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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Nov 06. 2023

가을 나들이가 있는 골짜기엔 삶의 이야기가 가득이다.

(노랑을 따라가는 길)

햇살이 가득한 가을날 아침, 오늘도 안개가 골짜기를 덮었다. 햇살이 찾아왔지만 아직도 게으름을 떠는 안개를 바라보며 맞이하는 아침이다. 앞 산에 펼쳐지는 가을은 눈이 부셨다. 야트막한 산말랭이에 이슬이 내렸고, 이슬 위에 내린 햇살은 눈을 멀게 했다. 아무 소리 없이 바라보는 가을날의 아침, 여길 두고 어디로 가을을 맞으러 갈까? 몇 년째 살아온 골짜기의 아침은 오늘도 눈이 부시다. 동네는 온통 고요만으로 일렁인다.


곳곳에 산국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나의 뜰엔 구절초가 하얗게 모습을 드러냈다. 향긋한 산국을 따라 동네 벌들이 다 모여들었다. 향긋함에 구수함까지 곁들인 산국의 모습에 서두르는 가을이 아쉽기만 하다. 어느새 서리는 푸름을 휘여 잡았고 푸름은 누런 얼굴을 드러내고 말았다. 널따란 들판엔 하얀 곤포 사일리지가 자리를 잡았으니 올해도 뉘엿뉘엿 뒷산을 넘어가고 있다.

길가엔 은행나무가 제철이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어떻게 저런 빛이 내려왔을까? 어느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노랑,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맑은 노랑에 넋을 놓고 말았다. 노랑 잎을 뚫고 나온 햇살에 눈이 부시다. 천상 더 많은 노랑을 찾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가을날의 진수를 찾아 서두르는 발걸음이 가볍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도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노랑과 붉음이 적절하게 수놓은 땅, 사계절을 원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계절 따라 삶의 방법을 달리해야 하는 분주함에 심통이 나서였다. 


노랑을 찾아가는 긴 골짜기에도 가을이 가득이다. 노랑이 있고 붉음이 끼어든 가을 물감이 산을 타고 내려왔다. 여러 색깔이 흘러내린 비탈밭엔 가을배추와 무가 진한 파랑으로 젖어있다. 아직도 남은 들깨와 콩을 터느라 씨름하는 농부들의 손길이 바쁘다. 서둘러 산을 넘은 곳에 줄지은 노랑 물결이 반듯하게 서 있다. 바람결에 나부끼는 노랑은 파랑 하늘 속에 묻혀 있다. 느림의 차량 속에 앉아 한가함을 바라본다. 조금만 느려도 곤두서던 신경이 가을 따라 느긋해진 탓이다.

기어이 도착한 노랑물결 속은 사람이 반이고 물감이 반이다. 바람결에 떨어지는 노랑물결, 이 물결을 보려 수많은 발길이 찾아온 것이다. 계절은 변함없이 노랑을 퍼붓고 있다. 길에도 가득이고 저수지에도 숨어 있다. 파랑 하늘아래 흘러넘치는 가을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간다. 서두를 것도 없고 아쉬워할 것도 없는 가을날의 발길이다. 부산한 인파 속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무엇이 그렇게도 발길을 잡았을까?


어느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수채화를 그리는 사람 그리고 유화로 노랑을 칠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림에 빠져있는 사람인 화가였다. 수채화를 시작한 세월도 강산이 한 번은 변했건만 아직도 어려운 그림의 세계다. 언제쯤 내 마음에 품을 수 있는 수채화를 그려낼 수 있을까? 머리를 질끈 묶은 행색을 보고 예술가냐 한다. 아직은 어설픈 작가라는 말로 대신하고 가을 속으로 숨어 버렸다. 넓은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노랑을 따라 거니는 사람들이 수북이 많다. 그렇다, 사람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사는 것이었다.

밤을 낮 삼아 일하던 시절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렇게 살아온 젊음이었다. 기어이 들길로 산길로 나와야 하는 시절이 되고 만 것이다. 어렵던 시절엔 감히 생각도 못했던 가을 나들이가 오가는 길을 꽉 메우고 말았다. 가을 따라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거니는 발걸음이 즐거움을 주는 가을 나들이다. 멀리에선 구슬픈 색소폰 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둘레 길을 돌아온 제자리엔 아직도 색소폰이 울고 있다. 어느 색소포니아가 자리 잡고 가을을 연주하고 있다. 누가 오건 아무 상관없이 계절을 노래하고 있다. 


가끔의 생각이다. 평생을 살아오며 20여 년 배낭으로 세계를 쏘다녔다. 고단한 하프마라톤을 하면서 곳곳을 누벼왔다. 이젠, 근력운동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 여기에 수채화를 한다고 화실을 어정거린다. 색소폰 연주회를 한다고 바쁘다 한다. 글을 쓴다고 골짜기에 터를 잡고 앉아 있는 삶이다.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부지런히 살아온 삶이었다. 밤이 낮인양 살아온 일 속에서도 나를 찾아 헤맸던 세월이었다. 한시의 짬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했다. 내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아이들은 벌써부터 해외를 드나들었고, 마라톤을 흉내 내며 복근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글을 쓴다고 도서실을 오가며 여행으로 하루도 쉼이 없다. 아비의 삶이 그대로 전해진 듯 해 뿌듯하다. 아비의 삶이 헛되지는 않았다 생각하게 하는 이유다. 대단한 삶은 아니지만 살아가는 모습이 그럴듯했나 보다. 계절이 준 노랑 속을 거닐며, 가을 녘의 삶을 되새겨본다. 서둘러 남은 연말 색소폰 연주회를 준비해야 하고, 내년에 있을 수채화 전시회를 준비해야 하는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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