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이한 뜨락, 화살나무의 가을)
가을꽃이 가득한 뜨락엔 오늘도 어김없이 안개가 찾아왔다. 골짜기의 삶이 그러하듯 조용한 아침이다. 서둘러 일층과 이층 창문을 모두 열었다. 골짜기의 상큼함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습기와의 암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다. 산골집 습기와의 전쟁에서 기어이 패장이면 고단한 삶을 피할 수 없다. 아침부터 문을 열어 환기시키는 이유다. 썰렁함을 뒤로하고 바람이 훅 들어왔다. 상쾌하고도 맛있는 공기다. 야, 도시에선 맛볼 수 없는 상큼한 이 맛, 언젠가 네팔 포카라의 사랑콧 전망에서 맛보던 그 맛이다. 고개를 들이밀고 마시는 공기는 달콤함까지 얹어 준다. 서둘러 뜰로 나섰다.
가을이 점점 깊어가는 골짜기엔 붉음이 한창이다. 너나없이 겨울을 준비하는 골짜기 식구들이다. 서서히 잎을 붉혀 찾아온 가을을 노래하다 흔쾌히 놓아주는 식구들이다. 서두름도, 미련도 없이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는 골짜기 식구들이다. 우선은 빨간 화살나무가 선두에 섰다. 초봄에 작은 싹을 드러냈다. 앙증맞은 새싹이 올라와 이슬을 먹고 햇살을 맞이했다. 가느다란 바람에도 바르르 떠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기어이 몸집을 불리더니 고단한 비바람을 이겨냈다. 새봄이 찾아오던 날, 오랜 기억을 찾아 아내와 함께 앞산엘 올랐다. 골짜기가 주는 고귀한 산나물,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홑잎 나물을 찾기 위해서다.
연한 초록으로 물든 새싹이 하얀 꽃 접시에 담겨있다. 고소한 참기름에 연한 간장으로 무쳐진 나물, 홑잎나물 위에 얹힌 것은 송골송골 깨소금이었다. 기름이 좔좔 흐르는 연한 푸름이 입맛을 돋워준다. 봄 향기가 가득한 홑잎나물에 봄이 가득 담겨있다. 야리야리하면서도 연초록이 주는 상큼함이다. 봄이 이래서 좋고도 설레는구나! 밥 한 숟가락에 홑잎나물 한 젓가락, 마냥 행복한 봄 밥상이다. 혀끝에 닿는 느낌이 아늑하고 고소했으며, 씹히는 식감이 부드러웠다. 어린 아들이 좋아하는 나물, 어머니가 초봄을 기다리는 이유였다. 어머니의 고단함 속에 뒷산에서 얻어지는 홑잎 나물이었다.
골짜기에 살게 되면서 오래 전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었다. 초봄에 아내와 앞산에 오르는 이유다. 한참의 고생 끝에 얻어 온 홑잎나물, 그것은 앞뜰에 있는 화살나무 순이었다. 화살나무인지 홑잎나물도 모르며 덤벙대는 골짜기 초보살이다. 다정한 이웃 덕에 화살나무를 알았고, 이것이 홑잎나물이었음도 알았다. 이웃집 울타리엔 화살나무가 굳건히 지키고 있다. 열심히 뜯어다 먹으라는 마음씨 좋은 이웃이다. 여름을 이겨낸 그 화살나무가 빨간색으로 옷을 해 입었다. 계절이 만들어 준 새빨간 색, 감히 다가설 수가 없는 빨강이다. 인간이 따라 할 수 없는 색깔에 발걸음이 멎었다. 어떻게 저런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신기함에 서성대는 곳에 피어난 하얀 구절초도 빼놓을 수 없는 가을꽃이다.
가을꽃이라 할 수 있는 순백의 하양 꽃이다. 고요한 달빛 아래 피어있는 하얀 구절초, 다가갈 수 없는 순수함이었다. 야트막한 산 허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가을 산에 눈이 하얗게 내렸다. 세종시 장군산 기슭에 자리 잡은 영평사 언덕의 모습이다. 고요함과 순수함을 함께 주는 절집이 구절초로 둘러싸여 있다. 주지스님의 수고가 만들어준 골짜기의 풍경이다. 곳곳에서 바람결에 흔들이는 하얀 구절초가 있고, 고즈넉한 절집이 어우러진다. 야,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한 사람의 노고가 수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다. 달이 뜨는 시월의 야밤에 찾아가는 절집 풍경이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절집 풍경이 마냥 그리운 아침이다.
