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털어내고 가을을 앉혀야 했다.

(여름 끝자락의 아침, 뜰앞 공작단풍의 가을)

by 바람마냥

서재 창문을 열자 오늘도 어김없이 안개가 가득하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골짜기다. 하얀 안개가 모든 것을 하얗게 덮고 말았다. 앞산 밤나무는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툭'하는 소리와 함께 알밤을 아직도 쏟아내고 있다. 신비함에 싸인 앞산의 모습이 고맙기도 하지만 미안하기도 하다. 사시사철 받기만 하면서 뻔뻔스럽게 살고 있어서다. 아내는 벌써 일어나 운동을 하고 있다. 안갯속에 마스크를 쓰고 열심히 마을길을 오고 간다. 얼른 옷을 차려 입고 도랑 위 작은 다리를 건넜다. 툭하고 떨어진 알밤을 찾아 나선 것이다. 곳곳에 수북한 알밤이라 산짐승에겐 덜 미안하기도 하다.


숲 속으로 숨어들자 곳곳에 거미들의 수고가 보인다. 밤새 만든 거미줄이 앞길을 막고 선다. 얼른 뒷걸음으로 한 발자국 후퇴하여 우회로를 택했다. 거미줄에 내린 하얀 이슬이 예술이다. 야, 자연스레 만들어진 거미줄 위에 내려진 이슬방울, 떨어질까 말까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길게 늘어진 거미줄이 힘겹게 보이는 골짜기, 아직도 툭하고 알밤이 떨어진다. 서서히 밤나무 밑을 기웃거리자 한주머니가 얼른 채워진다. 뿌듯한 마음에 돌아서려는 순간, 깜작 놀라 올려다보니 귀한 보물이 나타났다. 야, 참 오랜만에 보는 선물이었다. 머루와 다래를 들어봤어도 본적이 꽤 오래된 으름이었다. 으름을 공중에서 만난 것이다. 앞산에 으름이 있을 줄이야!

IMG_2675[1].JPG 앞산에서 만난 으름도 가을이다.

머루는 머루포도라는 것이 있어 자주 들었다. 머루하면 또 다래를 연상하게 했었다. 오래전,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다. 머루와 다래 그리고 으름을 찾아 산을 헤맸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른들을 따라 먼 산을 오가며 먹어봤던 그 으름이 공중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덩굴로 되어 나무를 잘 타고 오르는 으름, 열매는 달지만 씨가 많이 들어 있다. 맛이 바나나와 비슷하여 '코리안 바나나'라고도 부르는 으름이다. 야트막한 가을 앞산은 밤이 있고, 으름이 있는 소중한 골짜기 자산이다. 봄철 나물을 주는 것도 모자라 한여름엔 진한 녹음을 전해준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면 가을날의 선물이 가득한 앞산에 으름도 숨어 있었다. 으름이 입을 딱 벌리고 가을을 노래한다. 깊은 산중에서 볼 수 있었으니, 여기도 깊은 산중인가 보다. 하긴 고라니가 노닐고, 산돼지도 꿀꿀대니 깊은 산중이 맞기도 한 골짜기다.


얼른 나무다리를 건너 되돌아온 잔디밭엔 가을이 조심스레 내려와 있었다. 잔디가 벌써 누릇누릇해지고 여름을 빛내주던 백일홍은 어느새 까만 씨를 달고 있다. 빨강으로 손녀의 화단을 화려하게 장식해준 백일홍이다. 백일 동안 피어 있다는 백일홍이 벌써 100일을 빛내주었나 보다. 화려했던 계절은 가고 가을의 초입에 선 백일홍이다. 가을을 맞이한 백일홍, 화려함보다는 지는 가을이 더 아쉬운듯한 모습이 못내 서럽게도 보인다. 화려함으로 치장했던 붉음은 어느새 어두움으로 변하고 말았다. 내년을 기약하는 검은 씨를 만들고 있는 백일홍이다. 화려함이 아쉬운지 아내는 내년을 기약하며 씨를 받는다. 서둘러 찾아온 가을은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뒤뜰을 덮은 호박 덩굴로 눈이 간다. 주황색 꽃이 아름다워서다.

IMG_2665[1].JPG 가을 호박이 열렸다.

오르고 싶은 곳엔 마음대로 오르내리던 호박에도 가을이 왔다. 밝은 꽃을 피워 대지를 밝게 빛내주던 호박이다. 푸른 호박을 설겅설겅 썰어 놓은 부침개가 여름 입맛을 돋워 주었었다. 푸른 호박이 있고 매콤한 청양고추가 거들어 주는 맛을 참을 수가 없었다. 촉촉하게 여름 비 내리는 날, 들마루에 앉아 부침개에 텁텁한 막걸리 한잔을 잊을 수가 있다던가? 널따란 호박잎은 간데없고 추워지는 날씨에 서두르듯 작은 잎들이 마지막 푸름을 과시하고 있다. 자잘한 호박꽃이 방긋 웃는 모습이 반갑기만 하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작은 호박이나 어서 영글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마지막 부침개가 생각 나서다. 가을이 더 깊어지면 구수한 부침개와 막걸리 상으로 이웃들을 불러 모아야겠다. 꽃들이 배시시 웃던 화단의 풍경도 달라졌다.


