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더 흐르면 마냥 그리워질 고요함이다.

(골짜기의 풍경, 뜰앞의 풍경)

by 바람마냥

추석 연휴가 끝나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일터로 돌아갔고, 태풍의 흔적도 천천히 자리를 잡아가는 오후다. 아무도 오고 가는 사람이 없는 골짜기는 고요하기만 하다. 하늘에만 오고 가는 새들이 있고, 땅에는 가끔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만 보인다. 새들도 느긋하게 휘젓는 날갯짓이 여느 날과 전혀 다르다. 아무 바쁜 일도 없는 듯이 되는대로 날개를 젓고 있다. 고요한 골짜기를 깨우는 것은 가끔 오가는 택배차량뿐이다. 휙 하고 지나가는 차량은 순식간에 없어진다. 한가함 속에 만난 바쁨이다.


추석에 왔던 아이들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며칠 동안 해먹이고 치다꺼리하던 아내도 한 숨을 쉰다. 올 때는 한없이 좋은 아이들이지만 며칠은 버거운 눈치다. 어미가 자식들을 싫다 할 수 있을까? 오면 올수록 좋아서 하나라도 더 먹이려는 부모의 마음이다. 하나의 먹거리라도 더 주고 싶어 텃밭에서 가지를 몇 개 따고, 풋고추도 비닐봉지에 찔러 준다. 앞산에서 주운 알밤을 주려하지만 손사래를 친다. 할 수 없이 두어 주먹 억지로 넣어주곤 늙은 사람끼리 먹기로 했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 아쉬움도 있다. 온갖 먹거리를 싸 주었지만 텃밭에 푸른 상추라도 몇 잎 따 줄걸 그랬다는 생각이다. 정신머리하고는? 할 수 없이 늙어가는 몸뚱이를 원망하고 만다.

IMG_E8322.JPG 풍성한 텃밭은 희망이다.

상추 몇 잎을 값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아이들이 또 귀찮아하는 것은 아닌가? 늘 주면서도 뒤로는 뜨끔한 생각을 하는 부모다. 몇 푼 주고 사 먹으면 편한데 괜한 짓을 했다 하면 어떡할까? 늘 주면서도 망설이는 부모의 마음이다. 부침개도 싸주고 남은 과일도 넣어준다. 한 푼이라도 아껴서 잘 살아보라는 부모의 마음이다. 아이들이 올 때마다 망설이는 아이들과의 실랑이다. 다행인 것은 대부분은 받아들이는 아이들이다. 오히려 내가 고맙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끔 멀리 사시는 형님이 전화를 하신다. 시골에 거주하면서 상추도 심고 고추도 주시는 형님이다. 느닷없이 전화가 왔다. 상추가 잘 자랐으니 뜯어 가라는 전화다. 어떻게 할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부모님 대신하는 형님이시다. 매정하게 시간이 없다고 할걸. 언제나 그 말을 하지 못한다. 어렵게 길러 놓은 상추를 주고 싶어 하신 전화다. 전화를 야박하게 거절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상추 몇 잎을 따러 왕복 100km를 갔다 와야 한다. 상추를 따오려면 그냥 갈 수 없어 무엇이라도 들고 간다. 형님 얼굴이라도 본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는 시골길이다. 늘, 다음에는 적당한 핑계를 대야지 하면서 또 거절하지 못하는 동생이다. 아이들도 다 돌아갔고, 아내는 외출 중이다. 일주일이 두 번 난타를 배우러, 두 번은 탁구를 배우러 간다. 친구들과 어울려 산행도 하며 또, 함께 수채화를 배우러 다니는 아내다.

DSC04703.JPG 외로워도 삶이 있다.

할 일이 없어 집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는 생각이다. 우두커니 앉아 텔레비전이나 보면 어떻게 할까? 하지만 하는 일이 많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천만다행이다. 아내마저 외출하고 난 골짜기, 이웃들도 모두 출타 중이다. 나만이 홀로 남아 골짜기를 지킨다. 고요하다 못해 쓸쓸하기도 하다. 오늘따라 이웃 닭도 입을 다물었다. 마땅치 못한 일이 있는지 닭도 그리고 동네 지킴이도 조용하다. 어젠 하얀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더니 오늘은 검은 고양이가 마실을 왔다. 조용히 커피 한잔을 놓고 거실에 앉아 있다. 아무 생각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쓸쓸할 만큼 조용한 골짜기에 홀로 앉아 있는 것이 왜 이리 편할까?


