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이어지는 소식)
추적거리던 가을비도 산을 넘고 하얀 물안개만 어른대는 아침이다. 창문을 열자 신선함이 가득한 바람이 넘어온다. 더위에 지쳐 어서 가길 바랐던 여름은 서서히 물러가는 골짜기, 아직도 도랑물은 그칠 줄을 모른다. 일찍 일어난 아내는 잔디밭을 서성이며 잡초도 뽑고, 작은 텃밭도 돌본다. 한 손에는 오늘도 여지없이 빗자루가 들려 있으니 곳곳에 거미줄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거미도 살려함에 가능하면 그냥 두라 하지만 오가는 길목에 설치한 거미줄은 어쩔 수가 없다.
온갖 구석에 설치한 거미줄은 헌 집으로 만들어 놓기에 적당하다. 사람 흔적이 없는듯함에 아내는 오늘도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지나는 길에 갑자기 얼굴을 가로막는 거미줄, 조금은 섬찟함에 뒤로 물러선다. 현관을 나서는 곳에도, 데크를 내려가는 곳에도 거미는 그냥 두질 않았다.
시골집에 자리를 잡고 할 일이 많다. 잔디밭 잡초도 제거해야 하고, 비가 오면 물길을 만들어야 하며 데크도 관리해야 한다. 텃밭도 가꾸어야 하고, 집 앞 도랑도 말끔하게 정리해야 한다. 아침에 나서면 한두 시간은 거뜬하게 맑은 공기 속에서 소일할 수 있다. 이층 서재 앞에도 예외는 아니고, 처마 밑에도 하얀 거미줄로 동여매 놓았다. 어떻게 할까? 며칠을 미루고 참아 왔던 서재 앞 거미줄이 도를 넘어섰다.
몸집이 노란색을 띤 거미 서너 마리가 켜켜이 줄을 늘였다. 여기에 다이아몬드를 연상케 하는 거미줄은 어느 날벌레도 벗어날 수 없다. 오가는 모기가 거미줄을 몰라 봤고, 아름다운 나비가 깜짝 놀랐다. 허공에 달린 거미줄에 온갖 날벌레가 가득이다. 여기에 거미가 식사를 하는 아침, 거미의 신나는 식사에 처절한 죽음의 현장이다. 서재 앞에서 벌어지는 골짜기 삶의 현장이다. 할 수 없이 거미줄을 제거하고 싶은 이유다.
긴 장대 끝에 빗자루를 묶어 들고 나섰다. 봄부터 참새가 집을 짓고 자식을 길러내던 이층 서재 앞 처마밑이다.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참새는 끄떡도 않았었다. 처음에는 멈칫하는 듯했으나 조금 지나자 손사래와는 상관없이 드나들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면서 참새는 새끼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먹이를 물어 나르고 분비물을 쏟아내는 소란은 어느새 허전함으로 변했다. 새끼를 거느리고 숲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참새가 한산해지면서 거미가 자리를 잡았다.
자그마한 거미가 허공에 줄을 그었다. 노란색을 띤 거미가 나타나 거대한 거미줄로 대응했다. 여기에 아침 이슬이 내리고 햇살이 찾아왔다. 맑은 이슬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예술이었다. 여기에 바람이 찾아오자 하늘거리는 거미줄은 허공을 차지한 자연의 작품이었다. 여기까지가 설치예술의 빼어난 품격이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거미는 늘어났고, 한두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가 처마밑을 점령했다. 드디어 거미줄에는 그들만의 리그가 이루어지는 처절한 삶의 현장이 된 것이다.
거실 앞 통창 위에도, 이층 서재 앞에도, 뒤뜰 이층 처마 맡에도 거미줄은 가득이다. 거미줄을 제거한다는 것은 거미에겐 대 사건이다. 삶의 현장이 없어지는 현실, 어떻게 해야 할까? 허공을 오가며 거미는 심난해한다. 그들의 골짜기에 무단 침입해 살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사다리를 놓고 깨끗하게 정리했다. 어느새 이층 서재 앞도 깨끗해졌고, 거실 앞도 산뜻한 모양을 찾았다. 잠시 거미의 삶을 생각하며 멈칫했지만 생각을 털어냈다.
