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서 만난 사람들)
계절은 언뜻 가을이었다.
계절의 색깔은 성스러웠다. 산을 넘은 안개가 자취를 감추자 찾아온 햇살은 짱 해서 좋다. 얼른 자전거를 캐리어에 얹고 동네를 벗어나야 한다. 동네 사람들의 눈에 띄기 전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가을배추 수확이 바쁘게 돌아가는 골짜기, 자전거를 싣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기 불편해서다. 서두른다고 했지만 비탈밭에선 벌써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여름을 무던히도 견뎌낸 고랭지 배추가 벌써 한 차 실려있다.
실술 궂은 여름 비에 골짜기 여름배추는 시원치 않았었다. 하지만 가을배추는 노란 고갱이를 안고 골마다 벌렁 누워있다. 배추를 뽑고 싣는 일은 아주머니들의 몫인가 보다. 일을 지휘하는 사람은 중년의 남자지만 아주머니들의 아침 발걸음이 바쁘다. 멀리에선 벌써 벼 수확이 시작되었다. 역시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기에 배추를 수확하고, 황금 들녘을 오가는 콤바인이 바쁘기만 하다.
오래전 논두렁 밥상엔 노란 콩나물 무침이 제격이었다. 질펀한 논둑에 둘러앉아 일꾼들이 점심을 먹는다. 먼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넓은 들판에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야 점심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궁이 불에 구운 고등어가 있고 참기름에 소금이 묻은 김이 있었다. 여기에 걸쭉한 막걸리 한잔이 빠질 리 없는 가을 잔치가 푸짐하게 벌어지는 것이다. 사람을 불러 모으던 소리는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콤바인 소리로 바뀌었고, 점심은 근처 식당으로 가야 했다.
배낭엔 돌멩이도 들어 있다.
가을은 어느 곳에도 풍성함을 주었다. 자전거에 올라 들판을 달려가는 길, 모퉁이를 돌아가자 유모차가 보인다. 허리 굽으신 할머니가 장마철 지나 심은 들깨를 털고 계신다. 아들, 딸은 대처로 나갔는지,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지 홀로 앉아 일을 하신다. 굽은 허리에 헐렁한 꽃무늬 바지는 흘러내려 속옷이 훤히 보이는 할머니다. 인사를 하려다 젊은 놈이 자전거나 타며 건들거리는 모습으로 보일까 얼른 몸을 감추었다. 누가 깨를 심기 시작했고, 작은 알갱이에서 기름을 짤 줄 알았을까? 할머니의 고단함에 쓸데없는 원망을 하며 모퉁이를 돌아 나왔다.
허리 굽은 할머니, 지난 자전거길에는 눈물겨운 할머니를 만났었다. 시골 구멍가게에 앉아 음료를 마시던 중, 문을 열고 들어오신 할머니 등에는 묵직해 보이는 배낭이 메어져 있었다. 의자에 내려놓고 앉으시는 할머니는 허리가 불편해 보이셨는데, 얼른 일어나 배낭을 들어보니 엄청 무거웠다. 깜짝 놀라 무엇이 들었느냐는 말에 점방 주인이 알려준다. 배낭에 가끔 무거운 돌멩이도 들어 있다는 말에 할머니는 활짝 웃으신다.
사연은 모르지만 손주, 손녀와 사신다는 할머니는 허리가 굽어 배낭을 메신단다. 무거운 배낭을 메면 굽은 허리를 뒤에서 당겨주어 편하시다는 설명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나오셨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시장을 보고 오셨단다. 이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시는 중이란다.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왠지 숙연해지는 삶에 눈물이 스며난다. 허리가 굽어 돌멩이가 든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시장을 오고 가시는 할머니, 눈물겨운 돌멩이 할머니가 생각나 얼른 기억을 감추었다.
시골 곳곳에도 꽃들이 가득하다. 코스모스는 벌써 꽃을 지웠고, 하얀 백접초와 홍접초가 바람그네를 탄다. 빨간 맨드라미는 밝은 햇살에 웃고 있고, 먼산엔 어느덧 단풍이 내려왔다. 잔잔한 대청호반을 오가는 물새는 가을날의 축복이었다.
아들들은 분발해야 한다.
