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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Oct 21. 2023

아침, 잔잔한 커피 향이 춤추고 있다.

(가을 문턱에 만나는 풍경)

아침을 열어주는 창문으로 싸늘한 바람이 넘어온다. 덩달아 옹알대는 도랑물 소리는 아직도 여전하다. 이웃집 닭들은 추위에 놀랐는지 조용한데, 골짜기에는 어김없이 안개가 내려왔다. 바람 따라 일렁이는 앞 산 안개는 없으면 서운한 동네의 진객이다. 지난해 벌목을 해 훤한 앞산엔 자잘한 자작나무가 하늘거린다. 벌목을 하고 심어놓은 작은 자낙나무가 살아 있음을 알려주며 맹숭맹숭하던 벌판에 새 식구들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여기에 하얀 꽃이 피었으니 개쑥갓이 하얀 열매를 맺어서다. 보이지 않던 하양이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은 언젠가는 드러낼 하얀 자작나무를 연상하게 한다. 갖가지 나물을 건네주고, 가을이면 풍성한 열매를 주던 앞산이었다. 봄부터 꽃을 피우고 비바람을 이겨냈다. 따가운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 낸 앞산엔 풍성함이 가득했었다.


밤새 후드득거리며 밤이 떨어졌고, 심심하면 툭하고 떨어지는 잣이 있었다. 동네 아낙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밤나무는 오간데 없다. 자주 찾아오던 다람쥐도 먼 곳으로 이주를 했고, 밤마다 울어대던 고라니는 가끔 얼굴만 보여준다. 푸름을 찾아오는 고라니, 가끔은 잔디밭에도 흔적을 남기며 텃밭을 거닐고 간다. 어떻게 할까를 망설이다 그냥 두기로 했다. 먹을 것이 없어 찾아온 듯한 고라니가 안쓰러워서다.

넉넉한 가을을 맞이하며

인간의 삶이 궁금했는지 동네를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곳곳에 살아있다는 흔적을 남기곤 했다. 삶의 근거지를 잃었으니 어슬렁거리며 앞산을 거니는 모습이 불편하기도 했었다. 여기에 찾아오던 산새들도 발걸음이 뜸해졌다.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며 어지럽히던 산까치도 현격히 줄었지만, 가끔 울어주던 여름뻐꾸기가 마음을 달래 주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 온 골짜기는 한없이 한가롭다.


훤하게 드러난 앞산이 시원하기도, 섭섭하기도 했었다. 인간의 간사함이 몸통을 드러냈는지, 언제부터인가 편안한 앞산이 되었다. 밝은 햇살이 찾아온 산등성이를 볼 수 있어서다. 하얗게 내린 햇살이 반짝이는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본다.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이런 호사를 누리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 밝은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을 보면, 가끔은 춤을 추고 싶다. 소중한 자연을 축복하고 싶어서다.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을 꿈꿔본다.

아침 창문을 열며 생각하는 하루의 시작이다. 밝은 햇살에 눈이 부셔 바라볼 수가 없다. 아래로는 잔잔한 풀이 자라 있고 산 넘은 바람이 작은 자작나무 흔들어댄다. 밤새 내린 이슬이 햇살을 받았고, 하얀 서리도 햇살을 반겨준다. 언제나 반짝이는 모습에 숨이 멎는다. 자연의 어울림이 흐뭇해서다. 여기에 날아가는 산새들은 하얀빛으로 곡선을 그린다. 줄지어 그어지는 곡선을 따라 이웃집 알 낳은 닭이 소리를 지른다. 나도 살아 있다는 신호인가 보다.


산이 있고 안개가 있으며 푸름이 있다. 여기에 옹알대는 도랑물이 이어지고, 산새들이 노니는 앞산에 가끔 고라니가 세상 구경을 나온다.  조용히 알 낳은 이웃집 닭이 소리를 섞는다. 골짜기에 하루가 문을 여는 아침이야기다. 작은 골짜기에 인간들이 발길을 옮겨지며 삶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완전히 산을 넘은 햇살이 동네를 감싸 안으면 온전히 따스함이 동네를 적셔주고, 몸통을 드러낸 골짜기는 긴 하품을 한다.

나의 뜰에도 가을이 왔다.

이런 빛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여기에 하얀 눈이 내리면 얼마나 성스러울까? 겨울 산새가 드문드문 찾아오고, 외로운 산그림자 내려오면 작은 도랑물은 몸을 숨기며 봄을 기다리리라! 아름다운 초가을을 맞이하는 아침창가에서 바라보는 앞산 풍경은 더할 것이 없다. 언제나 넋을 놓고 바라보는 풍경이다. 왜 사람들은 이런 풍경을 외면하듯이 살아갈까? 가끔 부족한 감성을 탓해보고, 표현할 수 없음에 가슴에 담고 만다. 자연이 숨 쉬고 있는 골짜기의 작은 마을, 향긋한 커피 향이 잔잔하게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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