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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Mar 09. 2022

10살 손녀, 어느덧 의젓한 어른이었다.

(손녀와 함께 하는 시간, 장독대에 눈이 내렸다.)

입원한 딸아이의 A형 간염, 만만치 않았다. 쉽사리 생각한 아이는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채혈해간 결과, 입원할 당시보다 호전된 결과였다. 조금은 안심이 되는 상황이니 의사의 치료만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기나긴 시간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전염성이 있는 A형 간염, 간단히 전할 물건만 전해주고 병실에도 있으면 안 된단다. 혼자서 버티는 외로움과 공포감은 어떠했을까? 불안과 조바심으로 밤잠을 설치고 난 아침,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호전되는 줄 알았던 상태가 좋지 못하단다. 입원한 병원도 종합병원이지만, 더 큰 병원으로 가면 어떻겠느냐 한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이 온통 코로나로 가득한 시점이다. 어디로 가도 코로나 검사가 발목을 잡는다. 우선은 아이의 코로나 검사를 다시 했다. 어느 병원으로 가도 코로나 검사라는 입장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을 점검하러 찾아간 병원, 큰 병원을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어디로 갈 것인가? 부산에 있는 사위와 상의한 결과 서울로 옮기기로 했다. 서둘러 퇴원 수속을 밟고 서울에 있는 유명 병원으로 이송하기로 했다. 서울의 교통상황, 언제나 불안하기만 하다. 더듬거리며 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다. 더듬거리며 서울로 향하는 사이에 사위는 부산에서 출발했다. 어려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할머니와 있는 손녀가 문제였다.


한 번도 엄마와 떨어져 생활해 보지 않은 손녀, 초등학교 2학년이다. 여러 걱정 중에도 손녀의 하루하루가 고민이었다. 엄마를 찾으며 울고불고하면 어떻게 할까? 전염성이 있어 방법이 없는데,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면 바로 이해가 되었다. 엄마가 아파 병원에 있으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저는 집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혀 내색을 하지 않지만 속으론 많은 걱정과 기대를 하고 있었다. 가끔 되뇌는 말, 엄마가 보고 싶고 아빠도 보고 싶단다. 어린것이 속으론 얼마나 보고 싶을까? 그래도 이렇게 참아줌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손녀를 할머니가 돌보며 서울로 향했다. 여기도 코로나는 발목을 잡고 있다. 

그 사이, 봄은 서서히 오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응급실 입원이 확정되고 사위도 도착했다. 보호자는 한 사람만 가능하단다. 사위에게 부탁을 하고 되짚어 내려오는 길, 마음이 아프다. 어떻게 도와줄 수 없는 아비의 처지다. 친구들도 다 은퇴하고 있는 시점이라 누구에게도 부탁할 수도 없다. 도도한 병원의 태도, 치료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 할 소리를 참는다. 하찮은 무지렁이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 속으로 삭이며 내려와야 했다. 힘없는 사람은 어떻게 그 두터운 벽을 허물 수 있을까? 안 된다는 입원이 순식간에 이루어지기도 한단다. 내 생애에는 감이 엄두도 내지 못할 벽이었다. 두터운 벽을 간신히 넘어섰다는 안도감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마음속으로 긴 울음을 참고 내려오는 길, 이젠 손녀가 문제다. 어떻게 할까?


고단한 몸을 이끌고 내려온 집, 손녀가 있어 훈훈하다. 훈훈함 속엔 허전함이 있으니 말을 하지 않지만 속으로 삭이는 손녀가 안쓰럽다. 저녁을 먹고 소주를 한 잔 했다. 깊은 잠 속에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에서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수작이었다. 정신은 더 말똥말똥 해저 잠이 오지 않는다. 멀쩡한 정신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이했다. 서둘러 전화를 했더니 뜻 밖에 좋은 소식이었다. 많이 호전되어 고비는 넘겼다는 소식, 이젠 회복만 기다리면 된단다. 고비를 넘겼다니, 더한 고비가 있었단 말인가? 숨이 멎는다. 긴 한 숨을 쉬며 맞이하는 하루, 밝은 햇살에 무한히 감사해하는 아침이다. 


행복이 별것이던가?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는 행복, 햇살을 맞이하고 봄을 맞이하는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이 무엇이란 말인가? 푸른 봄날, 작은 새싹을 보고 느끼는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가? 몇 번의 아름다운 봄날을 더 맞이할 수 있을까? 살아가면서 알지 못했던 일들, 너무나 소중한 아침이다. 정상적인 상태로의 회복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단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니. 딸아이는 아비에게 숨기는 비밀이 있었나 보다. 많이 아프고 걱정거리가 있었지만 아비에게 숨기고 참아 온 것이다. 모든 것이 해결되어 조금은 안심되지만, 손녀를 돌보는 일이 남았다. 


초등학교 2학년, 겉보기엔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속엔 모든 것이 가득한 어른이었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다. 가끔,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만 꾹 참는 손녀다. 어떻게 하든지 손녀가 불편하지 않게 정신을 쏟아야 했다. 놀이터를 나가야 했고, 놀거리를 만들어 줘야 했다. 어린 손녀는 말없이 따라 해 줌에 너무 고맙다. 먹거리를 주면 먹고, 놀거리를 주면 말없이 놀아 준다. 공부할 거리를 주면 말없이 해내고 읽을 책을 꾸준히 읽어 준다. 혼자서도 그림을 그리며,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준다. 가끔 전해 오는 엄마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정신을 쏟는다.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 된 손녀다. 

아이 아닌, 어른 손녀가 놀고 있다.

가끔 들려오는 딸아이의 소식이다. 점차 호전되어 일주일 정도 입원이 필요하단다. 일주일, 딸아이와 손녀가 버텨줘야 한다. 서두름보다는 느긋한 마음으로 하루를 설계해야 한다. 어쩌면 긴 싸움이 될 듯도 한 상황이다.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아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기껏해야 돈 몇 푼 전해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것밖에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단 말인가? 속으로 위로를 해보는 아침이다. 돈 몇 푼도 전해주지 못하는 형편보다는 낫지 않은가? 손녀를 봐줄 수 있고, 뒷바라지라도 해 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 아니던가? 마지못해 자신을 위로하며 딸아이의 호전을 기대해 보는 아침이다. 숨 막히는 하루가 또 지나갔다. 전화를 할 때마다 컨디션 회복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풀어진 몸을 다스리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조마조마하던 하루가 또 가고, 손녀도 안정된 생활을 한다. 숨 막히는 시간이 지나고 이른 아침에 반가운 전화가 왔다.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하루, 이틀 후면 퇴원해도 된다는 소식이다. 조마조마하게 가슴 졸이던 식구들이 안도의 숨을 쉬는 아침이다. 퇴원을 시켜 이젠 몸을 추스르는 일만 남았다. 당분간은 친정에서 몸을 추슬러 줘야겠다. 손녀의 학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걱정하는 순간,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가  해결해 준다. 오미크론의 득세로 대면 수업 대신 온라인 수업이 진행된단다. 부산으로 향하지 않고 친정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면 되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생긴 것이다. 이젠, 온라인으로 수업받는 방법을 더듬거리며 배워야 할 때가 되었다.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손녀의 공부를 도와야 한다. 딸아이 덕에 별일을 다해 보는 하루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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