가을의 알게 해주는 하얀 구절초가 마당 끝에도 피었다. 자연이 주는 순수함을 여기서 맛보는구나! 지난해 온 정성을 들여 구절초를 심었다. 마당 끝에 자리 잡고 가득히 번식한 구절초가 아직은 더 기다리란다. 서두르지 말고 듬직한 참아냄이 필요한 꽃인가 보다. 시골집 주변을 가득 필 줄 았았는데, 정성이 부족했는지 내년으로 미루어야 겠다. 아직은 기다림이 필요한 구절초지만 그중에도 곳곳에 꽃을 피워줌이 고맙기만 하다. 가끔 찾아오는 달빛과 함께 흐느끼는 하얀 꽃이 숨을 멎게 한다. 초가지붕 위에 하얀 박꽃이 하얀 달을 만났다. 오래전 초가지붕의 추억이다. 하얀 구절초가 피어 있는 고요한 집, 이 보다 좋은 가을 구경이 또 있다던가? 어느 곳으로 꽃을 찾아 떠난다던가?
잔디밭 가장자리 푸르른 소나무도 가을을 준비했다. 언제나 푸름을 자랑하던 소나무, 아래쪽으론 노란 잎으로 가을을 치장했다. 언제나 독야청청하리라던 소나무가 계절을 감지했나 보다. 푸르디푸른 잎 밑으로 노랑과 주황이 적당히 섞인 색을 둘렀다. 자연의 빛이 잘 어울리는 색깔이다. 푸름 밑에 자리한 색, 삶의 세월을 잘 그려낸 신비한 수채화다. 검은 머리로 한 세월을 담아낸 삶, 거기에 희끗희끗한 머리 칼이 없으면 얼마나 야박하겠는가? 적당한 흰머리는 고단하고도 고집스러운 세월을 조금 덜어준다. 야, 저렇게도 잘 어울리는구나! 가끔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 어울림을 소나무에서 만났다. 곳곳에 적당히 섞인 푸름과 주황빛이 신기함을 넘어 신선한 어울림을 주는 풍경이다. 마당 끝 붉음은 꽃 산딸나무가 화려하게 장식했다.
양쪽의 잔디밭엔 두 그루의 꽃 산딸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껑충한 키에 적당한 가지를 얹고 있는 나무다. 언제나 적당한 푸름에 하얀 꽃을 피워주던 나무다. 가을이 오면서 하양이 화려한 변신을 했다. 어느 순간에 붉음으로 치장을 했다. 깜짝 놀랄 붉음의 빛이다. 화살나무의 붉음이 옮겨 붙은 듯 하지만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붉음의 불이다. 잔디밭을 화려하게 장식한 붉음의 잔치 속에 뒤 언덕 벚나무도 한몫을 한다. 기다란 가지마다 가을 붉음엔 지쳤는지 주황빛이 열렸다. 가지마다 주체하지 못하는 가을빛이 붉음에 어울림을 준다. 어느새 찾아온 가을을 노래하는 계절 빛이 곳곳에 넘쳐흐르는 골짜기다.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린 계절의 빛은 하양에 붉음이 섞이고, 거기에 주황이 적당히 섞인 빛이다. 적당한 누런 빛 잔디가 합세했고 맑게 빛나는 햇살이 덤으로 넘어왔다. 앞산 소나무의 적당한 빛의 조화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소나무의 어울림이다. 적당한 크기로 들려오는 이웃집 닭 울음이 도랑물 소리를 덮었다. 학교 가라 아이를 부르는 이웃의 목소리가 더해진 골짜기엔 늦가을 빛이 역력하다. 가을이 계절의 모퉁이를 돌아가려는 하자 겨울은 냉큼 산을 넘으려 엿보고 있다. 아직은 버틸만하다는 가을과 어서 가라는 겨울이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계절은 이쪽과 저곳을 저울질하고 있다. 살며시 산을 넘은 햇살이 한껏 웃으며 늦은 가을을 덮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