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는 산길에도 삶의 이야기가 많다.

(산을 오르는 길)

by 바람마냥

친구들과 함께 근처 산을 오른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하는 일이다.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지만 뭔 할 일이 그리 많은지 마음은 바쁘다. 가끔은 더 바쁘다며 마다하는 친구도 있지만, 같이 모여 점심이라도 나누는 시간이 소중한 세월이 되었다. 엄청나게 비싼 점심도 아니고 기천원이면 만족할만하니 부담도 없다. 한두 번 만나는 것도 아니라 서로 나누어 점심값을 대신한다. 대부분 식당이 점심으로 그럴듯한 메뉴를 선보임이 반갑기도 하고, 맛이 있기도 하다. 벌써 나와 있는 친구들이 보인다. 몇 명의 친구들이 모였지만 나름대로의 일들을 벌려놓아 마음이 서두른다.


한가하게 쉬자고 나간 산행이 바쁘기만 하다. 뭔 할 일이 그렇게도 많은가? 백수가 어쩌고 하더니, 모두가 그런 꼴이 되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 여기도 기웃거리고 저기도 기웃거림은 허투루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인가 보다. 프로야구선수는 야구만 하고, 축구 선수는 축구만 한다. 어설픈 아마추어이니다 보니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 기웃거리는 것이 많다 보니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프로가 아닌 삶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분주하다. 프로도 바쁘지만 아마추어도 바쁘게 살아가는 이유다. 아침부터 오르는 산엔 많은 사람이 북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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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좋아졌다. 코로나로 막혀있던 모임이 서서히 문을 열었다. 곳곳에서 즐거운 비명소리도 들린다. 유원지에 사람이 가득하고, 식당에도 오래전 모습이 돌아왔다. 문을 닫았던 스포츠 센터도 활기가 돈다.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마스크를 쓰고 눈치를 봐야 했다. 산행길에도 사람이 오면 얼른 마스크를 써야 했다. 서로가 미안하고 불안해서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앞에서 오고 있는 듯했다. 서로가 믿을 수 없어 민망했던 시절이다. 서서히 마스크를 들고 다니더니 이제는 자유로운 야외 활동이 되었다.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다. 산길이 북적북적해진 이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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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따라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곳곳에 운동기구도 들어서 있다. 오가는 사람이 드문 공터에도 있고, 가파른 언덕에 놓인 운동기구가 삶을 이야기해 준다. 높은 산언저리에도 버젓이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생각도 못했던 삶의 변화가 곳곳에서 보인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만 찾던 산길에 젊은이들도 많다. 건장한 팔뚝을 드러내고 산길을 뛰는 젊은이가 보인다.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침은 왜 그럴까? 젊어서부터 건강을 챙기는 모습에 오래 전의 나를 기억해 본다. 무엇을 하느라 그렇게도 바쁘게 살았을까? 건강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삶이 궁금해진다. 엄청난 노력으로 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억 소리가 나게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몇 백억짜리 건물이 있다 한다. 가끔 언론에서 보도되는 이야기다. 수백억짜리 건물이 몇 개란다. 한 달 수입이 몇천은 된다 하고, 주급이 몇 억이 된단다. 몇 백 원을 아끼려 상해 가는 몸도 돌보지 못한 삶이었다. 가끔 허탈해지는 마음에 눈을 돌려야 하는 삶이었다. 가끔은 가당치도 않은 생각을 한다. 왜 저런 기사를 올려 가슴을 찢어 놓고 말까? 몇십만 원이 소중한 삶에, 수백억을 아무 거리낌 없이 논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은 왜 일까? 안 보면 된다 하지만 어떻게 보이는 것을 외면할 수 있을까? 물론, 수많은 사람 중에 소수의 예이기도 하지만 한쪽으론 허탈한 마음이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얻어낸 것임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오르는 전기세를 탓하고, 기름값을 원망하는 서민의 입장은 허탈하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생각을 접고 언덕을 오르는 근육이 버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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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산 정상에 다다르자 평평한 헬기장이 나온다. 여기에 헬기는 몇 번이나 내렸을까? 널따란 평지 끝엔 때늦은 국화가 꽃을 피웠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밝게 핀 국화가 한없이 소중하다. 높은 산 위에서 살아나기 위해 꽃을 피우고 방긋 웃고 있다. 기척 없이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과는 상관없이 꽃을 피웠다. 누가 심어 놓았을까? 이 높은 곳에까지 꽃을 심어 놓아 지나는 길손이 기뻐하는 것을 알고 있을까? 감사한 마음으로 오르는 산길에도 사람들의 손길이 가득하다. 길게 깔아 놓은 야자매트, 걷기는 좋지만 대지는 어떻게 숨을 쉴까 하는 가당치 않은 생각이다. 걷기는 수월하지만 조금은 답답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고집일까? 그래도 야자매트를 밟고 오르는 언덕이 수월해 좋다. 정상에 오르자 여러 개의 의자가 놓였다. 정상이라 해야 기백 m에 달하는 나지막한 근교의 산이다. 의자에 빙 둘러앉자 오늘도 어김없이 커피가 배달된다.


