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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un 10. 2023

어린 손녀가 세월을 계산하고 말았다.

(늙어가는 청춘의 삶은 버겁기만 하다)

어린이날, 부산에 사는 손녀가 찾아왔다.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 집을 좋아하는 손녀다. 꽃밭을 만들어 물을 주고, 잔디밭에 뛰어노는 것을 즐기는 손녀다. 초등학교 4학년인 손녀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손녀가 기대하고 있는 어린이날 선물을 묻자 거침없이 캔버스를 받고 싶단다. 손녀를 태우고 아내와 함께 선물을 사러 나섰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 사이 손녀는 할머니와 캔버스를 구입하고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손녀와 상점 구경도 하고, 필요한 USB도 구입할 겸 다른 층으로 이동했다. 어디에 있을까 망설일 사이도 없이 손녀가 이끄는 대로 가보니 찾던 USB가 있는 것이 아닌가? 손녀 덕에 너무도 쉽게 USB를 구입하고 계산대로 향했다.


할아버지가 머뭇거리는 무인 계산대, 손녀가 카드를 받아 간단히 계산하고 영수증을 받는다. 순식간에 변하는 세월에 적응하는 손녀다. 많은 생각이 순식간에 오고 간다. 우선은 손녀가 대견하기도 했지만, 초등학교 4학년보다도 못한 할아버지는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 앞선다. 급한 세월은 할아버지와 손녀 두 사람을 금방 구분해 놓은 것이다. 얼만전의 기억이다.


손만 들면 택시가 섰고 요금을 지불하면 되었다. 택시 기다리는 것이 힘겨웠지만 웬만하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순식간에 세월은 성큼 변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예약 표시를 달고 손을 들어도 택시는 무정하게 가버린다. 어떻게 할까? 도저히 택시를 탈 수 없어 예약하고 타는 법을 배워야 했다. 더듬거리며 앱을 깔아야 했고 예약해야 했다. 방법을 알고 나니 편하기는 하지만 늙어가는 청춘은 너무 힘겹다. 세월이 더 흘러가면 어떻게 살아갈까? 살아갈 수 있을까? 문득 아내와 서울을 다녀온 생각이 떠오른다. 


아내는 발목이 시원치 않아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 지방의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서울의 유명하다는 병원에 가야 했다. 야구를 보러 잠실을 찾고 가끔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서울, 말 한마디 없이도 갔다 올 수 있도록 변한 세월을 아내는 알고 있을까?  승차권을 예매하고 차를 타는 법이 너무 어렵다. 아내와 함께 서울을 가야 하는 이유였다.


승차권을 구입하기 위해 들어 선 터미널, 낯선 기계 앞에 사람들이 서 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긴 줄 끝에서 기다린 후, 매표원한테 구입했다. 언젠가 낯선 기계 앞에서 허둥거리던 기억이 남아서다. 순식간에 승차권을 손에 쥔 젊은이, 뒤에서 감시하듯 기다리고 있는 젊은이가 부담스러웠다. 그 후, 휴대폰에 앱을 받아 예매를 하고, 당당하게 큐알코드를 내밀고 있지만 쉽지 않다. 가까스로 아내에게 알려주었어도 지하철을 타야 하니 서울을 가야 했다. 숨이 막힐 듯한 조용한 분위기로 서울에 도착했다. 아직은 다리가 멀쩡해 어느 정도 뛸 수 있는 고희의 청춘이지만 어려움은 널려 있다. 


당당하게 도착한 서울거리, 어째서 횡단보도는 그리 멀단 말인가? 사람이 보이면 차량이 멈추는 스웨덴 여행 길이 생각났다. 초록불이 들어오고 쏜살같이 달려오던 차량들이 멈추었다. 밀려오는 인파 속에 허둥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아스라이 건너는 횡단보도, 초록색 등이 껌먹이며 위협을 한다. 가까스로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스웨덴의 교통질서가 생각난 이유다. 힘겨운 횡단보도를 건너도 늙은 청춘들의 이동은 쉽지 않다. 일본에서 공부한 아들을 만나러 갔던 기억이다. 동경의 복잡했던 지하철 노선도를 서울에서 만난 것이다. 어떻게 표를 구입해야 하고, 어떤 노선을 골라 타야 할까? 경로우대로 무임승차를 할 수 있다는데 어떻게 구입해야 할까?


노선도 복잡하지만 경로우대 무임승차는 쉽지 않다. 신분증을 스캔하고 500원을 넣는다. 승차권을 이용하고 난 후, 환불기에 넣고 환불을 받는다. 부산 지하철은 시스템이 또 다르다. 서울 친구에게 긴 과외를 받은 지하철 타는 방법이다. 노선도 복잡한데, 몇 푼 아끼려는 노력과 시선이 불편해 후불교통카드로 지불하고 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지하철 무임승차, 무임승차 혜택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다. 떳떳한 승차가 되도록 제도를 폐지하든지 아니면 모두에게 공평한 혜택을 주어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지역차별이 심각하고도 불편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것은 해외여행에서도 만나게 된다.


친구 내외와 오랜만에 나서는 해외여행, 어렵게 휴대폰으로 예매를 하고 여행날짜를 기다렸다. 복잡한 문자로 여행을 안내하는 여행사, 앱을 내려받고 체크인을 해야 한단다. 어렵게 시도를 해 보지만 쉽지 않다. 아이들에게 부탁하거나, 젊은이들이 차지하고 남은 자리를 잡으려 공항으로 달려가야 한다. 거기에도 낯선 기계가 앞을 막아선다. 어쩔까 망설이다 여권을 들이밀어도 버벅거리기는 마찬가지다. 도우미를 불러 어설픈 체크인을 하지만,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세월을 감당하기엔 힘에 버겁다.


사회적인 시스템이 낯설어 어려움이 있는가 하면 분위기도 얼떨떨하다. 친구들과 어울려 저녁식사 후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숍을 들어서자 젊은이들이 북적대고 있다. 종업원이 다가와 안내하려나 머뭇거리는 사이, 잠시 후에 문을 닫아야 한단다. 젊은이들이 가득한 커피숍이 곧바로 문을 닫아야 한다고? 되돌아 나오는 모습이 슬프기만 한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늙어가는 청춘들도 적응할 수 있는 사회는 될 수 없을까? 어느 곳이나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는 없는 것인가? 급변하는 사회에서 먹는 것이 어렵고, 이동하는 것이 버거우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세월은 급격이 변하고 있어 새로움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끄트머리에서라도 따라가려 노력하고 있다. 우뚝 선 키오스크에 적응하려 하고, 낯선 세월을 잡아 보려 한다. 복지사회를 외치는 수많은 구호 속엔 외로움과 낯섦이 가득하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라는 듯이 세월은 도망가고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돌봐줄 듯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선거철엔 작은 관심이라도 두는 척 하지만,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외면하고 만다. 유권자들이 기억해 둬야 하는 민주시민들의 책임이지만 늘 아쉽기도 하다. 기울어진 마당에 함께하기란 힘에 겹다. 누구나 겪어야만 하는 세월, 함께 어우러지며 소외 계층 없는 사회는 만들어질 수 없을까?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하는 사회적인 문제일 것이다(2023.05.18 오마이 뉴스 게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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