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속 자전거 길, 낙엽 속으로)
친구들과의 어울림은 여러 가지가 있다. 산행을 하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가끔은 소주도 한잔 나누며 늙어가는 청춘들이 늙음에 반항을 한다. 오늘도 친구들과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이젠 날씨가 추운지 복장이 제법 두툼해졌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줄지어 달려가는 자전거길, 대부분 익숙한 길이 되었다. 벌써 7년이 지났으니 전국 대부분 자전거 길을 돌고 돌았다. 아침부터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이들부터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길에 나서고 있다. 이젠, 자전거가 일상이 되어 누구나 즐기는 스포츠가 되었다.
친구들이 모이면 점심을 우선 정하고 길을 나선다. 자전거길 대략의 윤곽을 잡기 위함이다. 길이 정해지고 달려가는 자전거길, 많은 자전거가 오고 간다. 자전거의 종류도 다양하다. 몇 십만 원에서 몇백만 원, 몇천만 원짜리도 있단다. 서민들로서야 지나는 소리로 듣고 말아야 하는 값이다. 곳곳에 많은 자전거길이 있지만 요즈음에 차량이 오갈 수 있어 농로는 좋은 자전거 길이다. 들판을 볼 수 있고 우리의 삶을 볼 수 있는 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들길로 접어들었다. 곳곳에서 농부들의 발길이 바쁘다. 미안한 생각에 얼른 인사를 하고 힘을 쏟아낸다.
가는 곳곳엔 가을이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 늘 푸름을 안고 바람을 타던 강아지풀이 보인다. 강아지 꼬리와 비슷하다 하여 강아지 풀이라 하는 귀여운 풀이다. 가을을 가득 안고 안색이 변했다. 누런 잎을 둘러쓰고 이전 여름날을 잊었나 보다. 붉음과 빨강을 자랑하던 코스모스도 가을을 실었다. 까맣게 씨를 얹고 바람에 흔들거림은 지는 가을이 서운한 빛이다. 아름답던 여름을 보낸 가을 속 코스모스는 벌써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어깨동무를 하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림은 삶의 힘을 잃은 듯해 가을임을 실감한다. 멀리서 대청호의 잔잔한 호수가 들어온다. 뿌연 안개가 잔잔한 미소를 주는 호수, 언제나 안락함을 주는 이유는 무얼까?
어떻게 알았는지 호수 한가운데 분수대가 물을 뿜는다. 모락모락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가에는 억새가 하얀 머리를 흔들고 있다. 야, 이런 광경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반대편 호숫가에도 가을이 내려왔고, 이를 축하하는 물줄기가 하늘 속에 있다. 모락모락 안개가 피어오르는 속에 하얀 억새가 몸을 숨겼다. 느릿한 속도로 달려가는 자전거길, 친구들의 발걸음이 멎었다. 그냥 갈 수 없는 풍경이다. 넋을 놓고 바라보는 호수가에는 그리움도 있다. 오래전 삶이 있었던 자리에 있는 감나무다. 붉게 물든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누군가의 그리움을 담고 있는 감나무에 붉은 홍시가 바람을 탄다. 오고 가는 길손의 마음을 사로잡는 하늘 속 풍경이다. 천천히 페달을 밟고 달려가는 자전거길,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아직도 노란 잎이 남아 있는 은행나무가 발길을 잡는다. 가을 속에 남아 있는 노란 은행잎, 대지를 덮고 있는 은행잎도 가득이다. 노란 빛깔에 쏟아진 햇살은 숨을 멎게 한다. 노랑과 반짝임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누가 이런 빛을 마다 할 수 있을까? 가끔은 열매에서 풍기는 냄새가 역겹지만, 노란 은행잎은 떨칠 수가 없다. 오래전엔 남아있지 않던 은행이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은행이 바닥에 뒹굴고 있다. 오가는 차량에 처절한 삶을 마감했지만 그래도 노랑 잎은 포기할 수 없는 가을 손님이다. 호수와 어우러지는 노랑을 뒤로하고 언덕을 오른다. 은은히 돌아가는 언덕길에 발길을 멈췄다. 가을의 진객이 자리를 잡아서다.
붉은 단풍들이 길가에 누워 있다. 도저히 그 길을 그냥 갈 수 없어서다. 붉음과 노랑이 어우러진 길, 한쪽으론 무심한 듯 차량이 오고 간다. 노란 은행나무가 있고, 푸름 속 소나무가 당당하다. 언제나 푸를 것 같은 소나무도 아래 잎엔 누런 가을이 왔다. 세월 속에 푸름과 어우러지는 누런 빛이다. 푸름만 있었으면 너무나 답답했을 가을 속 소나무도 계절을 알았나 보다. 굵직한 줄기에 세월의 골을 안고 서있는 소나무가 늙음의 빛을 얹고 있다. 어둑한 숲을 이룬 이 산속 자전거길에도 진한 가을이 찾아온 것이다. 노란 단풍과 붉음으로 치장한 길, 어떻게 이 길을 밟고 갈 수 있을까? 조심스레 지나야 하는 발길이 망설여진다. 가을의 진객을 만난 자전거길을 조심스레 지났다. 멀리서 호수 속 산 그림자가 일렁인다.
가을 속을 빠저 나가는 자전거길, 남은 힘을 모아 본다. 끝 여름을 풍성하게 달구었던 포도밭이 보인다. 포도를 파는 시골스런 농가도 가을빛이다. 붉은 고추가 색을 맞추고 곳곳엔 가을 열매를 팔고 있다. 붉은 호박이 놓여있고, 갖가지 농산물을 펼쳐 놓았다.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파는 단감 장사는 여전하다. 오늘도 부지런히 길가를 오고 간다. 어디서 저렇게 많은 감이 열렸을까? 온화한 기후에서 자라는 감나무, 골짜기에선 감히 기대도 못하는 감나무다. 정성스레 심어 놓고 감싸주지만 어설프게 한두 개만 만날 수 있는 그리움 속의 감이다. 신나는 자전거가 앞서 나간다. 젊음을 실은 풋풋한 자전거다. 날씬하면서도 힘찬 근육이 젊음을 가득 실었다.
남은 힘을 모아 찾아온 호숫가에도 가을이 빼곡하다. 도토리나무는 남은 열매를 모두 쏟아냈고, 갈색의 갈대가 무성하다. 한적한 곳에 자리한 그네 의자에 다정한 연인이 앉아 있다. 둘이 앉아 있기 안성맞춤이 그네 의자다. 젊음은 넘어선듯한 중년의 연인들 가을 속의 아름다움이다. 언덕 위 커피숍엔 커피잔을 두고 앉아있는 젊은 연인도 보인다. 가을은 그렇게 아름다움을 마음껏 연출하고 있다. 자연이 그렇고 인간이 그러하고 또 마음도 그러하다. 내 마음속엔 어떤 가을이 자리하고 있을까? 얼른 머리를 털고 고개를 돌리자 아스라이 먼 호수 끝엔 아직도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가을 속에 잔잔한 그리움과 추억을 불러주는 안개다. 서둘러 안장에 올라 점심을 먹으러 가야 했다. 오늘도 친구들과 어울려 맛있는 점심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