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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Oct 29. 2023

가을날의 골짜기 풍경은 그렇고 그러했다.

(이웃들과 막걸리 한잔으로)

맑은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 연말 색소폰 연주회 준비로 마음이 바쁘다. 연말 연주회 리플릿 관계로 볼일이 있어 서두르는 중이다.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가 번쩍한다. 언제나 작은 소리도 지르는 못하는 전화기, 한 번도 전화기 벨을 울게 한 적이 없다. 가끔 오는 전화지만 이웃들에게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이지만, 아직은 무음으로도 전화가 왔음을 알 수 있어서다. 반가운 친구에게서 문자가 온 것이다. 


고등학교를 시작으로 대학과 사회생활을 함께 했으니 50년이 훌쩍 넘은 친구다. 가정사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친구가 근처로 막거리를 먹으러 온단다. 친구와 시내버스를 타고 유람하듯이 동네 근처로 오고 있단다. 얼른 채비를 차리고 약솔 장소로 갔지만 아직 오고 있는 중이란다. 얼마 후 반가운 친구 두 명이 시내버스에서 내렸다. 고희의 청춘들이 즐거운 발걸음을 한 것이다. 찾아간 식당은 근처에서 이름난 맛집이다. 식당에 들어서자 친구가 점심값을 서둘러 계산하려 한다. 우리 동네 왔으니 어림없다며 얼른 계산을 하자 난감해한다.

안개가 찾아온 골짜기 풍경

멋쟁이 식당 아줌마, 막걸리 한주전자를 놓으며 운전자는 잔이 없단다. 막걸리 잔을 달랑 두 개만 주며 운전자는 구경만 하란다. 점심을 먹으며 막거리 마시는 구경만 하고 일어섰다. 색소폰 연주회 준비를 위해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식당문을 나서는데 막거리 한 병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친구가 막걸리를 준비해 놓고 가져가란다. 크기도 1.8리터가 되니 감당할 수도 없는 많은 양이다. 


시내에서 일을 마치고 시골로 들어오는 중, 동갑내기 이웃이 일을 하고 있다. 나무 울타리를 헐어내고 담장을 고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차에 실린 막걸리가 생각나 막걸리 한잔 하겠느냐는 말에 웃음으로 답한다. 친구가 건네준 막걸리 한 병으로 동네잔치가 벌어졌다. 이웃은 건네준 막거리로 상을 차렸고, 아주머니는 막걸리 안주를 마련했다. 

가을은 서서히 달아나고,

가을이면 언제나 찾아오는 김장철이 아니던가? 오늘 담갔다는 싱싱한 고랭지 김치 한 접시와 시골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귀한 안주가 차려졌다. 요즘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메뚜기 안주가 나온 것이다. 아내가 잡았다면서 기름에 볶은 메뚜기가 차려졌다. 고급 맥주 안주로 가끔 등장하는 메뚜기가 안주로 등장한 소박한 막걸리 상이다. 우리만 먹을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또 다른 이웃이 막걸리 맛을 보려 찾아왔고, 순간에 동네잔치가 벌어졌다. 


친구는 일이고 무엇이고 그만이란다. 막걸리 마셨는데 무슨 일이냐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대단하다던가? 계절이 달아나는 이야기에, 아이들 이야기가 전부다. 손녀,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다. 자식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하여 돌보고 있는 손주들, 무릎에 놓고 얼굴을 비벼댄다. 손주이니 얼마나 귀엽고 예쁘겠는가? 살아내기 힘겨워 내 자식은 하지도 못했던 내리사랑을 손주에게 퍼붓고 있다. 오래전 아이들과는 살아가기 힘들었다. 감히 베풀 수 없었던 사랑을 손주에게 주고 있다. 


서둘러 떠나려는 가을 햇살아래 모인 이웃들이다. 가끔 검은 봉지가 문 앞에 놓여있다. 고구마를 캘 무렵이면 고구마 순이 놓여있다. 가을이 깊어가며 서리가 내릴 무렵이면 어린 호박잎이 놓여있다. 누가 놓았는지 뻔히 알 수 있는 이웃들의 손길이다. 

이웃이 슬며시 왔다 갔다.

골짜기로 이사 오면서 가장 두려웠던 이웃들과의 어울림이었다. 혹시,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면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어우러지며 잘 살아갈 수 있을까가 늘 고민이었다. 방법은 어렵지만 어렵지 않은 한 가지로 먼저 다가가며 나누는 것이었다. 막걸리 한 병이 값으로 따지면 얼마가 될까? 차에 실린 막걸리 한 병으로 동네잔치를 한다. 이웃들과 한데 모여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차에 실려 달그닥거리던 음료수 한 병이 마음을 따스하게 데워준다. 땀 흘리며 일하는 이웃에게 건넨 음료수가 마음을 녹여준다. 


시골로 이사 오면서 살아가는 나만의 방법이다. 서둘러 찾아가 인사를 하고, 간단한 음료수 한 병으로 이웃으로 다가간다. 힘들지만 힘들지 않은 마음으로 이웃들과 어우러지는 노하우다. 사는 것이 별것 있다던가? 어려움을 나누며 오가는 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지나는 계절을 잡아 놓고, 막걸리 한 병으로 이웃들과 어우러지는 가을날의 잔치며 되지 않겠는가? 뉘엿뉘엿 가을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골짜기의 작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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