설명하고 통과한 병원 입구, 나라도 힘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수없이 되뇌는 질문이다.

삶이 곧 종교요 행복인 나라, 티베트(2011)

이튿날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아침 아홉 시가 되기 전에 벌써 긴 행렬이 보인다. 날씨는 왜 이렇게도 춥던가? 두터운 겨울 옷을 입고, 지금껏 용케 피해왔던 코로나 검사 줄에 끼어들었다. 겨울바람과 함께 마음은 왜 이렇게도 추운가? 어린아이도 대열에 합류해 울고 난리가 났다. 요란한 한 시간여를 기다리고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친절한 검사요원들 덕분에 훈훈한 검사를 받았다. 간이 검사장, 컨테이너 박스를 조립한 건물이다. 바람을 막을 수 도 없는 간이시설, 몸을 숨길 곳이 없다. 모일 수도 없고, 공기가 소통돼야 하기 때문이다. 덜덜 떨면서 기다림으로 해낸 코로나 검사가 나왔다. 음성으로 판명되어 다행이다 싶지만 이젠, 딸아이의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온 삶이다. 옆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살아온 삶이었다. 아이들을 믿으며 모든 것을 아이들 판단에 맡긴 삶이었다. 가끔은 생각해보기도 한다. 한 번쯤 다시 살아 볼 수 없을까? 아이들과 다시 한번 살아 보고 싶다. 모두가 처음의 삶이니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라도 해 줄 수 없음이 안타깝고도, 서러운 삶이기에 하는 생각이다. 따스한 가슴으로 길러 보고 싶은 아이들, 한 없는 사랑으로 안아 보고 싶은 아이들, 더 줄 것 없이 모든 것을 주고 싶은 아이들이다. 이제라도 더 해 줄 수 없을까? 나의 엄마 그리고 아버지도 이런 삶을 살았을 것이리라. 당신들의 마음을 이제야 느껴보는 세월이지만,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은 모르는 삶이다. 딸아이의 A형 간염이 잘 치료되길 간절히 바라는 철부지 아비의 긴 하루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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