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길에 만난 풍경, 가을 풍경)
새벽부터 일찍 눈이 떠진 이유는 앞산 때문이다. 서둘러 찾아온 바람에 참나무 잎새가 몸을 비비는 소리가 정다워서다. 스쳐가는 바람인지 알았는데 전혀 다른 바람이다. 가을날의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저랬었지. 오래전 뒤뜰 감나무에서 나던 소리였다. 그 소리였구나! 서둘러 뜰에 나섰더니 아내는 벌써 텃밭을 서성인다. 잔디밭에서 놀아야 할 메뚜기가 텃밭을 그냥 두지 않아서다. 배추 곳곳에 구멍을 내며 파 먹는 메뚜기다. 서둘러 잔디밭으로 이주시켜야 한다. 뜰로 내려서며 잠시 고민이다. 알밤을 주으러 갈까, 자전거를 타러 갈까? 앞산엔 가을의 보물, 알밤이 툭툭 떨어지기 때문이다. 잠시 머뭇거리다 얼른 자전거를 택했다.
다시 온 가을을 만나러 가고 싶어서다. 어제도 친구들과 어울려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친구들이 있어 즐기는 늙어가는 청춘들의 호사다. 언제나 즐거운 한판 놀음이다. 어젠,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 타이어를 교체했다. 자전거 샵에서 할 일을 친구 덕에 해결한 것이다. 기만원을 절약해 막걸리 몇 잔으로 퉁치고 말았다. 자전거도 새신을 신었으니 기분이 좋다. 얼른 안장에 올라 내려가는 골짜기는 벌써 가을이다. 가을배추가 몸집을 불려 놓았고, 논두렁엔 벼이삭이 머리를 깊이 숙였다. 골짜기 비탈밭엔 망초대가 썰렁하다. 허전한 비탈밭을 감싸주던 망초대다. 벌써 가을을 알아 채린 모양이다.
봄철 여기저기에 돋아나던 망초대, 땅을 망친다던 망초대가 비탈밭을 가득 메웠었다. 허전한 자갈밭을 푸름으로 감싸 안아 늘 고마워했던 망초대다. 푸름이 익어 하얀 꽃을 피웠고, 멀찍이서 보면 하얀 메밀꽃과 같이 아름답던 망초대가 수명을 다했나 보다. 삶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화려함을 뒤로하고 선 망초대가 가을 상념을 불러 준다. 땅을 망친다고 구박받던 망초대가 화려하게 꽃을 피우더니 어느새 가을을 맞이한 것이다. 한때 푸름을 과시하다 화려한 꽃을 피우고, 슬그머니 허해진 몸을 갖게 된 것이다. 누렇게 잎은 익었고 하얀 꽃은 시들해진 모습이다. 화려했던 지난날을 잊고 깊은 가을 속으로 얼른 젖어들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얼른 페달을 밟아 오르는 언덕이 힘에 겹다.
지난해에는 끄떡없이 오르내리던 언덕길이다. 힘겹게 오른 언덕에서 내려보는 들판에도 가을은 가득 내려왔다. 골골이 살만한 곳은 인간들이 다 차지했다. 골짜기 곳곳엔 누런 색으로 가을을 채색했다. 한해를 또 보내야 하는 야속한 가을이 이렇게도 아름답구나! 한해의 끝을 화려하게 장식해주려는가 보다. 비탈길을 내려가는 기분이 상쾌하다. 곳곳엔 익은 밤톨이 나 뒹군다. 오래전엔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밤 한 톨이 귀해 찾아 나섰던 시절이었다. 좋은 세상인지 어쩐지 알 수 없지만 왠지 씁쓸함은 남아 있는 골짜기다. 논길 옆에는 귀한 수수가 벌써 익어가고 있다. 탐스런 모습으로 익어가는 수수를 볼 수 있다니. 자전거에 오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알알이 영근 수수를 밥솥에 익혀 한 알씩 까먹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을 속에도 아픔은 있다. 푸른 하늘에 불그스레 익어가는 어떤 수수는 검은 그물망을 쓰고도 있다. 얼마나 답답할까? 눈을 가리고 가을을 맞이하는 수수다. 푸른 가을 하늘 속에 눈과 귀를 막은 수수다. 새들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농부의 수고로움이다.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고 익어가는 가을 곡식들, 거기엔 같이 먹자는 산 식구들이 많다. 곳곳에 그물망으로 고라니를 막아야 했고, 철조망이 산돼지를 몰아내야 했다. 발을 디딜 틈이 없는 산속에 살아가는 산 식구들이 익는 가을을 그냥 두질 않아서다. 새들이 찾아오고, 고라니가 거닐며 산돼지가 습격하는 골짜기다. 농부들의 아픔을 전해주는 처절한 모습이 곳곳에 숨어 있다. 멀리서 화려한 꽃이 보인다. 가을을 축복하는 화려함에 넋을 잃고 자전거를 풀숲에 뉘인다.
