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담은 사랑으로 가을을 노래하다.

(연말 연주회를 마치고)

by 바람마냥

큰 일 났다, 눈을 뜨니 새벽 세시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늘 하던 걱정거리였다.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요즈음은 많이 달라졌다. 일찍 일어나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이제 덜 걱정하는 것은 머리맡에 늘 읽을 책이 있기 때문이다. 따스한 이부자리 속에서 책을 읽는 몸은 마냥 편안해 늘 읽을 책을 준비해 놓고 있다. 요즘 고은채 작가의 '연심'이란 소설을 읽고 있는데, 몸은 그렇게도 편안하다. 소설책을 열고 읽기 시작했으나 한참 읽는 중에 머릿속은 뒤죽박죽이다. 왜 이리도 생각이 많아 질까? 가끔은 머릿속을 원망하기도 한다. 어제저녁 연말 색소폰 연주회를 무사히 마쳤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일 년간 준비한 연말 색소폰 연주회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었고, 무난한 듯 마친 음악회가 떠올라서다. 모든 일이 끝나고 편한 마음으로 잠들고 싶었다. 아내가 준비한 술 몇 잔 하고 누웠지만 마음만은 편하지 않았나 보다. 복잡한 생각이 떠 올라 일어난 시간이 새벽 세시다. 새벽에 잠이 깨면 가끔은 그림을 그리다, 글을 쓰기도 하고 또 책을 읽기도 한다. 읽다가 덮어둔 소설을 열었으나 읽히지가 않는다. 억지로 몇 페이지를 넘기다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아직도 새벽 4시다. 창문 너머가 궁금해 문을 열자 써늘한 바람이 허락도 없이 훅 넘어왔다. 시원한 바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회원들과 함께 한, '아름다운 강산'

계절은 벌써 가을의 끝자락으로 치닫고 있나 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녹음으로 가득하던 앞산이다. 며칠 전부터 앞산에 있는 나무를 벌목해 민둥산이 되었다. 푸르른 녹음에 대한 아쉬움을 거두고 맑은 햇살을 즐기기로 한 앞산이 보인다. 녹음이 가득하던 앞산이 민둥산이 되어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가로등에 비추어진 민둥산에 하얀 서리가 내린 것이다. 겨울, 더위보단 추위를 즐기던 청춘이었다. 운동을 하며 추위를 즐기면 되는 세월이 갔나 보다. 늙어가는 청춘이 임계점에 도달했는지 움츠려지는 몸을 감출 수가 없다. 조금은 멀리하고 싶은 추위가 서서히 다가오는 계절이다. 어떻게 지낼까? 잠시 추위를 느껴보고 싶은 오기가 발동한다.


써늘함을 느껴보려 팔뚝을 들이밀었다. 며칠 전의 공기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산을 넘은 초겨울이 틈틈이 엿보고 있는 골짜기, 하얀 서리가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한참을 바라보는 새벽, 어제 마친 연주회가 아직도 아른거린다. 대체적으로 무난했지만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연주회였다. 일 년을 꾸준히 준비한 연주회가 아쉬워서다.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더 편안한 음악회가 되었을걸? 참고 견디며 연주회를 만들어야 했음이 아쉬움이다. 삶은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가 보다. 살아감도 그렇고, 세월을 이겨냄도 그러하다. 무던히도 참고 기다림보다 조급함이 앞섰으니 아직도 철부지다.

IMG_E2881[1].JPG 시름을 달래주는 가을에 만난 파도(수채화)

연말 연주회가 끝나면 또, 내년을 준비해야 한다. 찾아와 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연주회 장소를 물색해야 한다. 연주회장이 많지 않은 여건이기에 시에서 운영하는 예술의 전당에 기대를 해야 한다. 갖가지 서류를 준비해 신청하고 선정되길 기원해야 한다. 운 좋게 몇 년간 선정되어 무난하게 연주회를 마쳤다. 다른 장소를 선택하기엔 많은 시간과 경비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연주회장이 마련되면 일 년간 연습을 한다. '삶을 담은 사랑으로 가을을 노래하다', 올해의 연주회 주제다. 직장생활을 하는 회원들이 많기도 하고, 저마다의 사정이 있어 연습이 어렵기도 하다. 대부분의 회원이 열심히 임하고 있지만 버거운 삶의 현실, 가끔은 마음 아파하면서 일 년을 참고 또 기다려야 한다.


합주곡을 연습하면서 솔로, 듀엣 그리고 트리오가 결성되어야 하고, 팀끼리 모여 연습을 해야 한다. 팀이 결성되면 곡을 결정해야 하며, 연주 순서 등을 결정한다. 연습이 진행되는 막바지에 세부 일정을 조정하고, 리플릿과 현수막을 제작한다. 수차례의 발걸음으로 공연장을 준비하고, 다시 연주회가 끝난 후에 식사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한다. 일 년 간이 고마움과 공연장을 찾아 준 성의에 보답하고자 해서다. 모든 것을 결정해 진행하면서 혹시나 하는 염려를 지울 수가 없다. 모든 것을 책임저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회원들이 웬만하면 동의해 주지만,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만족할 수 있겠는가? 누가 추진하든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참,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할 수 있겠는가?

IMG_2900[1].JPG 가을은 한 없이 깊어가고 있다.

가능하면 짧고도 알찬 연주회가 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20여 명의 회원들과 드럼과 베이스 기타 등, 밴드가 어우러진 성대한 연말 연주회였다. 가능하면 솔로 연주를 피하고, 어울림 위주로 편성했다. 세월 따라 회원들의 실력이 점차 향상됨에 어설픈 사회를 보면서도 편안했다. 어렵게 모신 100여 명의 초청객들이 지루해하면 어쩌나 해서다. 열렬이 응원해주고 같이 자리해 주는 성의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조금 더 연습해야 하는 기다림의 부족이 아쉬움으로 남는 연주회였다. 하지만 음악회가 끝난 회원들은 매우 만족스러워한다. 모두가 행복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서로를 격려한다. 일 년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순간이다.


일 년의 즐거움과 남 모를 고뇌가 가득 담긴 연말 연주회였다. 회원들이 연습을 고민하는 사이, 작은 일에도 기나긴 생각과 걱정이 가득 담긴 연주회다. 혹시나 하는 걱정을 언제나 해야 하고,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많은 고뇌와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연주회가 가끔,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할까로 또 망설인다. 하지만, 회원들의 남다른 격려와 행복해함이 내겐 커다란 힘이 된다. 아쉬움 속에 큰 사고 없이 마무리한 안도감에 또 한 해를 준비해야 한다. 내년을 설계하고 겨울을 어떻게 연습하며 보낼까, 회원들이 좋아서 찾아오는 연습실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를 걱정해야 한다. 어렵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연주회 또 준비하는 이유다. 내년에는 더 멋진 모습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보는 늦가을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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