환하게 피었던 꽃범의 꼬리가 슬며시 꼬리를 감추더니 코스모스가 신이 났다. 껑충한 키를 자랑하며 푸른 하늘을 향이 웃고 있다. 맑은 이슬이 내린 빨강 코스모스의 위용은 가을임을 알려준다. 코스모스에 앉은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아스라이 날개를 떨고 있다. 곳곳에 꽃을 피우고 가을을 알려주는 꽃 중엔 구절초가 있다. 하양에 붉음이 섞인 소박한 꽃을 피웠다. 아직도 피워야 할 꽃이 많은 구절초가 힘을 내고 있다. 지난해에 심은 산국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나 보다. 꽃을 피워 노랑빛을 뿜어 내는 모양이 신비스러운 산국이었다. 앞산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푸름을 넘은 붉음이 서서히 흘러내리고 있다. 언제나 푸른 소나무는 건재하지만, 밤나무는 벌써 색을 바꾸었다. 줄 것을 다 준 듯한 밤나무 잎에도 가을이 앉았고, 봄철 화려했던 벚나무도 붉음이 서서히 젖어들고 있다. 여기에 도랑물도 가을빛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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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려오는 도랑물 소리에도 가을이 녹아 있다. 언제나 씩씩함을 자랑하던 도랑물 소리가 옹알거린다. 옹알거림 속엔 어쩐지 허전함이 서려있다. 가끔 울어대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어우러지는 소리다. 왜 그렇게 들렸을까? 마음에도 이미 가을이 내려왔는가 보다. 가을 싱그러움이 찾은 아침이 새롭고, 행복한 아침을 맞이함이 한없이 고맙다. 하얀 안개가 올라앉은 산을 어디서 아침마다 만날 수 있을까? 알밤이 무심한 듯이 툭 떨어지는 산속에 또 살아 볼 수 있을까? 앞산에서 으름을 만날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음에 감사함 뿐이다. 자연이 주는 모든 것에 감사함은 가을날의 호사이기도 하다. 가슴에도 가을이 왔음을 알게 하는 안갯속 골짜기다. 작은 텃밭에도 가을이 스며들었다.


텃밭에는 가을 초입에 심은 배추와 가을상추가 자라고 있다. 푸름을 자랑하는 쑥갓이 있고 케일이 싱싱한 모습으로 가득 메우고 있는 텃밭이다. 봄 상추와 가을 상추는 모습부터 달랐다. 봄에 심어 놓은 상추는 하루가 다르게 푸름을 과시했지만, 서늘함 속에 자라는 가을 상추는 조금은 머뭇거린다. 성장도 그러했고 푸르름도 그러하다. 봄 상추에 비해 잎이 모습이 달랐지만, 배추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서늘함이 찾아온 가을 날씨에 푸름이 성큼성큼 물들어 가고 있다. 봄배추에 비해 훨씬 싱싱함에 활기가 보인다. 모든 것이 계절 속에 살아야 함을 알게 한다. 안개가 가득 내린 앞산엔 또 대단한 휘황찬란함이 있다. 거미들의 지난밤의 작업이 이슬을 만난 것이다. 거미와 자연이 만들어 낸 작품, 눈을 뗄 수 없는 예술품이 푸른 하늘을 장식하고 있다.

IMG_2668[1].JPG 가을 상추가 아직도 왕성하다.

가을이 점점 물들어 가는 골짜기, 서둘러 가을을 맞이해야겠다. 잔디밭을 정리하고 데크도 깨끗하게 색을 입히기로 했다. 봄철에 했어야 하는 일을 이제야 서두르고 있다. 새로움을 실어 골짜기의 푸름을 선사하기로 했다. 연한 녹색으로 색을 입히고 내년의 봄을 약속하기로 했다. 붉음의 꽃들을 초록으로 맞이하면 어떨까? 데크를 녹색으로 장식해 배경색을 녹색으로 만들고 싶은 이유다. 붉음이 드러나도록 초록이 뒤를 바쳐주기 위함이다. 서둘러 가을을 준비했다. 아내와 서둘러 데크에 색을 입히고, 서둘러 잔디밭의 잡초도 뽑아주는 하루였다. 가을이 서서히 찾아오는 전원에 삶도 외면할 수 없어서다. 감나무도 붉은빛이고, 병꽃나무도 푸름에 붉음이 서서히 물들고 있다. 하늘이 한없이 높은 하루, 모든 것이 가을로 가는 길에 서둘러 가을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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