긴 제방을 가득 덮은 돼지감자가 노란 꽃을 피운 것이다. 해바라기 꽃과 비슷한 돼지감자 꽃이다. 지난해에도 화려함을 보여주었는데 올가을에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저렇게 아름다운 돼지감자를 왜 뚱딴지라 했다던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을은 아름답지만 한편으로 생각이 많아진다. 화려한 꽃을 보는 사이 벼이삭도 고개를 숙였다. 익을 대로 익어가는 벼이삭이 몸을 가눌 길이 없었나 보다. 농부의 땀이 가득 배인 벼이삭이 실하게 늘어져 있다. 누런 들판에 산바람이 지나간다. 고요함 속에 일어나는 파도가 가을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일렁이는 들판의 파도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서둘러 달려가는 자전거길엔 가을이 빛이 가득히 내려앉았다. 한참을 발놀림 속에 찾아온 허기를 메워야 했다.
서둘러 넣어 온 사과 한 덩이가 있고, 빵이 있으니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길가의 정자가 한가로이 앉아 있다. 자리를 펴고 앉은 정자 앞으로 자전거 한대가 지나간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운동을 하는 모양이다. 그럴듯한 자세로 순식간에 지나가서 인사도 못했다. 못내 아쉬움을 뒤로하고 차려진 아침 밥상에 바람이 찾아왔다. 야, 이런 가을 밥상을 또 받아 보는구나! 가을이 준 사과를 한입 베어 먹어 본다. 가을이 가득 담겨 입안으로 툭 튀어나오는 맛, 오랜만에 보는 맛이다. 어디서 이런 맛을 볼 수 있을까? 길가에는 가을의 여신,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붉음과 분홍 그리고 하양이 섞인 코스모스가 몸을 주체하지 못한다.
누가 이런 꽃길을 만들어 놓았을까? 시골 동네 이장님의 수고가 아닐까? 아니면 부녀 회장님의 부지런함인가? 한두 사람의 명석함은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국회의원 그리고 나라님도 그럴 수는 없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내고 바라보는 동네로 들어가는 길은 행복한 꽃길이다. 바람이 찾아와 하늘대는 코스모스 길에 넋을 놓고 있다. 가을 사과 한 개에 빵 한 조각, 거기에 가을꽃이 가득 들어왔다. 한동안의 노동 속에 찾아온 노곤함은 몸을 눕게 한다. 한가한 정자에 몸을 뉘인 아침이 행복하기만 하다. 한 숨 잠을 잤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자칫 잠이 들면 며칠이고 잠들 것 같아 정신을 차려본다. 작은 냇가에는 오리가족이 나들이를 나왔다. 촐랑대며 따라다니는 새끼들이 앙증맞기도 하다. 사방을 경계하며 새끼를 돌보는 어미는 연신 두리번거린다. 눈치가 보이는 듯해 발길을 돌려 언덕을 오르는 자전거 길이 힘 겹다. 지나는 동네 사람이 파이팅을 외쳐줌에 힘을 내본다.
힘겹게 올라 내려가는 길에 긴 숨을 쉬어 본다. 멀리엔 커다란 커피집에 들어서 있다. 순식간에 동네 모습을 바꾼 큰 커피숍이다. 세월이 변하고 삶의 모습도 많이 변해간다. 농사를 짓던 시골 동네 곳곳에 들어서 커피집이다. 한낮에는 차를 세울 곳이 없을 정도다. 너나없이 커피잔을 들고 활보를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늙어가는 청춘이 따라가기 힘겨운 세상이다. 우뚝 서 있는 자동 기계가 숨을 멎게 한다. 뒷줄에 늘어선 젊은이들의 눈치가 보인다. 서둘러도 할 수 없어 기어이 신세를 지거나, 자리를 양보하고 만다. 서둘러 배우고 눈치껏 살아가야 하는 세월이 되었다. 서둘러 페달을 밟는 들판은 시원함이 남아 있다.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을 속으로 들어선 자전거 길, 멀리 날아가는 뜸부기 한쌍이 부럽기도 하다. 훨훨 날아가는 뜸부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낯선 기계 앞에 줄 서지 않아도 되고, 누구 눈치도 살피지 않고 살지 않을까? 서둘러 돌아가는 모퉁이에도 영어로 길게 써 놓은 커피집이다. 한참을 읽어야 눈에 들어오는 꼬부랑글씨, 나보다 더 노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실까? 모든 것이 낯선 글씨와 기계들의 놀음 아닌가? 몇 자로 줄여 쓰는 낱말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살 수도 없는 세상이다. 언뜻 자전거에 올라 날아가는 뜸부기를 보고 하는 생각들이다.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올라서는 언덕길은 또 땀을 필요로 한다. 마지막으로 써 보는 근육의 힘은 아직은 남아 있나 보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가 가을을 알려주니, 나의 가을은 어디쯤 와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아침나절 자전거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