산을 오르는 일행 중에 꼭, 커피를 챙겨 오는 고마움이 있기 때문이다. 커피가 이런 맛이 있구나! 어설픈 입맛에 조금은 멀리하는 믹스커피 맛이 원더풀이다. 야, 이런 맛에 커피를 마시는구나! 오래 전의 기억, 커피는 부자들의 사치품으로만 알고 살았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난 후에 마셔보던 커피였다. 곳곳에 들어선 커피집은 지나칠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 할 수 없이 커피 공부를 하고 입에 대기 시작한 커피다. 믹스커피에서 블랙커피로 입맛이 변해감에 간사한 입맛을 탓하기도 했었다. 개운한 맛을 주는 블랙커피와 달리 달큼함을 전해주는 믹스커피 맛에 피로함이 눈 녹듯이 사그라든다. 피곤한 몸도 당분의 필요를 느꼈는가 보다. 한없이 고마운 일행 덕에 노곤함은 온데간데없다. 정상에서 나무 숲 사이로 시내 전경이 보인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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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우뚝 솟은 시멘트 블록은 아늑한 녹음을 막고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시내에 불쑥 솟아 있는 구조물이 시야를 방해한다.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 조금은 아쉬운 전경이다. 저렇게 많은 집이 있는데 아직도 부족하단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곳곳에서 부동산 투기를 한다면서 난리가 났었다. 지금은 값이 수그러들어 그나마 다행이다 싶지만 서민들의 삶은 아직도 팍팍하다. 어떻게 정치를 하기에 서민들의 삶은 어렵기만 할까? 생각 없이 오르는 물가에 정신줄을 놓고 만다. 덩달아 오르는 공공요금은 당할 길이 없다. 보일러 기름이 지난해보다 두배도 더 올랐으니 한 겨울이 걱정인 것은 나만의 일일까? 누구나 물가를 걱정하는데, 여의도에선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저분한 이야기 같아 얼른 머리를 털고 정신을 차린다.


서서히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이 시원하다. 조금의 피곤함에 시원한 바람이 얹힌 발걸음이 가볍다. 언제나 찾아가는 식당이 여러 곳 있다. 이 맛도 보고, 저 맛도 보면서 삶의 이야기가 가득한 곳이다. 일행들과 어울려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 최고의 성찬이다. 이래서 막걸리를 마시는구나! 집에 있으면 누가 이런 밥을 주나? 밥 숟가락 놓으면 밖으로 나와야 좋아해. 그렇지, 얼른 일어서 나와야 좋아해. 흐르는 세월 속에 터득한 삶의 지혜인가 보다. 친구들의 넋두리다. 각자가 좋아하는 메뉴를 고르고 막걸리 잔이 오고 간다. 일주일을 보내며 만든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저리주저리 이어지는 삶의 메뉴에 한껏 웃어 보는 자리다. 아무 거리낌 없이 주고받는 말이다. 일주일을 버티며 살아오는 늙어가는 청춘들의 삶, 산을 오르며 만나고 나누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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