가끔 시내에 볼 일이 있어 나간다. 아내 혼자 시골집을 지키고 있다. 아내 혼자 적적할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이유다. 혼자 집을 지키는 경우가 많이 있다. 지키는 것이 아니라 홀로 있는 것이다. 아내가 바빠서 자주 출타를 하기 때문이다. 혼자 집에 앉아 있는 날이면 가끔, 편안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아내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며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조용한 골짜기에 바람이 찾아왔다. 앞산에 녹음이 몸을 비비는 소리가 들린다. 나뭇잎이 몸을 비비는 소리가 이렇구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한가한 소리다. 한가한 소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 온 소리도 있다. 바로 앞에 있는 도랑물 소리다.

DSC04777.JPG 외나무 다리가 삶을 건너준다.

느닷없는 힌남노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집 뒤에 있는 언덕에 흙을 쏟아 냈다. 아내와 함께 며칠 동안 수해 복구를 했다. 불편함도 있었지만 도랑의 몸집을 불려 놓은 것은 너무 황송했다. 가느다란 소리가 굵직한 소리로 싱그러워졌다. 저녁이면 동네를 가득 메우는 소리다.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들어주는 물소리, 언제나 정겨워 도랑가를 서성인다. 도랑물에 들어가 발을 담그고 세수를 한다. 저녁이면 한동안 서성이는 곳이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시원함이다. 언제나 바쁘게 살아왔던 삶, 오늘처럼 한 박자 늦추며 살아야겠다. 아무 일없이 골짜기에 홀로 앉아 있는 오후가 한없이 편안하다. 편안한 오후, 비닐봉지를 들고 도랑을 건넜다.


도랑 위엔 나무로 된 가느다란 다리가 있다. 손녀는 건너기를 무서워하는 작은 다리다. 다리를 건너야 앞산으로 오를 수 있다. 밤의 계절이 돌아왔으니 앞산 방문을 하고 싶어서다. 혹시, 바람에 떨어진 알밤이 있을까 해서다. 지난해에는 많은 알밤을 주워 친구들에게 보내 주기도 했다. 곳곳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 골짜기 밤맛을 보고 가끔 이야기한다. 산밤이 그렇게 맛이 좋은지 몰랐다고. 밤나무 밑으로 숨어들자 곳곳에 알밤이 떨어져 있다. 바람에 떨어진 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가끔 주인 할머니만 방문할 뿐인데 올해는 발걸음이 뜸하다. 어쩐 일일까? 편치 안으신지,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하다. 순식간에 한 되가량을 주워왔다.

DSC04771.JPG 서재 앞산은 꿈속이다.

많이 먹지도 않는 밤을 왜 이리 욕심을 낼까? 그냥 떨어져 있기에 줍는 것이다. 아깝다는 생각에서다. 산짐승이 먹고도 남을 양의 밤이기에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 밤을 꺼내 한알 까서 입으로 넣는 맛, 고소함과 추억이 담긴 맛이다. 오래전에 주머니라고 생긴 곳엔 가득히 주워 담던 그 밤이다. 어머니가 언제나 좋아하시던 알밤이다. 온갖 추억과 시름이 담긴 알밤이다. 다행히도 밤나무가 있는 골짜기에 자리를 잡아 이런 행운을 누리는 오후다. 고요한 골짜기엔 나뭇잎이 부비는 소리에 도랑 물소리뿐이다. 고소한 알밤을 까서 입에 넣는 한가함만이 있는 골짜기다. 골짜기에 흔들리는 것이라곤 앞산의 녹음뿐이다. 어느새 산새들도 오간 데 없다.


한가하게 앉아 있는 거실, 커피잔을 벗어난 커피 향만이 가득하다. 이렇게 앉아 있어도 되는 것인가?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불안했던 삶이었다. 한참을 앉아 무심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눈을 감았다. 오늘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고 싶다. 추석이 지나고 가을이 자리 잡은 골짜기에 홀로 앉아 있다. 더 세월이 흘러가면 이 한적한 오후가 마냥 그리워질 것이다. 그땐, 한가함을 더 즐기지 못함이 못내 아쉬우리라. 한가하다 못해 쓸쓸함까지 가득한 골짜기의 삶을 한껏 즐겨보는 오후다.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골짜기의 삶은 이제야 세월의 무게를 알게 하는가 보다. 소중한 오후의 시간 속에서 만나는 한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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