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텃밭에는 그리움도 함께 크고 있었다.

(부모가 살아가는 재미, 텃밭의 상추)

by 바람마냥

밝은 햇살이 찾아온 주말 오후, 작은 텃밭에 사람으로 가득했다. 봄부터 아내와 함께 가꾸어 놓은 작은 텃밭이다. 가끔 찾아오는 친구들과 삼겹살을 함께할 때 요긴하고, 아내가 친구들한테 자랑삼아 뜯어 주는 채소밭이다. 전원주택의 필수요건인 작은 텃밭, 남들이 보기엔 보잘것없는 작은 텃밭이다. 정성껏 모종을 심고 아침저녁을 물을 주며 돌보아 왔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라보고, 풀 뽑으며 바라보며 혹시 벌레한테 들켰을까 걱정하는 텃밭이다. 주인의 정성과 물로만 키워지는 선한 텃밭이다. 가끔 찾아오는 이웃이 깜짝 놀란다. 언제 그렇게 키워 놓았느냐 한다. 화초처럼 예쁘게 키워 놓았다 한다. 화초는 한두 가지가 아닌 예닐곱 가지나 된다.


지난겨울을 견딘 산마늘이 터줏대감이다. 휑한 텃밭을 겨우내 지켜낸 산마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질세라 시금치도 무시할 수 없다.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이 없던 시금치였다. 봄이 되자 나 여기 있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촉을 내밀기 시작했다. 고단한 겨울을 거뜬히 지켜낸 시금치, 푸름으로 씩씩함을 마음껏 과시하고 있다. 봄부터 지금까지 아내의 국거리 걱정을 덜어 주었던 시금치가 아직도 싱싱하다. 아내가 뿌려 놓은 아욱도 촉을 내밀었다. 건새우가 곁들인 아욱국, 문을 닫아 놓고 먹는다는 아욱국이다. 구수함에 어머님의 그리움까지 던져주는 아욱이 바람결에 흔들린다.

서너 종류의 상추가 가득하고, 쑥갓과 곰취가 잎을 불려 놓았다. 거기에 쌈추가 배추처럼 몸집을 키워 밭을 가득 덮고 말았다. 쌈추는 손바닥만 해야 먹을 만 한데, 때도 없이 아침저녁으로 물을 준 업보다. 배춧잎 크기가 되어 가끔 겉절이로 밥상에 오르는 쌈추다. 쌈추 옆으로는 케일이 우두커니 서 있다. 널따란 잎을 달고 서 있는 케일, 아침마다 샐러드로 아침상을 장식해 준다. 올해도 벌레한테 들키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벌레한테 들키고 나면 구멍이 숭숭 뚫어져 난감한 때가 있다. 벌레를 잡을 수도 없고, 약을 뿌릴 수도 없어서다. 아직은 벌레가 찾지 못했는지 싱싱한 케일이 넉넉하게 자라고 있는 텃밭이다.


어린 손녀가 상추를 뜯고, 딸은 쌈추를 따고 있다. 딸은 쌈추로 겉절이를 해 먹는단다. 덩달아 며느리는 상추와 쑥갓을 뜯고 케일을 따 담는다. 다시 푸르른 돌나물 밭으로 향한다. 푸름과 싱싱함이 가득한 돌나물이 신기했나 보다. 햇살 좋은 주말, 부산에 사는 딸아이와 수원에 사는 아들이 찾아온 것이다. 싱그러운 5월의 여러 행사를 한 번에 묶어하기로 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해 여러 번 오고 가야 하는 일을 한 번에 하자 했다. 자주 오고 만나면 좋은 일이지만, 먹고살기에 만만치 않은 세월이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터에서 허덕이는 아이들이다. 무슨 일이 그렇게도 많단 말인가? 주 52시간 근무라지만 빛 좋은 개살구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오후 여덟 시 퇴근은 이른 퇴근이란다. 저녁을 먹고 아내와 함께 화실로 간다. 수채화를 그린 지 꽤 오래된 세월이다. 아홉 시쯤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아들이 전화를 한다. 이제 퇴근하는 길이란다. 저녁을 해 먹고 그림을 그리고 오는 시간에 아들은 퇴근한단다. 퇴근 후 집에 가서 밥을 해 먹어야 하는 시간이란다. 사위는 아직도 퇴근도 하지 못했단다. 허름한 회사가 아닌, 그럴듯한 회사에서 밥값을 하며 근무하는 아이들이다. 40여 년을 그렇게 살았지만 가슴이 찡한 것은 왜 일까? 새벽 7시에 출근해 오후 11시 퇴근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당연히 하는 일인지 알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 짓(?)을 한다니 안타까운 것이다.