아침나절 부스댐이 온몸이 땀에 절었고, 거미의 흔적이 역력하다. 고단함과 땀에 젖은 몸은 앞 도랑이 최고의 피난처다. 얼른 도랑에 내려가 발을 씻고 세수를 했다.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에 씻어내는 몸은 짜릿하다. 종아리에서부터 머리까지 전해지는 짜릿함은 몸을 부르르 떨게 한다. 얼른 바위에 올라 차가움을 덜어 내며 세수를 한다. 아침나절 노력으로 이층 서재에 앉아 바라보는 처마밑, 개운하리라는 생각을 했는데 깜짝 놀랐다.
서재 앞 처마밑이 개운 하다기보다는 허전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깨끗하고 신선하다는 생각대신 무엇인가 비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찾아왔다. 시끄럽지만 참새에게 손사래를 치며 살아왔고, 어지럽던 거미줄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참새의 삶을 생각하게 했고 거미의 하루 삶이 궁금했었다. 참새가 날아가고 거미집이 사라진 처마밑으로 맑은 하늘을 걸림 없이 볼 수 있음은 분명히 바람이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허전함과 함께 텅 빈 느낌은 무엇일까?
아침 운동을 나가면서 자그마한 시냇물을 지나야 한다. 언제나 냇물 식구들을 만날 수 있지만, 그중에도 피라미 낚시를 하시는 어르신 내외와 다슬기를 잡는 어르신은 단골이셨다. 언제나 정해진 자리에서 피라미 낚시를 하시고 다슬기를 잡는 어르신은 묵묵히 할 일을 하신다. 아침 산책을 나온 오리들과 한 몸이 되고, 먹이 사냥을 나온 두루미와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무한한 동반자들이다. 어떻게 저렇게도 잘 어우러지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가 늘 궁금한 현장이다. 어느 날 자주 보이던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 다슬기를 줍던 어르신이 냇가에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세상이 어떻게 되건, 새들이 먹이를 찾아도 관심이 없는 듯이 자신의 할 일에 전념하시던 할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던 할아버지 가족이 없어 허전하고, 다슬기를 잡던 할아버지 모습이 보고 싶었다. 텅 빈 냇가를 보고 갑자기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내 아버지가 떠 올랐다. 부질없는 삶 속에 갑자기 허전함이 떠오른 것은 다시는 볼 수 없는 아버지를 기억하게 했다.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의 할 일만 하시던 아버지, 여전히 말이 없는 아버지였다.
작은 자갈논을 일구며 자식들을 길러 온 아버지였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을 놓지 못했다.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 큰 재산인 누런 소를 앞세우고 지게에는 풀이 가득 실려있었다. 하루 종일 일을 하시고, 소먹일 풀을 깎아지고 오시는 것이다. 얼른 나가 소를 받아 끌고 오지만 가슴에는 늘 서러움이 있었다. 저렇게 해야 먹고살 수 있는 것인가? 내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어르신을 만나면 늘 그리운 얼굴이다. 세월은 잔인하도록 공평하게 흘렀다. 누구도 예외 없이 흘러 어언 고희라는 삶을 데려다 놓았다.
여름이 서서히 물러간 자리, 시골에 자리한 집을 정리하는 아침이다. 언제나 눈앞에 어른대던 거미줄을 제거했다. 시원하리라는 생각은 오간데 없이 마음은 허전했다. 무엇인가 빈자리가 허전했고 늘, 함께하리라던 생각은 전혀 맞지 않는 나만의 생각이었다. 생각이 없는 철부지 생각으로 영원할 것 같았던 일들이 세월 속에 묻힘이 당연한 일이었다. 가을이 다가오는 계절, 멀리서 겨울은 한없이 다가오고 있다. 한시의 짬도 소홀할 수 없는 하루의 삶, 오래 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지금의 삶이 너무 소중함에 숙연해지는 아침나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