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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un 11. 2020

시골 동넨 뻐꾸기가 낮잠 재운다.

시골살이의 즐거움(명사산 월아천)

한적한 시골집에 고요함이 흐른다. 들리는 소리는 멀리서 우는 구성진 뻐꾸기 소리뿐이다. 가끔 알을 낳은 암탉이 유세라도 하듯 울어대면, 이웃집 닭도 품앗이하듯 덩달아 울어준다.


어머니는 텃밭에 옥수수를 심으러, 아버지는 냇가 옆에 있는 작은 논에 못자리를 하러 가셨으니 점심때가 되어야 오실 것이다. 초가집 지붕 위에 머리를 내민 감나무는 초록으로 물이 들었고, 작은 바람에 몸을 맡기며 고요함을 즐기고 있다.

봄이 제법 익을 무렵, 아카시나무 푸른 잎 보이더니 하얀  꽃을 피워 그럴듯한 냄새를 보내주고, 어찌 알았는지 산동네 벌들이 다 모였다. 덩달아 나비도 기웃거리지만 바람결에 못 이기는 척 이내 허공을 가른다. 가끔 흔들리는 소나무는 오늘도 송홧가루를 허공에 날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준다. 덤불 속 찔레나무는 작은 순에 돋은 하얀 솜털 벗겨내고, 하얀 꽃 가득이고 가시덤불을 훤히 밝혀 놓았다. 그러면 이 시골집은 나른한 봄이 자리를 비켜주면서 여름이 서서히 오고 있다는 뜻이다.


아침 무렵 뿌옇게 피어오른 안개가  산등성이부터 모습을 나타내고, 그 밑으로 자리한 낙엽송이 푸르른 줄기에 묻은 안개를 털며 모습을 드러낸다. 늦잠 자던 산새 기지개 켜며 하늘을 날 무렵, 산꼭대기 숨어 있던 햇살이 한 빛 비춰주니 시골집 하늘 영화관은 그렇게 시작이 된다. 산등성이를 따라 움직이는 햇살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푸르른 산이 나타나고, 햇살 위를 날아가는 산새는 하나의 점이 되어 하늘 높이 실선을 그려준다. 기다란 오리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어느새 화살이 되어 뒷산에 머무르고, 이에 뒤질세라 뒷산은 서서히 조명에 밝아온다. 점점 산등성이 넘은 햇살 풍부해지면, 점점이 밝힌 초가집들이 나타나며 고요한 산동네 하루를 시작한다.

초가집 굴뚝에선 벌써 연기가 피어오르고, 발 빠른 농부는 어느새 농사일을 시작했다. 건너 동네 큰 마당을 가진 집은 마당을 깨끗이 쓸어 놓았고, 텃밭을 서성이는 농부는 서서히 커 오르는 감자 싹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감자보다 잘 자라는 풀은 어느새 고랑을 메웠으니 짬을 내어 풀을 뽑아야 하지만 언제 런지 모르겠다.

벌써 담가 놓은 볍씨가 촉을 튀웠고, 바람에 일렁이며 키를 불려놨으니 제법 볍씨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농부는 모를 심을 논을 갈고 물을 대며, 어기적거리고 걷는 소를 달래  썰래 질을 한다. 높은 곳은 흙을 끌어 낮은 곳을 메워야 하고, 울퉁불퉁한 논은 골라 평평한 논 자락으로 꾸며 놓아야 한다. 어미소 언저리를 뱅뱅 도는 송아지는 힘겨워하는 어미소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좁다란 논둑길을 오가고 있다.  

엇 저녁에 내린 작은 비는 밭농사는 지장이 없을듯하지만, 논농사를 지을 정도는 되지 않아 농부는 서운하기만 하다. 이대로 비가 오지 않으면 논바닥에 찰랑대는 물이 바로 잦아들 테니 골짜기 물을 끌어와야 한다. 텃밭에는 얼마 전 심어 놓은 옥수수 싹이 올라와 작은 바람에 팔랑대는 모습이 앙증스럽고, 고랑 따라 이식한 고추는 이제야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았다.                                          


아침 햇살이 더 성해 정오가 되면 시골 동네는 한낮의 열기로 더 조용해진다. 바람에 흔들리던 나무도 지친 바람 덕에 조용해졌고, 햇살 따라 점되어 날던 산새도 낮잠을 즐기는지 종적이 없다. 알 하나 낳고 한 일 다 한 듯이 울어대던 닭도 어느새 잠잠해지면, 언제 나타났는지 산 뻐꾸기는 뻐꾹 거리며 시골 동네를 잠재운다. 중천에 해가 서서 동네 바라보면 긴 그림자 어느새 작아지고, 안갯속에 숨어 있던 낙엽송은 큰 키를 자랑한다. 


아침나절 써레질하던 논은 어느새 평평한 논이 되었고, 평온하게 가득 고인 물이 찰랑거린다. 논둑에 서성이던 커다란 미루나무는 가득한 논물에 그림자 던져 주고, 뒤질세라 논물은 춤추며 이내 초 여름을 즐긴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장구벌레 물살 가르고, 바람 따라 미끄러지며 제철을 만났듯 하다. 조용한 시골 동네 졸음에 꾸벅대면 멀리서 들리는 뻐꾸기 소리 따라 논물은 춤을 추고, 물속에 잠든 미루나무는 덩달아 꿈틀댄다.

서서히 햇살이 산을 넘어 시골 동네가 어둑해질 무렵, 농부는 서둘러 집으로 향하니 앞서가던 어미소 발 길 서두르고, 뒤따르는 송아지 서툰 발걸음 빨라진다. 하얀 얼굴로 고운 향 주던 아카시나무 잠들고, 덤불 속 풍성한 찔레꽃 어둠 속에 숨으면 조용하던 시골 동네는 다시 흥얼거린다. 키다리 감나무 저녁 바람에 그네를 타니 논두렁 개구리 목청 높이고, 먼산 뻐꾸기는 구슬프게 장단을 맞춘다. 골짜기 도랑 물소리 갈갈거리면 어느새 어두운 막은 내려오고, 이내 시골 극장은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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