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빨간 줄 두 개가 선명했다.

(코로나 확진, 봄을 기다리는 마음)

by 바람마냥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빨간 줄 두 개가 선명했다. 그렇게도 피하며 조심했는데 확진이란다. 며칠 전부터 아내가 목이 아프다 했다. 산엘 다니고, 탁구를 치며 또 난타를 배우러 다닌다. 저녁으론 수채화를 배우러 다니느라 여간 고단한 몸이 아니시다. 집에서 우물쭈물하는 것보단 좋겠다는 생각에 늘 응원을 해주고 있다. 다만,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 단풍놀이 간다 하고, 친구 집에도 간다 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그런대로 지켜보는 남편이다.


갑자기 목이 아프다는 말에 병원에 갈 것을 권했다.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 몸이 견딜 수 없었나 보다. 몸이 견딜 만큼만 하라는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 어렵게 찾아간 병원, 목감기라는 진찰이었다. 조제해준 약이 떨어질 무렵, 다른 병원엘 들렀지만 같은 진단이었으니 믿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목은 아프지만 열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열이 있었으면 코로나를 의심했을 텐데, 열이 없으니 방심했는가 보다. 며칠이 지나고 나의 목이 조금 아팠다. 감기려니 하면서 찾아 간 병원, 코로나 검사를 해 보잔다. 며칠 후에 아이들 집에도 갈참이었으니 잘 되었다는 생각으로 한 검사, 양성 반응이 나왔다. 앞이 캄캄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엊저녁에도 수채화를 그리고 왔으니 화실에 왔던 사람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만약에 선생님이 감염되었다면 선생님의 생업이 관련되어있으니 난감하기만 했다. 어떻게 할까? 시치미 떼고 모르는 척할까? 말하지 않으면 어디서 감염되었는지 모를 것 아닌가? 그러면 책임은 모면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고민 끝에 전화를 드렸다. 사정을 이야기하자 어쩔 수 없었으니 미안해하지 말란다. 급히 아내도 검사를 한 결과 양성반응이었다. 이젠, 꼼짝없이 7일간의 격리만 남았다. 죽으나 사나 같이 붙어 집안에 있어야 한다. 남의 일로 생각했던 격리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내가 격리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고민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천하의 백수가 감염되었는데 웬 걱정거리가 그리 많던가? 마침 내일모레가 아버지의 기일이다. 가족들이 다 모이는 곳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 할 수 없이 형님한테 알렸더니 온 집안이 알게 되었다. 여기저기서 안부전화가 온다. 자전거를 타러 가야 하는데, 갈 수 없다 하자 또 묻는다. 코로나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들이 다 알게 됐다. 다시, 산행 모임을 해야 하고, 색소폰 연습을 하러 가야 한다. 모두에게 사정을 알리자, 코로나에 확진된 것이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겐 알려지게 되었다. 하는 일도 없는 백수 하나 감염되었는데, 이렇게도 많은 사람에게 관련이 된단 말인가?


모든 일을 처리하고 이젠, 집안에 숨어 지내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무엇을 하면서 지낼까? 이왕이 이렇게 된 일,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자세를 취했다. 잠이 오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시도 앉아 있지 않던 백수, 도대체 어떻게 일주일을 버틴단 말인가? 아무도 모르게 극장이라도 갈까? 마트에라도 잠깐 들러 먹을 것을 사 와 볼까? 가끔은 꿈틀대는 생각을 접고 또 하루를 보낸다. 마스크로 무장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 누가 알 수가 있을까? 조그마한 양심이 고개를 들었다. 남이 그랬으면 어떻게 할까?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에 비해 심한 증상은 훨씬 적었다. 목이 조금 아픈 정도가 전부였다. 아내는 목이 아프고 몸살 기운이 있으며, 기침을 심하게 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증세가 계속되었지만, 무감각한 늙어가는 청춘은 먹을 것도 다 먹고 잠도 오는 대로 잔다. 입맛이 없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고, 모든 일이 무감각했다. 모든 일에 예민하기로 이름난 사람이 코로나엔 그렇게도 무감각함에 감사할 따름이다. 2일 정도가 지나자 증세가 사라지는 듯했지만 입안에 쓴 맛이 남아있다. 수시로 물로 헹궈내고 단것을 달고 살았다. 코로나로 살이 찌는 것이 아닌가 겁이 났지만, 쓴맛을 견딜 수 없음에 어쩔 수 없었다. 어젠 서서히 감금의 세월이 가고 있다.


일주일이 지나면 치료가 된다고 한다. 일주일 후에 검사를 하면 죽은 바이러스 때문에 양성이 나올 수 있다 한다. 일주일 치료가 끝나면 치료된다는 것을 믿어도 되나?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예방접종을 하면 안전하다 했지만 3차까지 접종했어도 감염되지 않았는가? 어디서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의심하고 있지만 속 시원하게 풀어줄 대답은 없는 듯하다. 의문에 의문을 품으며 감금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 이제, 하루가 남았다. 하지만 많은 약봉지가 식탁 위에 놓여 있다. 이 많은 약을 어떻게 할까? 믿을 수 없음이 더해져 이런 의문을 계속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젠 몸도 거의 회복되어 가고, 아내도 거의 완치되는 듯하다.


확진이 되고 일주일치의 약을 처방받았었다. 아내는 끝날 때까지 약을 복용하라 한다. 끼니마다 몇 개씩 먹어야 하는 약의 숫자가 오히려 겁을 준다.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되는 것인가? 몸 안에 온갖 약을 쓸어 넣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의문이 들고 겁이 나니 약 먹기를 주저하고 있다. 아내 몰래 약을 줄이기로 했다. 슬며시 감추며 약을 먹지 않기로 했다. 내일까지만 버티면 감금생활도 끝나면서 코로나도 치료되리라 믿어야 한다. 마음대로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늙어가는 몸뚱이다. 추워지는 겨울날에 만난 역병, 건강한 겨울을 지내야 아름다운 봄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봄이 오면 나물을 뜯고, 향기 나는 계절의 냄새를 맡을 수 있지 않을까? 여러 날, 잘 피하면서 견뎌온 코로나가 찾아온 초겨울의 산골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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