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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pr 01. 2022

등잔불과 함께, 겨울밤이 찾아왔다.

(등잔불이 주는 추억, 연기 나는 골짜기)

초가지붕 밑에 자리한 작은 방안, 어둑한 불빛이 살아있다. 늦은 밤이지만 희미한 그림자는 오늘따라 더 일렁였다. 아직도 사람의 숨결이 오고 가나 보다. 언제나 같은 밤이지만 책 읽는 소리도 정겨웠다. 희미한 등잔불이 지키고 있는 어둠 속이다. 긴긴 겨울밤을 지켜주던 등잔불, 어둠을 지우려면 심지를 돋워야만 하는 저녁이다. 어둑한 방안에 일렁이는 그림자는 고단한 삶을 이어 가시는 어머님과 아버지의 그림자였다. 어머니는 누렇게 찌든 책을 들고 등잔불에 기대 눈을 비비고 있다. 차가운 윗목엔 움직임이 없는 작은 그림자도 있다. 아버지가 새끼를 꼬시는 것이다. 등잔에서 먼 거리의 그림자, 작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 옹골찬 그림자였다.


누런 표지에 세로로 쓰인 제목, '박씨전'이다. 때로는 춘향전이 등장하기도 했고, 흥부전이 보이기도 했다. 누런 책은 세로로 쓰인 낯선 책이다. 글씨를 따라 어머님의 고개는 아래위로 움직였다. 그림자도 덩달아 아래위로 오고 간다. 느릿느릿 이어지는 구수한 목소리는 그침이 없었다. 어둑한 윗방엔 아버지의 고단한 삶에 쉼의 시간도 없었다. 저녁나절 두드리고 물을 뿌려 놓아 부드러워진 짚단이 놓여 있다. 긴 겨울밤의 놀이인지, 일인지는 알 수 없는 새끼 꼬는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그림자는 저 멀리 작았다. 찬 윗목은 희미한 등잔불에서 멀기 때문이다. 작은 당신의 그림자는 움직임이 없었다. 어둑한 몸 그림자에 새끼 꼬는 손 그림자가 숨어 버렸다. 가마니를 짤 가느다란 새끼를 꼬아야 했고, 나뭇짐을 맬 굵은 새끼를 꼬으셔야 했다.  


어둠을 밝혀주는 등잔불, 오랜 세월이 흐르고 또 만났다. 심훈의 상록수에나 나올 법한 남포 불이 되어 만난 것이다. 어렵게 입학한 사범대학, 등짐으로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의 소원이셨다. 평생 학교 선생을 원하셨던 아버지, 아버지의 소원을 외면할 수 없었다. 먼 타지로 떠나는 친구들을 외면하고 아버지의 원을 풀어드리기로 했다. 일 년간의 원을 풀어드리고, 다시 나의 욕심을 찾아 보리라는 생각이었지만 그만 주저 않고 만 사범대학이다. 남을 가르치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던 시절, 일 년을 버티기엔 힘에 겨웠다. 이럴까 저럴까를 망설이던 시간이다. 고시를 기웃거리고 서울 유학을 고민하는 사이, 친구 따라 강남을 가고 말았다. 어려웠던 시절에 유행하던 야학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먹고 살기 힘겨웠던 그 시절엔 초등학교 졸업이 최고의 학교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선은 살림을 도와야 하는 시골살이다. 초등학교로 배움을 막혔던 아이들이 수없이 많았던 시절, 겨울방학을 맞아 찾아 나섰던 미취학 아동들을 시골 곳곳에서 만났다. 부모님을 설득하여 저녁시간에 가르쳐 보자는 심산이었다. 어렵게 모집한 학생들을 가르칠 장소가 없었다. 구걸하다시피 하여 빌린 초등학교 교실, 그곳에는 전기가 있을 리 없다. 할 수 없이 야간 수업을 할 수 있는 방법, 촛불과 남포 불이 등장했다. 교실 양편에 밝은(?) 남포 불이 달려있다. 아이들은 책상 위에 촛불이나 등잔이 놓여야 했다. 


