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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Mar 24. 2022

서둘러 새봄을 준비해야 했다.

(봄을 준비하며, 지난 봄날의 추억)

서늘하던 바람은 어느새 흔적이 없어졌다. 계절의 순환 속에 자연의 위대함을 아침, 저녁으로 알게 한다. 참, 인간은 하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에 가슴이 뜨끔해 온다.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 천년을 설계한다지 않다던가! 서서히 봄을 준비해야 하는 마음은 설레기도, 뜨끔하기도 한다. 마음이 설레는 것은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올지니 겨울은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가슴이 뜨끔해하는 것은 겨울에 움츠려 있는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였다. 어서, 이미 온 봄을 준비하는 마음을 다스려야겠다. 행복한 봄 날을 맞이하고 싶어서다. 어디서부터  봄을 찾아야 할까? 어떻게 할까? 


따스한 햇살이 풍기는 아침, 따스한 커피 한잔을 초대했다. 거실을 가득 메우는 커피 향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벌써 봄인가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산새들이 난리가 났다. 집을 지으려고 난리가 났고, 어디다 지어야 할지 제집인양 헤집고 다닌다. 아침나절을 어지럽게 하는 산새들이다. 조용한 골짜기의 아침, 누구도 말을 걸어주지 않는 산골이다. 난데없이 찾아온 산새들이 말을 걸어주니 이 보다 더 반가운 일이 어디 있다던가? 인간의 작은 소리 한마디 없는 골짜기를 새들이 알아채고 찾아온 것이다. 고마운 마음에 커피 향은 오간데 없다. 간단히 아침을 정리하고 뜰로 나섰다. 


지난해에도 줄 수 있는 것을 다 준 자연의 골짜기다. 토마토를 주고, 보랏빛 가지를 주었다. 아침 이슬에 젖은 방울토마토는 거절할 수 없는 자연의 맛이었다. 보랏빛 가지는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의 색이었다. 푸릇한 상추를 만났고, 매콤한 고추를 주었으며 갖가지 나물을 주었다. 서서히 자연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자연이 주는 수만 가지의 고마움을 앉아서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퇴비를 주고 밭을 갈아야 한다. 앉아서 받으려는 것은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올해는 또 무슨 나무를 심으며 봄을 시작할까? 허전한 수돗가를 장식하고 싶어서다. 

지난 여름의 정원

봄기운을 맛보기 위해 나무시장으로 향했다. 나무를 사고, 꽃을 사야 봄이 온 것 같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꽃이 있어야 하고, 꽃을 피워야 하는 나무가 있어야 한다.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으려면 땅심을 높여주는 퇴비가 있어야 한다. 퇴비라도 주면서 나무를 심어야 하고, 꽃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자연에 대한 예의는 갖추고 싶어서다. 텃밭을 오가는 주인 발길에 따라 채소의 생김과 맛이 익어간다. 주인의 발길 따라 상추의 싱싱함이 살아나고, 붉은 토마토는 붉음이 짙어진다. 가지의 보랏빛 피부에 윤기가 흐르며, 고추의 매운맛의 짜릿함이 깊어진다. 저마다의 색깔의 깊이와 맛의 향이 다르다. 떳떳함을 보여줄 수 있도록 힘을 돋워 줘야 하기에 어서 봄을 준비해야 한다. 


나의 정원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가득하다. 영산홍이 가득하고, 철쭉이 수북하다. 붉은 공작단풍이 자리했고, 노란 산수유가 빠질 수 없다. 여름을 수놓을 많은 나무가 있지만 그리워하던 나무가 있었다. 나의 작은 우물가, 그곳엔 붉은빛을 안겨주는 앵두나무가 있었다. 하양과 붉음이 용케도 어울린 꽃이 핀 앵두나무, 하늘대는 바람에 꽃잎이 휘날리더니 푸릇한 열매를 맺었다. 앙증맞은 푸른 앵두는 오는 햇살에 몸을 맡기더니 어느덧 붉은빛으로 갈아입었다. 오래전 우물가에서 만났던 앵두나무였다. 수돗가에는 굵직한 보리수나무가 있다. 하얀 꽃을 가득 피우고, 붉은 열매를 가득히  선사한다. 올해는 앵두나무를 심어 붉음의 조화를 보기로 했다. 오래 전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서다. 

가을이 익어가는 시골이었다.

나무시장에 있는 앵두나무, 일 년생밖에 없단다. 적어도 몇 년은 지난 나무를 찾고 싶었다. 하루빨리 싱그러운 꽃을 보고, 빨간 열매를 보고 싶어서다. 일 년을 돌봐 내년을 기약하며 일 년생 앵두나무를 구입했다. 앵두나무만 택하면 서운치 않을까? 시장을 둘러보며 만난 것이 체리나무였다. 체리 나무, 어린 손녀가 너무 좋아하는 과일이다. 체리나무 두 그루와 앵두나무 한 그루를 구입했지만, 아내는 미련이 남았나 보다. 한참을 망설이다 찾아낸 꽃은 싱그러운 붉음이 좋은 작약이었다. 올해는 화단이 붉음으로 가득할 것이다. 영산홍이 붉고, 보리수가 붉게 열리면 작약도 붉음으로 어울릴 것이다. 서둘러 차에 올라 돌아온 시골집, 어디다 심어야 할까? 매년 봄이면 고민하는 일이다. 봄마다 행복한 시골에 살지 않으면 어찌했을까?


어렵게 마련한 골짜기의 집이지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나무 한그루, 꽃 한 송이를 심을 땅이 없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손녀가 찾아와 꽃 한 송이 심을 곳이 없었다면 얼마나 실망했을까? 오늘도 부지런히 나무를 심으며 하는 생각이다. 체리나무를 심고, 앵두나무를 심었으며 그리고 작약을 심었다. 곳곳에 남아 있는 틈을 비집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찾아 주었다. 서둘러 봄이 찾아오면 그들도 힘을 얻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 줄 것이다. 꽃을 심고 난 오후, 밭을 정리해야 했다. 토마토를 맛봐야 하고, 상추를 따야만 한다. 손녀가 좋아하는 토마토가 자라야 하고, 친구들이 찾아와 삼겹살을 즐기게 할 상추를 심어야 했다. 


엊그제 준비해 놓은 퇴비를 뿌렸다. 나의 텃밭, 넉넉히 10평 정도도 되지 않는다. 나의 경력으로 보면 그것도 넉넉해 힘에 겨운 면적이다. 퇴비를 뿌리고 삽질을 하는 골짜기, 숨이 턱턱 막힌다. 간간히 숨을 쉬어가며 밭을 정리하는 손길, 그 안에 풍성한 봄이 있고 가을이 있으며 겨울이 숨어 있다. 푸르른 봄을 지내야 풍성한 여름을 만날 수 있다. 친구를 초대해 삼겹살을 구어야 하며, 손녀가 오면 토마토를 따줘야 한다. 숨이 막혀도 힘겨운 삽질은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채소를 심을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나무를 심을 수 있어 마냥 즐거운 하루다. 서둘러 밭을 갈아내고 난 오후, 온몸이 땀에 젖어 있다. 한참의 노동이 주는 즐거움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골짜기다. 한참의 노동으로 정리한 텃밭, 올해도 나의 삶을 풍성하게 꾸며 줄 삶의 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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