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Mar 14. 2022

봄비 오는 아침, 골짜기에도 봄은 왔다.

(비 오는 날 아침, 백목련의 아침)

아침 창문을 열자 비가 내리고 있다. 한없이 고요한 산골짜기 풍경이다. 산을 오가던 산새들도 말이 없다. 벌써 봄은 골짜기까지 와 있었다. 봄을 전해주는 봄비인가 보다. 봄비, 듣기만 해도 포근하고 싱그럽다. 엊그제 잔디밭 가장자리를 정리하며 감지한 봄기운이다. 머뭇거리던 푸름은 어느새 봄기운을 가득 전해주고 있었다. 곳곳에 푸름이 오고 있었지만, 대지에 엎드려 있던 꽃잔디가 으뜸이었다. 찬 겨울을 기꺼이 참아 온 꽃잔디, 대지에 기대어 긴 겨울을 지냈었다. 죽은 듯이 누런 빛깔이 역력했던 꽃잔디였다. 


작은 푸름은 어느덧 물이 흐르듯 줄기를 따라 흘렀다. 작은 도랑에 물이 흐르듯, 푸름이 줄기를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실핏줄을 타고 흘렀던 푸름은 어느새 벅찬 봇물이 되었다. 가느다란 줄기를 감싼 푸름이 멀리 오는 봄을 알아차린 것이다. 어느새 고개 들어 봄을 기웃거리고, 새 봄은 그 위를 서성댄 것이다. 갑자기 바라봄이 불편했다. 겨우내 무심하게 지냈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다. 무던히 버티었던 겨울을 혼자 견디어 냈음에 가슴이 아파서다. 누구도 봐주지 차디찬 겨울을 꽃잔디는 그렇게 겨울을 지켜낸 것이다. 

꽃잔디의 줄기엔 물이 흐르고 있다.

지난해 겨울에도 누런 빛으로 누워있던 꽃잔디였다. 물 한 모금 먹지 못해 굶어 죽은 듯했었다. 혹시 죽지 않았을까? 며칠을 찾아봐도 변함이 없다. 누런 빛깔로 누워있음이 안타까워 흔적을 지울까 고민했었다. 누런 빛깔을 지워내면 다시 푸르름이 찾아오지 않을까? 긴 고민 끝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뉘엿뉘엿 겨울이 깊어가고 눈이 쌓였다. 뉘엿뉘엿 겨울이 저물 무렵 누런빛은 다시 눈에 보였다. 다시 고민을 하지만, 혹시나 해서 두고 보기로 했었다. 참고 기다림은 큰 환희를 주었다. 옅은 푸름이 점점 짙어지더니 기어이 줄기가 살아난 것이다. 봄철에 익어 갈 무렵엔 드디어 꽃을 보는 즐거움을 맞이했던 꽃잔디였다. 


서서히 봄이 오려는 날씨, 추웠던 겨울엔 기대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무던히 버티고 견뎌옴에 찾아오는 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봄을 몰고 오려는 비가 내리는 아침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산을 올라 보려는 아침이다. 늙어가는 청춘들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함께 어울려 오르려는 산 밑에서 만났다. 여기도 추근거리며 작은 비가 내리고 있다. 우산을 쓸까 말까 망설이게 하는 비, 미세먼지만 아니었으면 그냥 안아보고 싶은 봄비다. 주변 나무에도 봄 방울이 맺혀있다. 커다란 목련에도, 하얀 꽃을 피우는 조팝나무도 봄을 이고 있다. 봄기운의 감도는 아침나절, 또 봄을 찾아내고 말았다. 목련이 봄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뜰 앞의 산수유가 꽃을 피우려 한다.

주변 나무와는 확연히 큰 백목련이 봄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얀 솜털을 얹은 꽃망울을 맺고 있는 것이다. 어제까지도 추운 겨울을 참고 견딘 목련이 보란 듯이 꽃을 피우려나 보다. 깜짝 놀라 눈을 뜨고 바라본 곳곳에 봄의 흔적이 역력하다. 목련은 줄기부터 달라져 있다. 줄기엔 검푸름이 확연하고, 껍질엔 물기가 촉촉하다. 겨울 빛깔과는 전혀 다르다. 뜰 앞 공작단풍에도 봄기운이 서려있고, 언덕 위 영산홍은 벌써 봄을 노래하고 있다. 가지 끝에 물방울이 맺힌 공작단풍, 마디마다 볼록한 봄을 맺었다. 바로 잎새가 스며 나올 형상이다. 영산홍도 봄 맞을 준비가 끝났고, 비 온 날의 아침은 봄이 가득했다. 


추운 겨울을 버티게 한 자연의 섭리였다. 겨울을 버티고 나니 봄을 만난 것이다. 봄의 흔적을 뒤로하고 오르는 산, 그곳에도 벌써 봄은 와 있었다. 자그마한 진달래도 꽃망울을 맺었다. 곳곳에 흩어진 진달래 군락엔 물방울이 앉은 꽃망울이 가득하다. 연한 초록에 붉음을 물들였다. 서서히 붉게 물들어 꽃 피울 준비가 끝난 것이다. 벌써 알아 채린 산등성이에도 봄 냄새가 가득하다. 꺽다리 생강나무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맹숭맹숭한 줄기에 꽃을 피우려 준비가 끝났다. 앙증맞은 꽃몽우리가 바람 그네를 탄다. 기나긴 겨울을 무던히도 버틴 자연의 보상이다.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봄을 기다린 것이다. 

공작단풍도 봄이 자리했다.

자그마한 봄비가 대지를 적시면, 봄은 성큼 다가올 것이다. 온갖 골짜기 식구들이 풍성해지고, 대지엔 푸릇한 물로 젖어들 것이다. 곳곳에 봄을 만난 식구들이 들썩일 것이다. 산새들이 찾아들어 시골집은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처마 밑에 찾아들어 작은 둥지를 틀 테고, 어린 산새들은 소란해질 것이다. 골짜기는 온갖 푸름을 섞어 낼 것이고, 작은 도랑은 푸름으로 물들 것이다. 서서히 봄이 깊어가면 골짜기는 더 풍성해지리라. 온갖 나물이 넘쳐나고, 가느다란 도랑은 몸집을 불리고 말 것이다. 거기엔 사계절의 이야기가 숨어들고, 농부의 발걸음은 더 바빠질 것이다. 봄이 서서히 익어 가는 날, 골짜기의 식구들은 한층 바빠지며 넉넉한 삶의 이야기를 이어 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0살 손녀, 어느덧 의젓한 어른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