어린 시절의 그 등잔불을 대학에 진학하여 만난 것이다. 아련한 추억 속의 그림이었다. 등잔불을 켜 놓고 두어 시간 수업을 했다. 눈물겨운 가르침이었다. 진정으로 가르치고 싶어 가르치는 '가르침'이었다. 학생들 속엔 아이들도 있었고, 성숙한 아가씨도 있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시골에서 일손을 돕는 아이와 아가씨들이다. 야간으로 2년을 가르친 후,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치르기 위한 무대였다. 수업을 마치고, 집이 먼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찾아간 잠자리는 이장집 사랑방이다. 사랑방에도 어김없이 등잔불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박하게 차려진 밥상머리에도 등잔불이 자리를 지킨다. 불이 점차 줄어들어 꺼질 즈음이 되면 벽장 속에 준비된 석유를 넣어야 했던 시절이다. 어머님의 등잔불을 대학을 진학하고 만난 것이다. 


어머니는 등잔과 익숙한 삶의 연속이었다. 늦게까지 바느질을 하셨고, 이웃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간간히 찾아오는 이웃집 할머니, 할머니는 무당이라 했다. 가끔 들려오는 풍물소리는 여지없이 굿을 하는 소리였고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저녁에 찾아오는 무당집 할머니와 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부분 귀신에 관한 이야기로 이불에 얼굴을 묻고 무서움에 떨어야 했다. 굿을 해야 귀신이 없어지고 복이 온다 했다. 가끔은 무당 할머니의 설득에 어머님은 굿을 하시곤 했다. 아버지의 불호령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몰래 굿을 하곤 했다. 거기에도 언제나 일렁이는 등잔이 자리하고 있었다. 등잔, 머릿속에 가물가물한 등잔 모습이다.


서너 뼘 됨직한 기둥 밑엔 등잔이 넘어지지 않도록 널빤지가 달려 있다. 널빤지 위엔 성냥이 놓여 있다. 세로로 선 기둥 위쪽에 등잔을 올려놓는 작은 널빤지가 붙어 있고, 그 위에 등잔이 있다. 석유가 들어있는 하얀 사기 등잔에 심지가 끼워진 뚜껑이 닫혀있다. 질긴 노끈을 꼬아 심지를 만들었다. 석유가 타고 오른 심지에 불이 붙어 방안을 비춰주는 것이다. 석유는 오일장날 구입해 놓아야 했고, 석유를 아끼려 흐릿한 불빛으로 긴 밤을 지내야 했다.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실 때만 심지를 돋워야 했던 등잔불이다. 등잔불이 중심인 방안은 언제나 어둑했다. 등잔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그림자 속엔 그리움과 따스함이 있었다.


어둑한 겨울밤, 등잔이 중심이 되어 옹기종기 모여있다. 아이는 공부를 했고, 어머니는 책을 읽으셨다. 차가운 윗목은 언제나 아버지 차지였다. 구성진 목소리 따라 그림자가 일렁인다. 큰 그림자는 아래위로 일렁였고, 꼿꼿하신 아버지는 움직임이 없다. 어머니는 터진 양말을 꿰매어야 했고, 하루의 삶을 이야기했다. 어둑한 윗목에선 어김없이 아버지가 새끼를 꼬으신다. 밤이 깊어지면 고구마와 동치미가 등장했고, 가끔은 도토리묵도 맛볼 수 있었다. 꽁꽁 언 붉은 감이 나왔고, 뒷 광에 숨긴 달큼한 고욤도 등장했다.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시골집의 야식이다. 거기에는 긴긴 이야기와 정겨운 삶이 있는 등잔불이 있었다. 어머님의 그림자와 아버지의 꼿꼿함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겨울밤의 등잔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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