언덕을 내려가며 만나는 아늑한 동네, 지난번 문을 닫았던 점방이 문을 열었다. 고개를 들이밀자 왜 이제 오느냐며 너스레를 떤다. 오래전 교통사고로 손과 안면을 다쳤던 아주머니, 이젠 거의 나았지만 얼굴엔 흉터가 보인다. 목숨이라도 온전하니 다행이라며 삶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갑자기 세상에 아들놈들은 아무짝에도 못쓴단다. 장가를 들자 집에는 오지도 않고, 전화도 자주 하지 않는단다. 마누라 눈치를 보는지 도대체 딸이 없는 게 서럽단다.
여름내 그렇게 비가 와도 전화 한 통화 없는데 이웃의 딸자랑에 울화통이 터진단다. 부모님이 건강하셔서 전화를 하지 않았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하소연이다. 어쩌다 밥을 먹어도 아버지가 카드를 긁는데, 도대체 왜 안 오는지 속이 터진단다. 이젠, 너는 너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가끔 전화로 집에 오라 하면 아내와 상의해서 알려준다 하니 도대체 어쩐 놈의 세상이 이 꼴이냐 한다. 세상의 삶이 그런 게 아니냐며 일어났지만 머릿속이 뒤숭숭하다. 나는 아들 노릇을 잘했고, 나의 자식들은 어떤 생각일까?
일주일에 두어 번 전화라도 하는 아들이고, 자주 찾아오는 딸이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힘을 모아 본다. 조금은 복잡한 머리를 흔들며 굽이굽이 들판을 돌아 대청호로 들어섰다. 상쾌한 바람을 쐬며 달리는 곳곳에 결실의 계절임을 알려준다. 하늘 속에 달린 감이 일렁이고 멀리엔 하얀 억새가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다.
대청호를 돌아 달려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유모차가 놓여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온 곳, 할머니가 앉아 콩을 털고 계신다. 인기척에도 관심이 없는 할머니는 작은 막대기로 콩을 두드린다. 허리가 굽어 보호대를 끼고 앉아 계신 할머니다. 삶의 응어리가 가득 서린 유모차가 무심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무겁지도 않은 할머니의 무게를 지탱해 주는 하얀 유모차가 익어가는 가을과 대조되는 그림이다.
콩을 털어 자식에게 주고, 혹시는 할아버지 밥에도 섞일 콩이리라. 여기에 남는 콩은 5일장에 팔아야 가용돈이라도 마련할 수 있었다. 오래 전의 내 어머니의 가난했던 시절이 떠오르는 들판이다. 가을은 할 일 없이 하루를 넘기려 한다. 열심히 근육의 힘을 빌려 호수를 끼고 돌아가자 한잎 두잎 단풍잎이 떨어진다.
삶을 즐기며 살아간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자주 가는 단골 식당을 찾아가는 중이다. 언젠가는 재료가 떨어져 되돌아왔던 식당은 적은 돈으로도 충분한 자연산 버섯찌개와 새뱅이 찌개가 있다. 여기에 짭짤한 짜글이가 입맛을 돋워주니 많은 사람이 붐비는 곳이다. 식당엔 땀에 젖은 옷차림으로 찾는 어르신들이 많아 구석에서 조용히 식사를 한다. 자전거나 타고 얼쩡거린다는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할까? 고맙고도 고민스러웠던 식당은 웬일인지 텅 비어 있다.
반갑게 맞아 주인한테 사연을 묻자, 지금 한 패가 나갔단다. 떳떳하게 주문한 새뱅이 찌개, 수더분한 주인댁이 끓여낸 세 명이 먹을 양은 다섯도 먹을 수 있다. 허기진 배를 채우는 중에도 손님은 뜸해 묻는 말에, 단풍놀이도 있지만 주변에 축제장이 많아서란다. 주인장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일만 하고 사느냐며 일갈한다.
그랬다. 사람은 삶을 즐기면서 살아가야 한다. 열심히 일하시던 어르신들은 축제를 즐기고, 단풍놀이로 쉼을 즐기러 간 것이었다. 운동선수는 운동을 즐기고, 과학자는 새로움을 찾는 것이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가끔 여행도 하며 행복한 쉼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 포도 한 송이를 놓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이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한없이 평화롭다.
그렇다. 사람은 역시 쉬면서 즐기기 위해 사는 것이었다. 돌멩이 배낭 할머니와 깨를 털고 콩을 터는 할머니도 삶을 즐기는 심정이었을까? 오래전 내 어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깨를 털며 살아 내셨을까? 자전거 길 곳곳에는 힘겨운 할머니가 있었고, 아주머니들의 다양한 삶이 있었다. 그네들의 삶도 즐겁게 일을 하며 쉼을 찾고 있는 것이었을까? 저물어가는 가을 속에 내 삶을 되새기며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