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과 햇살을 바꾸고 말았다.

(녹음을 버리고 햇살을 맞았다, 앞 산의 녹음)

by 바람마냥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한 앞산에 기계음이 요란하다. 뭔 소리일까? 깜짝 놀라 귀를 기울여도 역시 앞산에서 들리는 소리다. 얼른 신발을 챙겨 신고 앞산으로 올랐다. 사시사철 녹음을 주며 그리움을 안겨주던 앞산이다. 먼 산 말랭이에 대여섯 사람이 보인다. 거기서 나는 소리, 기계톱이 돌아가는 소리다. 웅장한 소리를 내는 기계를 든 대여섯 명의 사람들, 위험하니 가까이 오지 말란다. 기어코 올 것이 오고 말았구나! 지난해, 내년이면 앞산 벌목을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나무를 베어야 하는데 기간이 남아 있어 내년이나 가능하다 했다. 골짜기의 풍경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앞산, 언제나 그리움과 아름다움이 가득하던 앞산이었다. 어떻게 할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멀리서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주인이 있고 무상으로 즐기기만 했던 객이기에 아쉬움을 떨쳐버려야만 했다. 오늘부터 벌목작업이 시작되고 대략 일주일 정도 걸린단다. 나는 어떻게 하라고? 산에 사는 식구들은 어디로 가란 말인가? 나의 산도 아니고, 내가 사는 집의 앞산일 뿐인데 받아들여야지. 정신을 차리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나무를 한 그루 심고 기르려면 수년이 걸린다. 어느 곳에 있어도 불평 한마디 없는 나무, 오는 빗물과 햇살을 받으며 잘도 자란다. 봄부터 연초록 잎으로 삶의 희망을 주더니 거센 비바람도 버티는 나무였다.

IMG_2819[1].JPG 힘없이 쓰러진 나무들이 누워있다.

연초록을 스스로 검푸르게 갈아입고 느닷없이 밀려오는 여름 비를 막아섰다. 몰아치는 비바람도 마다하지 않았고 기어이 붉음으로 가을을 노래했다. 여러 산 식구들을 길러냈고 갖가지 나물을 품었었다. 앞산을 지키던 위대한 나무들이 없어진다니. 아쉬움이 가득한 아침이다. 앞산을 바라보는 아내도 서운한 표정이다. 봄부터 나물을 길러내고 가을이면 갖가지 열매를 수북이 안겨주던 보물창고였다. 어엿한 소나무가 산을 지키고, 수많은 참나무와 밤나무가 손을 흔들었다. 거기에 길쭉한 젓나무가 열매를 달고 다람쥐와 청설모를 살지게 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산새들이었고, 한여름 매미들은 어찌한단 말인가?


그렇게도 많은 산 식구들이 이사를 해야 한다. 가끔씩 어설픈 몸짓으로 뛰어놀던 고라니는 어쩔 것인가? 떼 지어 날아다니던 산까치가 걱정이고 여름 뻐꾸기의 날갯짓은 볼 수 있으려나? 많은 생각이 오가는 가을날의 아침, 서서히 산의 속살이 보이기 시작한다. 굉음을 내며 오가는 사람들과 이리저리 나무를 옮기는 장비가 산 중턱을 오간다. 기계음 소리와 함께 나무가 쓰러지며 내는 소리는 울부짖음이었다. 수년간을 자리 잡고 살아온 터전에서 생을 다해야 하는 나무다. 파릇한 잎으로 살랑거리던 낙엽송이 주를 이루고, 곳곳엔 소나무도 있다. 거기에 밤나무가 봄부터 가을까지 꽃과 열매를 주었다. 다시는 볼 수 없도록 앞산 녹음이 없어진단다.

IMG_2826[1].JPG 저녁 무렵 맑은 햇살이 찾아왔다.

얼른 차를 몰고 시내로 향했다. 그도 저도 보기 민망해서다. 얼마 전의 이야기다. 전원마을에 사는 지인이 한숨을 짓는다. 뭔 일이냐는 말에, 살고 있는 주택 뒷산 벌목을 한단다. 벌목을 하니 굉음이 대단하리라는 생각이었지만 이야기가 달랐다. 뒷산을 벌목하고 태양광을 설치한다는 소문이란다. 고요한 전원마을에 뚱딴지같은 태양광이 들어온다니.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고민이란다. 아침에 산에 올라 얼른 알아본 이유였다. 다행히 수종갱신을 하기 위한 벌목이라니 마음이 놓였다. 나무도 일정한 기간이 되면 수명을 다하기에 벌목을 할 수밖에 없단다. 수목 갱신을 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란다. 시내에서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자 굉음소리는 잦아들었다. 오늘은 일을 마친 모양이다.


산의 속살이 드러난 앞 산, 한쪽에는 나무들이 남아있다. 머리를 깎다 만 어린아이 머리 같다. 앞이 훤하게 보이니 시원하다는 생각과 함께 할 말이 없다. 앞산을 바라보는 중에 이웃을 만났다. 역시 서운한 모양이지만, 겉으로는 시원해 좋다고 한다. 역시 마음이야 다를 수 있겠는가? 나무는 없지만 수종을 바꾸어 자라면 될 것이고, 조금만 눈을 돌리면 또 산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몇 년의 기다림이 필요할 뿐이다. 자연의 위대함을 믿고 또 기다려야 한다. 언제나 안개를 주고, 녹음을 안겨주던 앞산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 날이 밝았고, 다시 굉음이 시작되었다.

IMG_2664[1].JPG 아직 남아 있는 아름다운 앞산

어제 왔던 사람들이 인사를 한다. 젊은이들이 아닌 노인네들이다. 서늘한 안갯속에서 일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따스한 커피 한잔을 준비했다. 고마워하며 벌목을 하면 취나물이 잘 자란다는 위안이다. 내년에는 취나물이 가득할 테니 두고 보란다. 취나물이 나고 고사리가 잘 자란단다. 안개가 가득한 산이 필요하고, 나무가 설렁거리는 소리가 그리운 산이다. 뻐꾸기 후드득 나는 소리, 여름 뻐꾸기가 하늘을 나는 모습이 그리운 앞산이다. 서서히 하루가 지나며 벌목이 끝을 향해 간다. 산 아래부터 위까지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수종갱신을 위해 작은 나무까지 깨끗하게 정리한다. 지루한 하루가 그렇게 지나고 있다.


서서히 해가 넘어가는 저녁나절, 맑은 햇살이 산 말랭이에 찾아왔다. 밝은 햇살이 가득한 앞산이다. 가을 햇살이 저렇게도 맑을 수가 있구나! 앞 산 언덕에 비추는 햇살이 아름답다. 짙은 녹음 위에 햇살이 내려 초록과 어울리는 아름다움이 가득했던 골짜기였다. 아름다운 햇살을 이렇게도 누릴 수 있겠구나! 지는 해를 바라보며 자그마한 위안을 해보는 햇살이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살을 보면서 같이했던 녹음을 보내는 서운함을 대신한다. 이제 밝은 햇살이 아침부터 찾아올 테니 서운함을 멀리하고, 새로운 삶을 즐겨야 할 골짜기의 풍경이다. 아직도 잔가지를 정리하는 굉음 소리가 여전한 골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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