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검진을 마치고, 카사블랑카 하산 2세 사원)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말할 필요 없이 건강이다. 아침부터 운동을 하고, 산행을 하며 다양한 스포츠에 몰두하는 이유 중에 으뜸은 건강이리라. 건강, 어떻게 지켜가야 할까?
열심히 운동도 하고, 영양식도 하며 가끔은 마음까지 쉬고 싶은 것은 모두의 바람이다. 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쉼과 여행을 즐기는 이유도 건강을 위해서다. 오래전부터 운동을 좋아해 많은 운동을 한다. 산을 오르기도 하고, 헬스장을 드나들며 근육을 다듬고,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어느 정도의 건강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지만 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누가 건강을 장담할 수 있을까? 오래전에 티베트 여행 기억이 떠 오른다.
티베트의 수도 라싸의 고도가 3,700m 정도, 우선 걱정은 고산증이다. 개인적으로 해발 3,000m 정도가 되면 서서히 고산증세를 느낀다. 티베트를 여행을 위해 동 티베트를 사전 여행했었다. 걸어가면서 약간은 공중에 떠 있다는 느낌이 바로 해발 3,000m였다. 고산지대 여행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 티베트 여행을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운동을 많이 했다는 생각에 별 걱정 없이 출발했다. 아내 걱정이 되었지만 그것은 커다란 오산이었다. 운동과는 상관없이 체질에 따라 고산증세는 달랐다. 아내와 함께 링거를 받고 여행을 했으니 장담할 수 없는 것이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격년제로 건강검진을 해왔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주변에 많은 이웃들이 생각지도 못한 병마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건강검진을 받았다. 국가 검진 외에 할 수 있는 검사 중 췌장 MRI항목을 추가했다. 마음이나 개운하게 살자는 생각으로 검사를 신청했다. 무사히 검사를 마치고 2주 후 받은 결과는 불편했다. 무엇인가 보인다는 진단이다. 아내가 걱정할까 무심한 듯 계획되어 있던 외국여행을 다녀왔다. 우울한 기분 속에 여행을 마치고 담당의사를 만났다. 의사가 근엄하게 전하는 말, 큰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보란다. 왠지 불안하기도 했지만 직접 듣고 나니 겁이 났다. 대학병원에 예약을 하면서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주변에 각종 암을 흔하게 볼 수 있으니 아내에게 설명을 했고, 대학병원 예약 날짜까지는 일주일이 남았다.
기다리는 일주일,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기분이다. 만약에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최악의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잠을 잘 수도 없고 밥맛도 없으며 모든 일이 귀찮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심정이다. 환자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만약 모든 것이 의심으로 끝난다면 세상을 다시 살아 볼 것 같은 심정이다. 모든 일에서 마음은 떠나 있다. 만약에 잘못되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하던 일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어디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모든 세상 걱정을 혼자 하는 듯이 걱정이 태산과 같다. 조마조마하게 일주일이 지나고 촬영 영상을 들고 대학 병원엘 찾아갔다.
혼자 가는 것이 두려워 아내와 함께 간 대학병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있다. 약간의 현기증도 있는 듯하고 간호사와 이야기하는 것도 꿈속 이야기 같다. 어럽게 접수를 마치고 문 앞에서 대기하는 시간은 왜 이렇게 시간은 느리게 가는가? 몇 분의 기다림이 몇 시간 되는 듯한데, 이름을 부르니 왜 시간이 빨리 왔는지 원망스럽다. 혼자 들어갈 수 없어 아내와 함께 의사 앞에 앉았다.
컴퓨터 모니터에 몸속의 모든 것이 꿈틀 거린다. 의사의 손짓에 따라 희미한 눈이 오고 간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의사가 입을 열었다. 췌장에 있는 작은 점, 이것은 검사를 하지 않았으면 오지 않아도 되는 것이란다. 정말 인가하여 의사를 바라보니 작은 물혹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안심이 되면서도 허탈했다. 정말 그럴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영상의학과 교수 소견도 한번 더 들어 보는 것이 좋겠단다. 다음 주에 내원하여 영상의학과 교수의 소견을 듣고 상담하자는 권고다. 어떻게 일주일을 살았는지 기억이 없었다는 말에 이해한다는 대답이다. 후련한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서는 마음,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일주일을 기다리는 데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마음고생을 식힐 겸 부산에 사는 딸네 집으로 향했다. 내 부모가 계시지 않으니 갈 곳은 자식 집 밖에 없었다. 언젠가 딸아이가 아파서 집으로 찾아오던 생각이 떠 오른다. 아프다고 찾아올 수 있는 아비가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아파도 부를 내 부모는 없고 찾아갈 곳도 없는 삶이 서글프기도 했다. 부산에 들러 소주도 한 잔 나누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돌아왔다. 다시 마지막 결과를 봐야 하지 않나? 다시 대학병원에 찾아갔다.
영상의학과 교수도 같은 의견이라는 전달이다. 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의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왜 그렇게도 고마웠을까? 의사가 고쳐준 것도 아닌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현재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일 년 후에 다시 검사 예약을 하고 돌아오는 길,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언 70년을 써 온몸이니 성한 곳이 있겠는가? 어느 날 친구가 하는 이야기다. 세월 속에 달고 달은 몸뚱이, 어떻게 간수하며 살아야 할까? 한 달간 삶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지만, 아직도 자신이 없는 건강한 삶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