늙은 청춘이 조금 더 젊었을 때의 기억이다. 할 일이 많아 바쁘기도 한 몸, 조금은 번거롭기도 했던 5월이었다. 자주 찾으려 했던 부모님, 이젠 기억 속의 부모님이 되었다. 하루라도 더 찾아뵙지 못한 것이 한이 되지만 그것을 알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살기 위해 허둥대던 삶, 아이들을 생각해 한 번도 힘겨워하지 않던 시절이다. 아직도 아이들의 삶은 똑같이 고단해 보인다. 한없이 안타깝고 화나는 것은 왜일까? 아직도 허둥거리며 살아감이 씁쓸하기만 하다. 언제쯤 편안한 삶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텃밭에서 부모의 온갖 정성이 깃든 야채를 뜯는 아이들을 보며 순식간에 하는 생각이다.


오래 전의 부모님의 기억, 하나라도 더 주면서 좋아했던 당신들이었다. 힘들게 지은 쌀을 주어야 했고, 무엇이든 쥐어주며 좋아하셨다. 한 움큼의 고추를 따 쥐어주며 흐뭇해하셨고, 채소 한 줌으로 허전함을 달래셨다. 값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하지만, 값으로는 따질 수 없는 당신들의 커다란 마음이었다. 세월이 흘러 당신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나이다. 하나라도 더 주어야 편안하고, 훌쩍 집을 떠나는 허전함을 메울 수 있다. 언제 오려나 기약하지 않고, 오기만 기다렸던 당신들이었다. 와야 하는 날에 오는 자식보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자식들을 좋아하셨다. 세월이 흘러도, 오고 싶은 집이요 엄마의 밥이 그리운 아이들이었으면 하지만 세월은 그렇지 않았다. 주섬주섬 채소를 따는 아이들이 한없이 뿌듯하다.

단지, 몇 장의 채소가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몇 푼의 돈을 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채소들이다. 하지만 자그마한 상추 속엔 엄마의 마음과 아비의 마음이 가득 숨어 있다. 작은 돌나물 속에 부모의 심정이 가득 담긴 푸르름이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풀을 뽑으면서 오늘을 기다린 채소밭이다. 채소가 가득한 채소밭보다는 아이들이 가득한 채소밭이었으면 했다. 언젠가 찾아 올 자식들이 흐뭇해하면서 그들이 반길 밭이었으면 했는데, 오늘이 그날이 되었다. 서서히 토마토가 알을 익히고 있고, 작은 고추도 키를 키우고 있다. 빨간 토마토가 익어가고, 싱싱한 고추가 붉게 물드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널따란 잔디밭에 푸르름이 가득하고, 붉은 토마토가 예쁜 색으로 물들 것이다. 여기에 푸르른 고추가 붉음으로 물들어 잘 어우러질 것이다. 푸짐하게 삼겹살을 굽고, 여기에 갖가지 채소가 등장할 것이다. 붉은 토마토와 풋풋한 풋고추가 등장하리라. 푸짐한 삼겹살 파티가 이루어지는 날은 앞산에 안개가 끼어야 제격이다. 가끔 소슬바람이 불고 덩달아 뻐꾸기가 음률을 넣어야 좋다. 오래 전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온갖 식구들이 있어야 좋다. 덩달아 텃논 개구리가 들썩이고, 맑은 하늘 속 반딧불이 수를 놓으면 금상첨화다. 아이들과 한바탕 잔치가 벌어지는 날을 기다리는 텃밭, 오늘도 키를 불리며 그날을 또 고대하고 있다. 사람 냄새가 가득한 텃밭 이야기를 오래도록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골짜기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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