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의 이야기)
작은 도랑을 따라 길게 자리 잡은 시골 동네는 언제나 고요하다. 한낮에는 마실 나온 산새들의 놀이터지만, 근래엔 산까치들이 동네를 마음껏 휘젓고 다닌다. 검게 익은 버찌에 반해 신이 났기 때문이다. 골짜기에 자리 잡은 동네는 작은 도랑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도랑을 따라 길게 이어진 길은 대충 100여 m 정도가 되는데, 도랑을 따라 황금 낮 달맞이꽃과 메리골드가 환하게 피어 있다. 이웃들과 어울려 어느 봄날 심은 것이다. 언덕 곳곳에는 달맞이꽃과 나리도 예쁜 꽃을 피웠다. 새벽, 이층 서재 앞 창문을 열자 앞 산에는 뿌연 안개로 가득하다. 바람 따라 산을 타고 오르는 안개는 신비스럽기도 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여름 더위가 가득할듯한데, 아내는 벌써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아내는 아침마다 걷기 운동을 한다. 동네 앞에 있는 100여 m 길을 따라 아래위로 오고 간다. 100여 m를 벗어나면 동네 길이 길게 이어지지만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이 오고 가기에 불편하다. 농부들이 아침부터 바쁘게 일하는 동네를 운동한다고 오고 가기가 미안해서다. 열심히 운동하는 아내, 이웃들이 언니라 부르는 것을 봐선 이웃들보다 조금 어른이 되는가 보다. 아침마다 운동을 하는 아내에게 이웃들은 심심치 않게 말을 걸어 준다. 텃밭을 오가면서 말을 걸고, 아침 기도를 위해 교회를 오가면서 말을 건다. 가끔은 운동을 같이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텃밭에 나가 밤새 안부를 묻기도 하고, 풀을 뽑아 주기도 하는 이웃들이다.
아내가 운동하는 아침, 산뜻한 공기를 맛보기 위해 현관문을 나섰다. 언제나 신비한 자연의 조화에 넋을 놓고 바라보는 아침 풍경이다. 산을 넘은 바람이 신선하고, 뿌연 안개가 신비스럽다. 아침 이슬을 반가워하면 이슬 젖은 잔디가 반겨준다. 곳곳에는 자연이 준 신비함이 고스란히 서려있다. 잔디밭으로 내려서려는데 호박이 한 덩이 놓여있다. 이슬에 젖어 있는 것으로 봐선 이웃이 금방 따 준 모양이다. 텃밭을 오가는 이웃들이 하나씩 건네는 호박이 있고, 가지가 있으며 갖가지 채소들이 있다. 소독을 하지 않아 대충 생긴 모양에 이슬이 젖어 있고, 더러는 흙도 묻어 있다. 밭에서 금방 따온 시골스런 채소들이다.
시골살이를 하는 이웃들은 늘 다정다감하다. 가까운 밭에 각종 야채를 심어 시골 생활을 즐기는 이웃들이다. 운동을 하러 동네를 오가는 아내, 지나는 이웃이 언니를 부르며 풋고추를 몇 개 건네준다. 붉게 익은 토마토를 한 바가지 건네준다. 정성껏 기른 오이를 하나 따서 건네준다. 골고루 심은 야채를 그냥 건네주는 것이다. 시골밥상은 항상 풍성하다. 마트엘 갈 필요가 없는 시골이다. 텃밭에서 채소가 자라고 있고, 이웃들이 건네주는 채소가 언제나 풍성하기 때문이다. 이웃들이 텃밭을 오가는 시간을 피해서 밖을 나서기도 한다. 무엇이든지 건네주려는 이웃에게 미안한 마음에서다. 물론 동네 언니도 그냥 있을 리 없고, 무엇이든 나누며 도란도란 살아간다.
이웃집서 사다 먹는 계란 맛은 어떠한가? 샛노란 노른자가 싱싱하면서도 아름답다. 마트에서 구입한 계란과는 맛과 품격이 다르다. 금방 낳은 싱싱한 유정란, 밤낮으로 울어대는 이웃 닭이 낳은 달걀이다. 대신, 이웃 닭과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 알을 낳고 세상이 떠나가도록 울어대는 대단한 유세를 말없이 들어줘야 한다. 새벽에도 울고 한낮에도 울어댄다. 이웃 닭이 울면 옆집 닭도 따라서 울어준다. 갑자기 소리가 멈추기도 한다. 신기한 닭들의 삶에도 질서가 있나 보다. 언제나 정겹고 추억의 소리지만, 가끔 찾아오는 아이들은 또 다른 소리인가 보다. 시골집 닭이 우는 똑같은 소리가 시끄럽단다. 삶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니 어쩔 수 없나 보다.
오래전, 가을걷이가 끝나면 어머니는 늘 시루떡을 하셨다. 커다란 시루에 하얀 쌀과 붉은팥이 섞인 떡을 하시는 이유는 한 해 농사의 고마움과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담아 대청마루에 놓고 정성껏 절을 한다. 동네 이웃에게 떡을 나누어 주는 일이 아직 남았다. 허름한 울타리 너머로 떡이 오가고, 먼길엔 언제나 심부름을 해야 했다. 몇 조각의 떡에는 그간의 고마움에 대한 어머님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한 조각이라도 나누어 먹는 시골인심을 한동안 잊고 살아왔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었다. 하지만 골짜기에 자리 잡은 터전에서 소중한 오래 전의 추억을 맛보고 있다.
낯선 동네에 자리를 잡고 제일 걱정거리는 현지인들과의 어울림이었다. 고민 중에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시골로 이사를 하고 만난 이웃들은 달랐다. 하나씩 알려주고 이해해주는 이웃들이었다. 자그마한 것도 나누어 먹으려 했다. 웬만한 것은 서로를 이해해 주려했고, 가능하면 어려운 일을 도와 주려했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도우며 살아간다. 이웃들보다 조금 어른인 아내는 어느덧 동네 언니가 되었다. 오늘도 동네 언니는 운동을 하는 중이다. 힘차게 걷는 언니를 불러 풋고추와 꼬부라진 가지를 건네준다. 정이 가득 담긴 채소 한 개엔 이웃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네 언니는 오늘도 바쁜 중에 또, 이웃들이 불러댄다. 무엇인가 건네줄 것이 있어선가 보다. 이래저래 동네 언니는 바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