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가 즐거운 이유)
아내와 화실에서 집으로 향하는 발길이 바쁘다. 야구중계 때문이다. 추적대는 가을비가 내리는 밤, 야구중계 하는 것을 들으면서 자연은 오묘하다는 생각이다. 오래 전의 기억, 소잔등을 기준으로 반쪽에만 비가 온단다. 넓지도 않은 나라에 비가 오기도, 햇살이 반짝이기도 한다. 빗속을 뚫고 서두르는 이유는 9회 말의 기적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0:2로 지고 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른다. 혹시라도 역전?
운동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모든 스포츠에 관심이 많다. 야구, 배구, 축구 등 전 종목을 가리지 않고 관심이 많다. 텔레비전은 운동경기 아니고는 관심이 없다. 드라마는 전원일기 이후엔 본 것이 없다. 시골에 살면서도 유명한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상암을 찾는다. 한일전을 보기 위해 대구구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2002 월드컵 8강전 관람은 아직도 집안의 추억거리다. 전 식구가 출동했던 거대 행사였기 때문이다. 야구를 보기 위해 잠실을 찾아가고, 더러는 인천나들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팍팍한 삶에 조금은 숨통을 트기 위한 나들이다.
먼 거리의 여행은 경기를 보기 전에 지치기도 하지만, 짜릿함을 얻을 수 없을까 해서 찾아간다. 전 식구를 대동하기도 하고, 아내와 함께 하기도 하는 경기다. 핸드폰에서 우선은 야구결과가 중요하고, 날씨가 중요하다. 늙어가는 청춘이 야구를 할 수 있을까를 확인하는 행복한 삶의 한축이기도 하다. 시내에서 서둘러야 집에서 편안한 야구중계를 볼 수 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중계, 8회 말의 소식이다. 투 아웃에 1,2루다. 안타 하나면 한 점이라도 얻을 수 있다. 타자가 친 공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아내가 한마디, 공을 왜 하늘로 치는 거야? 모든 것이 허사로 끝나고 말았다. 허탈한 마음을 비우고 9회 말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9회 초의 수비를 성공리에 끝냈고, 드디어 9회 말에 현관문을 들어섰다. 서둘러 티브이를 켰지만 왜 이리 화면이 느리기 나타나는지. 불과 몇 초가 긴 시간임을 알게 한다. 긴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상대는 리그에서 내놓라 하는 세이브 왕이다. 3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 초구를 노렸다. 초구 안타다. 운동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린다. 발이 느린 3번 타자는 발 빠른 주자와 교체됐고, 4번 타자가 들어섰다. 투수는 안타에 당황한 듯이 데드볼을 내주었다. 무사 1,2루의 찬스, 5번 타자 대신 대타가 들어섰다. 희생번트를 하기 위해서다. 번트를 댔지만 투수의 벼락같은 3루 송구로 선두주자가 아웃됐다. 1 아웃에 1,2루에 6번 타자 등장, 카운트 싸움 중 투수가 던진 공을 포수가 버벅대는 순간, 벼락같은 더불스틸이 성공되어 2,3루 찬스다.
6번 타자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6번 타자의 내야 땅볼로 3루 주자 홈을 밟아 어렵게 1:2가 되었다. 투아웃에 3루다. 대타가 들어서자 긴 싸움 끝에 풀카운트, 투수가 흔들리며 1,3루가 되었고 2루 도루에 성공했다. 결국은 2사에 2,3루가 되는 절호의 찬스가 되었다. 7번 타자와의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카운트가 불리해진 투수의 자동고의 사구로, 2사 만루가 되었다. 다시, 대타가 등장했고, 숨 막히는 9회 말은 계속되었다. 당황한 투수의 폭투가 이어지면서 드디어 2:2 동점이 되어 야구는 다시 시작되었다.
선발투수는 승리가 날아가자 더그아웃에서 자리를 피한다. 투아웃에 2,3루가 되었고, 운동장엔 긴장감이 감돈다. 볼카운트 2 볼 1 스트라이크, 투수가 공을 뿌렸다. 약간 높은 볼은 배트에 맞았고 유격수 키를 넘었다. 기나긴 게임은 3:2의 짜릿한 역전승으로 끝이 났다. 아내와 함께 소리를 지르게 되는 야구는 이런 맛에 즐긴다. 더운 여름에 야구장을 찾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게 하는 경기다.
모든 경기를 좋아하지만, 오래전부터 야구에도 관심이 많았다. 뙤약볕에 앉아 야구를 보며 삶을 잠시 잊기도 했다. 한두 해가 지나면서 두산의 영원한 팬이 되었고 아내도 따라서 팬이 되어 이젠, 전문가의 수준이 되었다. 두산팬이 된 이유는 특별함이 없다. 그냥, 야구하는 모습이 좋아 영원한 팬이 되고 말았다. 아들은 LG의 골수팬이고, 사위는 한화의 영원한 팬이다. 한 가정에 세 팀이 존재해 가끔은 눈치를 본다. 중계방송을 어느 경기를 봐야 할까? 사위는 얼른 장인한테 양보를 하고, 아들은 이내 핸드폰으로 눈이 간다.
하루를 살아가기는 즐겁다는 생각보단 각박하다는 생각이 많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연들이 주는 압박감은 언제나 어려움을 준다. 산뜻한 즐거움은 찾을 수 없을까? 가끔 9회 말에서 찾아낸다. 도저히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야구다. 저런 삶은 있을 수 없을까? 게임 상황을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게임에 몰입해 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황, 복잡한 삶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짜릿한 야구다. 언제 야구장을 찾아가야 하는데 너무나 고단하다. 가끔 찾아가는 야구장엔 치맥도 기다리고 있다.
이른 오후부터 버스에 올라 한 시간 반, 다시 지하철을 타야 야구장이다. 짜릿한 승리를 맛보기도 하지만, 가끔은 좌절하기도 한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버스에 올라 긴 여정을 마무리해야 한다. 하루를 몽땅 털어 넣어야 하는 야구장나들이다. 시골 살면서 느끼는 비애 아닌 어려움이다. 서울에 살면 늘 야구장에 상주할 것이라는 아내는 말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긴 외로움과 서러움을 털어내고 싶은 9회 말, 2 아웃을 만나고 싶어서다. 언제 한 번 가 볼까? 가을이 가기 전, 삶의 야구장엘 가봐야겠다. 하루를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나들이다. (사진 : 중계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