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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ug 31. 2023

더위에 고단함을 싣고 부산으로 향했다.

(딸네 집에 가면서, 광안대교 모습)

늙음엔 외로움도 친구이어야 한다. 내 일에만 최선인 친구들, 오랜 세월 자기만의 우물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아침 운동을 하고 서재에 앉았다. 창 너머로 찾아온 바람엔 약간의 서늘함이 있지만 아직도 덥다. 책을 읽고 되지도 않은 글을 쓰며, 가끔은 연말 색소폰 연주회를 위한 연습도 한다. 그래 저래 바쁜 듯 하지만 산골의 살림살이는 언제나 조용하다. 


가끔 택배차가 먼지를 일으키고, 집배원의 오토바이 소리가 고작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웃집 닭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세상에 알을 낳은 닭이 저만 있는 양 골짜기를 호령하고 있다. 아침운동 후, 서재 앞에 앉았지만 마음이 바쁘다. 부산 딸네집에 핑계로 쌀을 가져간다지만, 사실은 더위에 지친 몸을 쉬러 가는 셈이다. 


엊저녁 손녀한테 전화가 왔다. 부산에 오시면 적어도 2박 3일은 해야 한단다. 이유는 간단하다. 할아버지가 오면 이곳저곳에 들러 맛있는 것도 먹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 방학을 맞이하는 것과 같다. 서둘러 짐을 싣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오랜만에 장거리 운전을 하는 길, 언제나 운전은 놀이 삼아 즐겨한다. 하루 종일이라도 운전은 싫어하지 않는다.

부산의 유명 쇼핑몰에서

오래전,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20일 동안 4,000여 km 정도를 운전한 경험이 있다. 하루 200km 정도를 한 셈인데, 전혀 지루하지 않게 한 운전 여행은 아직도 소중한 추억이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트럭행렬이 끊임이 없다. 무엇을 저렇게도 많이 실어 나르고 있을까? 인간은 필요한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으며 버리는 것도 너무 많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도착한 부산, 도착하자마자 광안리로 향했다. 곰살맞은 사위가 한치의 빈틈없이 일정을 잡은 결과다. 오래전에 다녀온 광안리를 가족과 함께 오니 감회가 새롭다. 


발랄한 젊은이들의 옷차림이 새롭고, 그들의 행동은 낯설다. 어디에 눈을 둘지 모르지만 곳곳엔 눈길을 유혹하는 것이 많다. 가끔은 도시에서의 삶도 괜찮겠다는 생각 하지만 복잡한 도심을 보면 고개를 가로로 젓고 만다. 시원함에 먹거리가 가득한 유명 쇼핑센터, 아이들 덕분에 젊은이들 틈에 끼여 커피를 마시고 새로움을 맛본다. 한가하게 앉아 바라보는 광안대교, 인간의 삶도 복잡하지만 살아가는 과정도 참 기이하다. 저렇게 다리를 만들었어야 했고, 하늘을 찌르는 빌딩을 지어야 했나 보다. 어지러움을 뒤로하고 얼른 식당으로 향했다. 

신세대들이 즐기는 커피전문점에서

바닷가에 있는 자그마한 식당엔 우리 가족뿐이다. 음식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신선해 보인다. 잠시도 쉼이 없는 손길로 제공된 음식을 먹으며 오랜만에 한가함을 가져본다. 저녁을 먹고 나선 바닷가는 시원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준다. 아이들 덕분에 이런 호사를 하는가 보다. 아이들이 없었으면 감히 생각도 못하는 바닷가에서 식사를 하고, 시원함과 새로움으로 긴 하루를 마감했다. 하루를 즐겼으니 내일 오후쯤엔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내가 가야 아이들도 하루를 쉴 것이 아닌가? 사정은 여의치 않다.


우선은 손녀가 반대를 하고, 사위가 더 있다 가란다. 장인장모가 온다는 소식에 여러 가지 해산물을 준비해 놓았으니 그냥 가시면 곤란하단다. 귀한 돌멍게에 한치를 준비했고, 맛있는 생맥주도 준비했단다. 그냥 가시면 냉장고에 들어갈 수도 없다며 하루를 더 묵어 가란다. 고맙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성의에 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딸네집이 아니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튿날은 시원한 해변으로 향해 해산물과 멋진 카페 나들이를 했다. 낯선 늙은이가 아이들 틈에 끼여 커피를 마신다. 


언제 이런 호사를 해 볼 텐가? 아내와 함께 느긋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해산물 파티를 맞이했다. 사위와 딸이 한껏 솜씨를 발휘했다. 호사스러운 해산물이 가득한 저녁상을 물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종일 피곤하기도 하지만 내일 아침엔 일찍 출발해야 해서다. 늘,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언제나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슬며시 집을 빠져나간다. 허름한 아비의 뒷모습을 보여주기 싫기도 하고, 아이들 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힘겨워도 다행인 것은 아직은 쓸만한 아비라는 것이다.

선선함을 주는 바닷가 야경

식당에 들러도 거침없이 카드를 내밀 수 있고, 두 다리가 멀쩡하다는 것도 행운이다. 언제까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오갈 수 있을까? 300km를 손쉽게 운전해 올 수 있고, 웬만한 식사비는 결재할 수 있다. 이젠 늙어가는 몸을 간수해야 함이 남아 있는 것이다. 혹시, 빠져가는 근육을 탓하면 어떻게 하나? 허름한 뒷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하면 어떻게 할까? 딸네집엘 자주 찾아가면서도 늘 조심스러운 아비다. 깨끗하게 세차를 해야 하고, 깨끗한 몸도 유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아이들이 불편해하면 어떻게 할까? 


새벽 일찍 일어나 모든 창문을 열었다. 인간의 늙음이야 당연한 일이고 세월의 공평함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언제까지 젊음을 유지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깨끗함을 유지해야 한다. 혹시, 향긋함이 아닌 구차한 냄새가 남아 있으면 곤란해서다. 하루를 살아도 부담스러운 아비, 불편한 아비가 되지 않아야 한다. 어렵지만 아침마다 운동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이유이다. 얼른 아내를 깨워 순식간에 300km 달려왔다. 집에 도착했다는 전화에 깜짝 놀란다. 2박 3일이 2박 2일이 되었음을 손녀는 아쉬워한다. 언젠가는 2박 3일을 꽉 채우고 와야 하는데, 언제까지 건재한 몸과 마음으로 운전을 하며 딸네집을 오갈 수 있을까? 어느새 여름도 성큼 물러서고 있는 8월의 끝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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