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 저녁의 상념)
내 삶의 가을이 오면
긴 삶을 풀피리 삼아
신비한 영혼의 소리를 내야겠다.
신비한 풀피리 소리
조용한 삶의 그림이 바래
가끔 어두운 소릴 발하고
희뿌연 안갯속에 잠든다 해도
내 삶의 한 점이고 영혼이라
버거운 여름을 탓하지 않고
오래 접어 둔 낚싯대를 늘여
세월의 고기를 낚아야겠다.
내 삶의 가을이 오면
고요하고 조용한 삶 그리러
억새풀 넉넉한 호수를 찾아야겠다.
가슴에 숨겨둔 도구 챙겨
한 없이 쏟아지는 달빛 속에서
하나같이 아름다운 삶의 흔적들
소중히 하나 둘 되새겨
고요한 호수에 그리고 또 그리며
한동안 접었던 낚시 줄 놓아
세월의 낚시를 즐겨야겠다.
내 삶의 가을이 오면
가슴속 작은 화실에 들러
하얀 도화지 둘둘 말아 들고
꽤 넓은 호수로 떠나고 싶다.
솜털 날리는 억새풀 호수에서
고요한 화폭에 그린 세월에
주춧돌 받치고 초가지붕 올리면
아름다운 집 다시 될 터이니
가슴에 품은 긴 낚싯대 열어
세월 속 낚시를 놓아야겠다.
내 삶의 가을날이 오면
자그마한 톱과 망치 챙겨 메고
양지바른 언덕을 찾아야겠다.
창문 너머 억새풀 호수에
가끔은 하얀 달빛이 내리고
담장 너머 작은 채마밭에
파란 열무 바람에 나풀대면
허름한 사립문 삐그덕 열고
그리운 내 님 찾아 올 집 지어
도화지 속 그려진 내 삶에
언덕 위 그 집을 옮겨야겠다.
내 삶의 가을이 오면
세월을 낚으며 그려온 그림
자국마다 숭고한 삶의 흔적이고
영혼이 깃든 생의 응어리인지라
버거운 여름날을 소중히 추억하고
성스런 가을날을 고맙게 맞으며
그리고 또 그린 소중한 내 삶을
가슴속에 소중하게 담아
두고두고 오래도록 추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