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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May 08. 2023

오늘이 성스러운 어버이날입니다.

(어버이날의 생각)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았다. 성적이 많이 좋아졌다. 주말이 그렇게도 기다려지던 중학교 시절, 성적표를 들고 고추밭으로 달려갔다. 어머니가 고추를 따고 있던 땡볕의 들판, 어머니는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어머니가 좋아하시길 바라며 눈을 부릅뜨고 공부를 했다. 고단한 가난 속에 졸업한 후, 국립학교라는 명분으로 현직에 바로 근무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직업이라기 보단 아이들이 좋아 정성을 다해 가르쳤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날, 기다리던 월급날이었다. 토요일이 그렇게 기다려지는 주다. 토요일이 되어야 아버지께 월급을 드릴 수 있어서다. 가난에 시달리던 시골살이, 아버지는 너무나 좋아하셨다. 소위 보릿고개라는 시절에 현금이 있을 리 없는 시골마을이다. 매월 드리는 아들의 월급은 시골마을의 현찰이었다. 아버지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동네사람들이 기다리는 현찰이었다. 부모님의 고단함을 알기에 공부를 했고, 모든 것을 부모님께 드리고 싶었던 철부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들어줄까? 한참을 망설이다 이내 포기하고 만다.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려 하고, '라테'를 고집하는 '꼰대'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할까? 아버지의 말이었으니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시라는 생각을 하고 있음이 세월을 씁쓸하게 한다. 말하지 않았음이 현명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오래전,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말씀이 적으셨다. 왜 그랬을까? 내 아버지 세월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아, 내 아버지가 말씀을 아끼신 이유가 그랬었다는 생각은 틀렸을까?


지나는 길에 만난 거대한 묘소를 보고 늘 생각이 많다. 얼마나 많은 비용이 필요했고 과연 할 만한 일이었을까? 부모생전 얼마나 잘했기에 저렇게 거대한 묘를 만들었을까? 저것이 효도일까? 아니면 부의 과시일까? 언제나 씁쓸함을 자아내는 거대한 묘소들이다. 살아가며 얼마나 부모의 삶에 관심을 갖고 공감하며 살았을까? 이내 고개를 젓게 되는 것은 많은 세월이 흐르고서야 알게 되었다. 세월의 변함은 어쩔 수 없으니 끄트머리에서라도 따라가야 마음이 편하다. 


어버이날이라고 엄청난 것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 부모에게 하지 못했던 기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내가 하지 못한 일, 아이들에게 바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어버이날이라 어수선 피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다. 살아가며 서로를 보살피고 작은 정성이 더해지면 더 할 것이 뭐가 있을까? 가끔, 오죽했으면 어버이날이요, 스승의 날을 만들었을까를 생각도 하게 되는 날이다. 세월의 변함에 따라가야 하는 심정, 통장으로 꽂혀오는 현금 몇 푼으로 기뻐해야 하는 세대가 슬프기도 하다.


식탁에 놓여있는 갖가지 영양제와 약의 용도는 알고 있을까? 어수선한 식당에서 먹는 고기 몇 점으로, 통장으로 꽂히는 몇 푼 현금으로 어버이날이 지나갈까 생각이 많아진다.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어버이날이요, 스승의 날이 아닌 정성과 삶이 담긴 날이었으면 좋겠다. 빨간 카네이션 한 송이가 모든 것을 대변하듯이 말없이 시드는 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성적표를 들고 고추밭으로 뛰어가고, 월급봉투 안겨줄 수 있는 내부모가 없으니 안타까운 어버이날에 생각이 많아진다. 화창한 어버이날, 슬며시 내 부모 산소에나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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